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905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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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5) - 이시임(안나) - 종악이 엄마

이시임(안나)은 조선시대 천주교 신앙을 가진 여인이 겪어야 하는 웬만한 고생은 다 경험한 분이다. 충청도 덕산에서 출생하여 경상도 대구에 이르러 참수를 당할 때까지의 멀고 긴 여정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녀는 덕산 높은뫼(충남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한 그녀는 성인전에 나오는 성녀들처럼 동정을 지키며 살기를 원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여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어서 그녀가 나이가 차도 결혼을 하지 않자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더 이상 동네에 살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시임은 몇몇 동정녀들이 살고 있는 먼 동네로 떠나기로 했고 박씨 성을 가진 천주교 신자 뱃사공이 길을 안내하여 데려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장가를 가지 못한 그 뱃사공이 마음이 변하여 강제로 자기 아내로 삼아버렸기 때문에 이시임의 뜻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남편은 몇 해 지나지 않아 죽었고 이시임은 ‘종악’이라 불리는 아들을 혼자 기르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이시임은 진보 머루산(경북 영양군 석포면 포산동) 교우촌으로 가서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녀를‘종악이 엄마’라고 불렀다. 1815년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녀는 동네 교우들과 함께 잡혀 안동을 거쳐 대구로 이송되었다. 의지할 곳이 없던 4살짜리 아들 종악이도 함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고 굶주림으로 인해 종악이는 감옥에서 죽고 말았다.

험난한 인생의 여정도, 아들을 잃은 고통도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하였으니 이시임이 참수를 당할 때의 광경이 더 잘 말해준다. 1816년 12월 19일 집행된 대구의 사형장에는 다른 6명의 교우들이 함께 있었는데, 먼저 남자 교우들을 죽이고 나서 영장이 말하였다.

“이 남자들은 이제 막 사형에 처해졌지만 너희 여자들은 남자들과 다르다. 지금이라도 단 한마디만 말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풀어주겠다.”

이시임은 대답하였다.

“어떻게 이토록 기본 원리를 모를 수가 있습니까? 당신 말에 의하면 남자들은 그들의 부모, 즉 하느님을 공경해야 하고, 여자들은 공경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어디서 그런 원칙이 나옵니까? 여러 말들이 다 소용없습니다. 저는 단지 영장께서 법에 따라 저를 다루시기를 바랍니다.”

동정생활의 본질은‘하느님을 향한 갈라지지 않는 마음’에 있다. 이시임은 세상의 온갖 질곡 속에서도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9월 02일자 대전주보 : 제21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