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90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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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7) - 청산에 살어리랏다 : 김시우(알렉시오), 김강이(시몬)

잘 알려진 <청산별곡>의 노랫말은 이러하다.“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이 노랫말은 오늘 소개하는 두 분 순교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머루가 많이 나서 머루산이라 불리는 궁벽한 산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교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김시우(알렉시오)는 청양 출신이다. 신분은 양반이고 성품이 어질었으나 오른쪽 몸이 반신불수인 탓에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 가난하게 살았다. 일찍이 고향에서 입교한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는 교우들의 신세를 지며 살면서도 학식이 풍부하였기에 남들을 가르치고 왼손으로 신앙 서적들을 필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진보 머루산(경북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로 갔다. 머루가 많이 나 포산(葡山, 포도 산)이라고도 불리던 이곳은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든 교우촌이었다.

충청도 서산 출신의 김강이(시몬)도 김시우처럼 신앙생활을 위해 머루산으로 온 인물이었다. 처음에 그는 전라도 고산으로 가서 살았었다. 하지만 그가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알려져 수배령이 떨어지자 상인으로 변장하여 전국을 떠돌다가 결국 머루산으로 왔던 것이다. 그것도 얼마가지 않았고 또 한 차례 이사하여 울진으로 갔으니 그
고단함이 여간 아니었다.

1815년 경상도 감사가 도내에서 천주교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머루산에 있던 김시우가 먼저 체포되었는데 그 과정이 참 애달프다. 포졸들이 다른 신자들을 체포하면서 불구자인 김시우는 그냥 놔두자 그가 울면서, “나도 역시 천주교 신자인데 신체장애 때문에 나를 잡지 않으니 낙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말하였다. 포졸들
이 이 말을 듣고 체포하자 김시우는 기쁘게 끌려가 안동을 거쳐 대구로 이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당시 감옥에서는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는데 김시우는 몸이 불편하여 남들처럼 짚신을 삼을 수가 없어 굶주리다가 약 두 달 후 34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한편 울진에 살던 김강이는 머루산에 살던 한 사람의 고발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안동을 거쳐 강원도 원주로 끌려갔고 거기서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형벌에 의한 상처와 이질로 인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렇게 머루산에서 머루를 먹으며 신앙생활을 하던 두분은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청산별곡>의 가사에서는 외로움이 묻어난다. 홀로 초연하게 있는 듯하지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머루산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분들 안에서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분들은 하느님 아버지를 더 잘 알아 공경하기 위해 그곳에 가셨으므로 홀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9월 16일자 대전주보 : 제21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