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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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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5) - 피 묻은 쌍백합 :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 부부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 부부를 일컫는‘피 묻은 쌍백합’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삼류 영화 제목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내용을 알고 나면 흠모의 마음이 생긴다.

전통적으로 백합꽃은 주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봉헌하여 동정(童貞)을 지키며 사는 이를 상징한다. 쌍백합은 두 분의 동정자를 지칭하고, 그 앞에‘피 묻은’이란 수식어가 붙었으니 순교하신 분이란 뜻이다. 그런데 쌍백합이란 말이 참묘하다. 이는 동정 부부의 은유적 표현으로‘동정’과‘부부’, 즉 부부이지만 동정을 지키며 산다는 말이니 서로 모순이 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초창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성인전에 나오는 분들처럼 동정을 지키며 살기를 원했다. 이순이(루갈다)도 그 중 하나다. 그녀는 14살에 첫영성체를 준비할 때 나흘동안 집안에 들어 앉아 침식을 마다하고 열심히 준비하였다.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으로부터 첫영성체를 한 그녀는 한 번 모신 성체를 보존하기 위해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신 것을 그분과의 결합, 즉 결혼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한편 전주 초남이에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아들 유중철(요한)이란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도 동정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고 있었다. 주문모 신부님은 이를 떠올리고 같은 뜻을 가진 유중철과 이순이를 결혼시키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대로 1797년 둘을 결혼시켜, 당시 민간의 풍습을 따라 유중철이 서울 처가에서 1년을 지내고, 다음 해에 이순이와 함께 전주 초남이로 내려왔다. 이때부터 둘은 시부모 앞에서 동정 서약을 하고 순교할 때까지 4년간 동거하며 오라비와 누이처럼 지냈다. 형태는 부부이지만 사실상의 수도생활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온 집안 식구들이 잡혀 들어갈 때 유중철이 먼저 잡히고, 몇 달 후 이순이도 뒤를 따랐다. 이후 유중철이 먼저 순교했다는 소식을 이순이가 옥에서 듣고는 어머니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마침내 편지 한 장이 집에서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요한(유중철)의 옷 안에서 자기 누이(즉 아내 루갈다)에게 보내는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그 쪽지에는‘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옛날 이순이가 영성체를 한 번 하고 예수님을 잘 모실 생각에 동정을 결심했다는 것이 너무 과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지금은 너무 준비 없이 영성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떠올려본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6월 24일자 대전주보 : 제2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