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소개할 세 분은 신앙생활을 위해 전국을 떠돌다가 서로 만나 사위, 장인과 장모 사이가 되어 일생을 함께한 분들이다.
최봉한(프란치스코)은 최양업 신부님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청양 다락골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워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살았다. 공주 무성산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하였다는 말을 듣고 가족이 함께 서울로 찾아갔다. 거기서 어머니는 고해성사와 종부성사(병자성사)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후 최봉한은 시골로 내려와 살다가 서석봉의 딸과 결혼하여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장모 구성열(바르바라)은 덕산 한내장벌(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미모가 뛰어나고 덕행도 남달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나 미인박복(美人薄福)이라고 첫 남편을 일찍 여의어서 평생‘서 과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았다. 그녀는 서석봉(안드레아)에게 재가하여 딸을 낳아 길러 최봉한을 사위로 얻었다. 이렇게 만나 새 가정을 이룬 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 경상도의 노래산(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의 교우촌으로 들어가 살았다.
이들이 체포된 것은 1815년 부활절이었다. 노래산에 사는 교우들이 모여 부활대축일을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밀고자를 앞세운 포졸들이 와서 모두 체포하여 경주로 압송하였다. 거기에 있을 때 장모 구성열이 마음이 약해져 신앙을 버리고 목숨을 건지려하자 사위 최봉한이 권면하여 위기를 잘 넘겼다.
이들은 모두 대구로 이송되었고 거기서 차례로 순교의 길을 갔다. 사위 최봉한이 제일 먼저 1815년 5월경에 매를 맞은 여독으로 옥에서 숨을 거두었고, 장인 서석봉 역시 그해 말에 옥중에서 사위의 뒤를 따라갔다. 장모 구성열은 17개월이 넘는 감옥생활 끝에 1816년 12월 19일 참수 당하였다. 그녀는 지난주에 소개한 이시임(안나)과 함께 처형되었는데, 남자 교우들이 먼저 처형된 후 구성열에게도“너희는 남자들과 다르므로 지금이라도 신앙을 버리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자 그녀는“예수 마리아께서 저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빨리 하늘로 올라오라고 초대하시는데, 어떻게 제가 덧없는 이 목숨을 보존하고자 배교를 하여 하늘의 영복을 잃겠습니까?”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예수님께서는“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사위와 장인, 장모의 관계로 살았던 세 분은 지금은 어떤 관계로 살아가시는지 알 수 없으나 그분들이 믿었던 부활의 영광을 얻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9월 09일자 대전주보 : 제21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