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902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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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2) - 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 이경도(가롤로), 홍익만(안토니오)

이경도(가롤로)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장남으로서 집안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역할도 하였다. 동생 이순이(루갈다)가 동정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하자 온갖 비난과 곤란을 무릅쓰고 동생이 유중철(요한)과 동정부부로 살아가도록 길을 마련해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울의 명문 양반 집안의 딸 이순이와 시골 양반의 아들 유중철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성사될 수 없는 조건이어서 친척들이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이경도는 동생의 신앙생활을 위해 적극 나서서 그 일을 성사시켜 주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이경도는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자 투옥되어 2월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보냈다. 그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한 대목은 참으로 겸손하다.

“나약한 저는 용기 있는 결심을 할 수가 없어서 자주 이렇게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특별한 은총을 입어 내게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크나큰 복이리라.’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하느님께서 제 바람대로 저를 도우시니, 이것이야 말로 은총 중에 가장 큰 은총이 아닙니까.”이경도와 같은 날 함께 순교한 홍익만(안토니오)은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하여 살면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의 집은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숨어 지내던 양제궁 맞은편에 있었기 때문에 신부님을 자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 집에 초대도 하였으며, 명도회에 가입하여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으니 박해가 일어나자 지도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있으니,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죽음밖에는 따로 진술할 말이 없습니다.”하며 신앙을 분명히 고백하였다.

이경도와 홍익만이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한 날은 1월 29일이다. 이날 다른 교우 7명도 함께 처형되어 총 9명이 함께 순교하였다. 가장 추운 겨울의 한 중간에 일어난 이 분들의 순교 장면을 떠올리며 다니엘서에 나오는“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고 찬미들하라.”(다니 3,70)는 찬미가를 읊어본다. 이 구절은 뭇 사람들에게 모함을 받아 죽음으로 내몰린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세 청년이 펄펄 끓는 화덕 속에서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 중의 일부이다. 이경도, 홍익만과 동료 순교자들에게 딱 맞는 찬미가를 성경의 인물들이 오래전에 대신 읊어주었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8월 12일자 대전주보 : 제2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