• 번호 : 4004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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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0) - 오랜 삶에서 묻어나는 무게감 : 박경화(바오로), 이일언(욥)

요즘 평균 연령이 굉장히 높아져서 노인의 기준을 70세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 오가곤 한다. 하지만 환갑(60세)만 넘어도 귀한 어르신 대접을 받던 조선시대에 70세 노인은 보기 드물어 신분에 관계없이 존중을 받았다. ‘하느님의 종’125위 중에는 70세가 넘는 노인들이 몇 분 계신데 그분들의 삶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70세에 대구 감옥에서 순교한 박경화(바오로)는 충청도 홍주 출신이다. 제법 재산도 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이었으나 33세에 천주교에 입교한 후부터 스스로 고행의 길을 선택하였다. 조선시대의 관습상 일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고향을 떠나 산중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60세가 지나서는 가족들을 데리고 충청도 단양의 가마기라는 곳으로 이사하였고, 70세가 되었을 때 박해의 소식을 듣자 경상도 상주의 멍에목이란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마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장차 보여줄 땅으로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듯이 박경화도 그러한 삶을 살았다.

그는 1827년 4월 그믐날 교우들과 함께 주님승천대축일을 지내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어떤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으나 70이 넘은 노령인데다 형벌의 후유증으로 감옥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죽음이 가까워져 온 것을 알고 함께 옥에 있는 아들과 교우들에게 “이 옥을 복락소로 생각하시오. 밖에 있는 가족들로 인해 분심을 갖지 말고 내 뒤를 따르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해 11월 15일 평온히 숨을 거두었다.

72세에 순교한 이일언(욥) 역시 충청도 홍주 출신이다. 이분의 삶은 20년 넘는 감옥생활로 점철되어 있는데 순교자들 중 가장 오랫동안 옥고를 치른 분일 것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경상도 안의로 유배를 간 그는 거기에서 10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풀려났다. 이후 전라도 임실의 대판이란 곳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827년에 박해가 또 한 차례 일어나자 체포되었다. 그리고는 1839년 5월 29일 참수형으로 순교할 때까지 1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형지로 울며 따라오는 자식들을 향해, “나는 여러 해 동안 옥중에서 신음해오다가 오늘 마침내 천국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왜들 우느냐, 오히려 나의 행운을 기뻐하여라. 너희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하고, 너희들도 훌륭한 교우가 되거라.”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분들이 남긴 말이나 행적은 다른 순교자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으니 독보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70이 넘도록 간단없이(끊임없이) 신앙생활에 전념해온 노인들이 남긴 언행이기에 오랜 삶에서 묻어나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10월 07일자 대전주보 : 제21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