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901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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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31) - 구약성경의 토빗과 토비야를 조선에서 만나기 : 한덕운(토마스), 홍재영(프로타시오)

교회사 공부를 하다보면 성경에서만 보던 전설 같은 위인들의 삶을 실제 역사 안에서 만나게 된다. 한덕운과 홍재영의 삶은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토빗과 토비야의 삶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스라엘 태생의 토빗은 나라가 망한 후 아시리아로 유배를 가서 살면서도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을 실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토빗은 아들 토비야와 함께 길거리에 버려진 동포 한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고 나서 나무 밑에서 쉬다가 새똥에 눈이 머는 불행을 겪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힘든 선행을 실천하였음에도 그에게 불행이 닥쳐왔으나 그것이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어떻게 풀려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토빗의 이야기다.

한덕운(토마스)은 고향이 충청도 홍주였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경기도 광주 땅으로 이사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신자들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옹기 장사꾼으로 변장하여 서울로 가던 길에 이미 순교하여 주검이 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홍낙민(바오로)과 최필제(베드로)의 시신을 거두어 수습해 주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신자임을 드러내는 위험한 행동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한덕운은 포도청으로 끌려가 순교의 길을 가게 되었다.

홍재영(프로타시오)은 한덕운이 시신을 수습해준 홍낙민의 아들이었다. 그는 본래 아버지와 함께 잡혀갔으나 마음이 약해져 배교한 후 전라도 광주로 유배를 가 목숨은 건졌다. 이 과정에서 시신을 수습해준 한덕운으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은 홍재영은 유배지에서 회개하여 다시 신앙생활을 하며 평생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단식, 선행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렇게 38년을 살았을 때인 1839년에 기해박해가 일어났다. 그가 오랜 기간 동안 유배지에서 얼마나 올곧게 생활하였는지 광주를 거쳐 전주로 이송될 때에 동네 주민들 300~400명이 몰려와‘어떻게 의로운 사람을 이렇게 벌한단 말인가’라며 선처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홍재영은 결국 전주에서 끝까지 신앙을 고백한 후 사형선고를 받고 참수당하였다.

토빗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이 토빗과 그 아들 토비야의 변치 않는 꿋꿋함으로 극복되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하던 한덕운의 삶도, 유배지에서 평생을 보속과 선행실천에 힘쓰던 홍재영의 삶도 해피엔딩이다. 자기가 믿는 올바른 신념대로 살다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는 때로는 적응, 때로는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사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8월 05일자 대전주보 : 제2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