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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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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9) -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신 분 : 김사집(프란치스코)

김사집(프란치스코)은‘덕산 비방고지’(충남 당진시 합덕읍 점원리) 출신이다. 옛날에는 덕산에 속한 바닷가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행정구역 상합덕에 속한 넓은 평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김사집은 학문에 뜻을 두고 과거에 응시한 적이 있었지만 새로운 학문으로 알려진 서학(西學), 즉 천주교를 접하고서는 다른 일을 그만두고 교회 학문에 몰두하였다. 영적 독서, 기도, 전교에서 즐거움을 찾았고, 그의 곧은 심성과 모범적인 태도로 이웃 사람들로부터 큰 명성과 권위를 떨쳤다.

학문적 소양이 깊고 글씨도 잘 썼던 그는 많은 신앙 서적을 베껴서 그것을 살 형편이 못되는 교우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그가 손으로 쓰고 또 써서 나누어준 책들은 박해가 일어나자 좋은 증거물이 되었다. 그 책들을 빌미로 고발된 김사집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길고 험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고향에서 잡힌 그는 그곳을 관장하는 덕산으로 끌려갔다. 형벌을 받고도 신앙을 버리지 않자 덕산 관장은 그를 옥에 가두어둔 채 다른 죄수를 때리는 천한 일을 시켜 큰 모욕감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버리지 않자 군인들이 주둔하는 해미로 넘겼다. 거기서 김사집이 치도곤 90대를 맞고도 신앙을 버리지 않자 이번에는 병사 주재지인 청주로 넘겨버렸다.

해미에서 청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혹독하였다. 때는 음력 12월의 한 겨울인데다가 매를 맞은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 살갗이 옷에 묻어났다. 이렇게 죄수의 칼을 쓴 채로 3일 동안 180리를 걸어가야 했다. 청주에 도착한 김사집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후 곤장 80대를 맞고 그 자리에서 순교하였다.

외적인 형태를 보면 김사집이 각 고을의 관장과 포졸들에 의해 덕산, 해미, 청주 등지로 끌려 다닌 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가 신앙을 버렸으면 더 이상 험난한 여정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다시 보게 된다. 그 길은 예수님을 모함한 군중들이, 혹은 로마 군인들이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 스스로 걸어가신 길이었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7월 22일자 대전주보 : 제2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