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03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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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8) - 순교자의 피는 복음의 씨앗 : 김희성, 고성대, 고성운, 김화춘

1801년 신유박해로 전국이 요동칠 때까지 경상도에는 아직 신자가 없었다. 하지만“순교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라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박해를 피해 많은 신자들이 경상도의 산골짜기로 숨어들었다. 그중 상당수는 멀고먼 충청도에서 건너간 이들이었다.

김희성(프란치스코)은 충청도 예산 여사울 출신으로 신유박해 순교자 김광옥(안드레아)의 아들이다. 본디 부유한 집안에서 안정적으로 살던 그는 아버지의 순교 이후 모든 재산을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경상도 일원산에 있는 영양의 곧은장이란 곳으로 이사하였다.

고성대(베드로)와 고성운(요셉) 형제는 충청도 덕산의 별암(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태생이었다. 전라도 고산의 저구리(완주군 운주면)로 이사하여 살다가 신유박해를 만나 체포되었으나 배교 후에 풀려났다. 이후 두 형제는 경상도의 청송 노래산(청송군 안덕면 노래리)로 이사하여 살며 한 때 신앙을 버렸던 잘못을 보속할 때를 기다리며 살았다. 역시 충청도 출신의 김화춘(야고보)은 청양의 수단이(청양군 사양면 신왕리)가 고향인데 보령 청라동(충남 보령시 청라면 청라리)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좀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경상도 청송의 산골짜기에 정착하였다.

이렇게 경상도로 모여든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경상 감사는‘어찌 깨끗한 경상도 땅에 천주교를 믿는 사악한 무리들이 숨어 들었느냐’며 1815년 봄 경상도 북부지역 산골짜기에 있는 신자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려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포졸들이 잡으러 왔을 때 김희성은 아들과 함께 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나와 함께 오지 말아라. 나에게는 하느님의 지시하심이 있으니 따라야 한다. 특히 가족과 어머니를 잘 보살펴라.”는 말을 남기고 자진 출두하였다.

노래산에 살던 고성대와 고성운은 포졸들이 들이 닥치자 처음에는 도둑들이 약탈하러 온 줄 알고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여 완강히 저항하였다. 하지만 자신들을 잡으러 온 포졸들임을 알자 온순한 양처럼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잡혀간 이들은 거의 2년 동안 감옥생활 끝에 경상도를 관할하는 대구에서 참수되었다.

이분들의 삶을 보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가 떠오른다. 유럽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교하던 그는 많은 고난을 당하다가 마침내 수도인 로마로 끌려가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한 알의 씨앗이 되었다. 충청도 태생의 위의 분들도 작은 씨앗이 되어 천주교 신자가 하나도 없다고 자랑하던 경상도의 수부 대구에까지 끌려가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분들을 통해 사도행전의 내용이 우리 땅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9월 23일자 대전주보 : 제21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