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275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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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6) - 유명한 사람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 김이우, 윤지헌, 유문석

유명한 사람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좋고도 고달프다. 흔히“성인(聖人) 밑에 순교자 난다.”고 하는데 참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 혹은 명성이 높은 사람 옆에 사는 이들의 고달픔을 잘 표현하였다.

김이우(바르나바)는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인 김범우(토마스)의 맏형이다. 그 유명한 김범우가 1786년에 순교한 후 김이우는 15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사형 당한 죄인의 집안사람이란 낙인이 늘 붙어 다녔기에 일상생활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을 보필하며 교회 지도자의 역할을 다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한양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순교하였다.

제사 문제로 순교한 진산사건의 주인공 윤지충(바오로)의 동생 윤지헌(프란치스코)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윤지충은 신앙고백의 형태로 볼 때 의미상의 첫 순교자로 치는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동생 윤지헌은 1791년 형이 순교한 후 더 이상 고향에 살 수 없게 되었으므로 가족들을 데리고 전라도 고산의 산골로 피신하여 살았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교회 서적을 탐독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쳐 신앙으로 인도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살다가 박해가 일어나 체포되었고, 윤지충의 동생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했다. 그럼에도 그는, “고질병처럼 천주교 신앙에 빠져 있으니, 오로지 만 번 죽겠다는 말씀만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의 길을 갔다.

유문석(요한)은 그 유명한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고, 지난주에 소개한 동정부부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의 동생이자 시동생이다. 아버지와 형이 차례로 잡혀 전주 옥에 갇히자 유문석은 여름 내내 옥을 오가며 음식을 날라 옥바라지를 했다. 그 기간 중 유문석과 남은 가족들은 서로 격려하며 살았다.

“우리 다섯 사람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천주님을 위해 순교하자고 언약하고, 철석같이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한 결과 우리의 원의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자연히 온갖 후회와 근심 걱정이 잊혀졌습니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9월 중순에 유문석과 다른 가족들 모두 잡혀 아버지 유항검과 형 유중철의 뒤를 따라 순교의 길을 갔다.유명한 사람의 가족으로 사는 데서 오는 고달픔은 피할 수 없다. 그 영광도 고달픔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마저도 모두 내 것으로 삼는다면 그것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은총도 모두 내 것이 된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7월 01일자 대전주보 : 제21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