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216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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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2) - 우리 본향(本鄕) 어디메요 : 한정흠(스타니슬라오), 김천애(안드레아), 최여겸(마티아)

한정흠, 김천애, 최여겸은 모두 전라도 출신으로, 지난주에 소개한 충청도 출신 김광옥(안드레아)과 김정득(베드로)과 같은 날 서울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분들이다.

한정흠(스타니슬라오)과 김천애(안드레아)는‘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영향으로 신앙을 가졌다. 전라도 김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한정흠은 유항검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스승이었고, 김천애는 유항검의 하인이었다. 둘은 같은 집에 살고 있었으나 신분으로 치면 가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런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함께 붙잡혀 전주 감옥에서부터 서울을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료가 되었다.

전라도 무장 출신의 최여겸(마티아)은 처가가 한산(충남 서천군)인데 그곳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교우가 된 후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잠시 처가에 피해 있다가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을 거쳐 전주로 압송되었는데 거기서 한정흠과 김천애를 만나 동료가 되었다.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세 동료는 결국 서울로 이송되었고 거기에서 충청도 출신의 김광옥과 김정득을 만나 동료 둘을 더 얻었다.

이렇게 다섯이 된 동료들은 같은 날 사형판결을 받았는데 천주교에 대한 경고의 표시로 각자 고향으로 보내어 참수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의 고향길은 멀고 멀었다. 이미 여러 차례 고문을 받으며 만신창이 된 몸으로 서울에서 충청도와 전라도로 가야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쁘게 걸어갔고 고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처형되었다. 충청도의 김광옥과 김정득은 8월 25일에, 전라도 김제의 한정흠은 8월 26일에, 전주와 무장의 김천애와 최여겸은 8월 27일에 각각 하느님 품으로 갔다.

옛 교우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천주가사(天主歌辭) 중에 사향가(思鄕歌)가 있다. 본 고향(鄕)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하며(思) 부르는 노래(歌)이다. 그 첫마디는 이러하다.

** 어화우리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어떤 때는 아무 뜻 없이 한 소리가 예언자의 말이 될 때가 있다. 사형판결을 내린 이가,  “그들을 고향으로 보내 처분하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그 순교자들을‘참고향’으로 보냈다. 그분들은“우리본향 찾아가세”하며 멀고 먼 길을 즐거이 걸어갔으므로.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6월 03일자 대전주보 : 제2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