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040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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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9) - 동정 부부와 이웃집 교우 : 조숙(베드로), 권 데레사

조숙(베드로)과 권 데레사는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에 이은 또 다른 동정 부부로 20여 년의 세월을 두고 그 계보를 잇는 쌍백합들이다.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조숙은 일찍 신앙을 받아들여 생활하다가 황해도 무산으로 유배된 조동섬(유스티노)의 손자이다. 조숙은 어려서 신앙을 가졌지만 1801년 신유박해로 강원도의 외가로 피난을 떠나면서부터 신앙생활을 등한시 한 채 냉담한 상태에 있었다. 이런 그에게 신앙의 불을 다시 지펴준 것이 아내 권 데레사였다.

권 데레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주역으로 꼽히는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딸이다. 데레사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7살 때인 1791년 신해박해로 아버지마저 잃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형제들과 재산마저 다 잃었지만 신앙만은 잃지 않았다. 그녀는 신유박해 이전에 주문모(야고보) 신부로부터 성사의 은혜를 받고나서 동정을 지키며 살기로 결심하였는데 조선시대의 풍습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카에게 의지하여 한양에서 살던 데레사는 결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절감한 후 만난 사람이 남편 조숙이었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둘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혼례를 치렀다. 데레사는 남편이 냉담 중인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의 뜻을 밝혀보려는 용기를 내어‘동정 부부로 살자고 부탁하는 글’을 미리 써 두었다가 첫날밤에 건네주었다. 뜻밖에도 남편은 이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남편은 신앙을 되찾아 열심해졌다.

조숙과 권 데레사의 이웃에는 고 바르바라가 살고 있었다(바르바라는 125위에 포함되지 않음). 과부인 그녀는 황해도 재령 사람으로 남편이 무산으로 유배되자 따라가 살다가 마침 그곳으로 유배를 온 조숙의 할아버지 조동섬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신앙을 가졌는데 남편이 죽자 선산에 그를 모시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와 조숙 부부의 집 이웃에 살며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1817년 갑작스럽게 박해가 닥쳐왔다. 조숙이 가지고 있던 첨례표(교회 달력)가 우연히 포졸들에게 발각되어 조숙이 잡히게 되었다. 이때 아내 권 데레사는 남편과 떨어지기를 원치 않았고, 이웃의 고 바르바라 역시 그들과 함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셋이 모두 체포되었다.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박해가 확대되지 않았다. 셋은 2년 동안의 모진 감옥생활 끝에 1819년 8월 3일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신앙의 끈’이 참 질기다. 어찌 보면 우연한만남들이었지만 죽음도 그 끈을 끊어놓지 못하였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9월 30일자 대전주보 : 제21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