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89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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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7) - 현계흠(바오로) - 새가 알을 품듯이

현계흠(바오로)은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길을 걷지 않고 약국을 운영하며 살았다. 일찍부터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하자 평신도 단체인 육회(六會)의 회원이되어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천주교 지도자로 지목되어 그해 12월 10일 한양 서소문밖에서 칼을 받아 순교하였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소개한 다른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나 그의‘경탄할 만한 여정’은 순교 이후에 계속되었다. 현계흠은 세 자녀(혹은 네 자녀)를 두었는데 하나(혹은 둘)는 일찍 죽고 딸 현경련(베네딕타)과 아들 현석문(가롤로)만 살았다. 현계흠이 순교할 때 현경련은 8살, 현석문은 5살이었으니 그들은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버지의 순교 후에도 어머니와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하다가 딸 현경련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고, 아들 현석문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하였다. 이들 현경련과 현석문은 한국 103위 성인으로 추대되어 공경받는 분들이다.

아들 현석문은 기해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행적을 적은 『기해일기』를 저술한 바 있는데 거기에는 자기 누이 현경련의 행적도 포함되어있다. 그중 한 대목은 이러하다.

“(현경련의) 부친과 시부는 신유 풍파에 치명하고 모친과 3남매가 살더니, 두 형은 출가하여 일찍 죽고 남매가 노모와 한가지로 열심히 수계하니, 집은 가난하고 군난(박해)이 자주 남에 경향으로 피신하여 다니니, 그 사이 고초는 어찌 필설로 다 기록하리오?”

현계흠 집안의 역사를‘경탄할 만한 여정’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를 이어 순교했다거나 103위 성인에 2명이 포함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외적으로 보면 아주 불행한 역사를 겪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켜나갔다는 것이 경탄스럽다. 이것은 마치 새가 알을 품어 새끼를 낳는 것과 같은 경이로움으로 느껴진다. 텔레비전에서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속에서 깨어난 새가 언제, 누구에게 저것을 배웠을까?”하고 경이로워하는데 그 감동이 이 집안의 역사에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이나 긴 세월이 아니라 품에서 품을 통해 전달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있었으니 그것이 참 그립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7월 08일자 대전주보 : 제2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