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21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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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3) - 계모의 아들과 그 동료 : 홍필주(필립보)와 김종교(프란치스코)

어려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애들이 많이 부르던 가사 중에,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서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고 살았대요.”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콩쥐 팥쥐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계모(새엄마)는 악녀의 대명사로 여긴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선입관일 뿐이다.

홍필주(필립보)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고 계모 밑에서 자랐는데, 그 계모가 초대 조선 교회의 최고 여성 회장으로 꼽히는 강완숙(골롬바)이다. 강완숙은 자신이 먼저 입교하였기에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아들 홍필주를 더욱 열심한 신앙인으로 만들고자 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덕행과 모범을 잘 따랐다.

강완숙이 천주교를 몹시도 반대하는 남편을 떠나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아들 홍필주도 동행했다. 심지어 시어머니도 따라나섰으니 강완숙의 영향력을 알만하다.

강완숙이 아무리 대단해도 조선시대의 법도가 있었기 때문에 아들 홍필주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을 집에 모셔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렇게 되자 그 집은 자연스럽게 초대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고 박해가 일어나자 집안 모든 식구들이 체포되었다.

심문과정에서 홍필주가 형벌을 못 이겨 점점 마음이 약해지고 있을 때 어머니 강완숙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니가“필립보야, 너는 어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머리 위에 임하시어 비추고 계심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그릇된 길로 가려느냐?”고 권면하는 소리를 듣고 용기를 얻은 홍필주는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홍필주와 같은 날 순교한 김종교(프란치스코)는 한양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의원이었다. 학문적 호기심이 남달랐던 그는 새로운 학문으로 여겨지던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김범우(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후 한양의 신자들과 교류를 하다 보니 홍필주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평소 둘이 얼마나 친분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양 서소문 밖에서 같은날 참수를 당하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홍필주는 어려서 친어머니를 잃었으나 좋은 동반자를 얻었다. 계모 강완숙이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었고, 순교의 형장에는 김종교가 함께 있었다. 잃은 것에 집착하면 잃은 것만 보인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극복할 사람을 보내주시는데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6월 10일자 대전주보 : 제21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