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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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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8) - 배 아픈 약 주세요 : 손경윤(제르바시오), 김계완(시몬)

손경윤과 김계완은 한양에서 약방을 운영하는 분들이었다. 조선시대에 의학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신분은 낮지 않았으나 양반들로부터 무시당하며 살았다. 자신들도 몸이 아프면 그들에게 몸을 맡기면서도 전문직 종사자들을 천시하던 풍토 때문에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약방을 운영하려면 글을 잘 알고 있어야 하므로 손경윤과 김계완은 교회 안에서는 요긴한 인물들이었다. 초기 조선 교회의 교리서들은 대개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한문 서적들이었으므로 이를 연구하여 가르치는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경윤(제르바시오)은 약방을 운영하는 일 외에도 큰 집을 매입하여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술집을 차렸다. 바깥채는 술집이었으나 안채는 교우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교리를 배우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런 까닭에 손경윤은 박해가 일어나자‘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포도청에 수감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형벌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켰고 마침내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순교하기 전 최후 진술에서, “일찍부터 천주교에 깊이 빠져 하루아침에 이를 바꾸기 어려웠고, 일상의 고질병처럼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약방을 경영하는 사람답게 자신의 병을 잘 진단하였으니, 그 병명이‘고질병’이었다. 하느님을 믿는 고질병.

김계완(시몬) 역시 박해가 일어나자 포도청으로 끌려가 형벌을 받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가 꿋꿋이 신앙을 고백하자, 관장은 유화책으로 사흘동안 집으로 가서 보내고 오라고 내보냈다. 사흘 후 돌아오자 관장이“이제 마음을 바꾸었느냐?”라고 묻자, 김계완은“저는 물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수계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여 관장을 놀라게 하였다. 결국 김계완도 사형선고를 받고 1802년 1월 29일 한양 서소문 밖에서 손경윤과 함께 참수되었다.

어려서 우리 동네에는 약방이 있었다. 시골이어서 약방 주인이 진단도 제조도 다 하는 아주 편리한 약방. 식구 중에 누가 복통이 나면 약방으로 달려가“배 아픈 약 주세요!”라고 어리석게 말을 해도 알아서 약을 지어주는 곳이었다. 약방을 운영하셨던 두 분의 순교자들도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헤아리는 넉넉한 약방 주인처럼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구해 주고 계시리라.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7월 15일자 대전주보 : 제21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