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9215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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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21) - 의좋은 교우 : 김광옥(안드레아)과 김정득(베드로)

친척인 김광옥과 김정득은 지금은 같은 예산군에 속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인 여사울과 대흥 출신이다. 대흥에 가면 옛날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던‘의좋은 형제’의 효제비가 서 있는 공원이 있는데 이곳 출신의 김정득과 김광옥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면‘의좋은 교우’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김광옥(안드레아)은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과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기에 그의 영향으로 50세쯤 되었을 때 신자가 되었다. 김광옥은 동네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데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여서 사람들이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영세를 한 이후 얼마나 순하게 변하였던지“젖먹이 어린아이 같았다.”고 한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
이다.

인접 고을에 사는 김정득(베드로)은 김광옥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서로‘의좋은 교우’가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둘은 교회 서적과 성물만을 지닌 채 공주 무성산으로 들어갔다. 평소 순교를 열망하던 그들이 산으로 피해 간 이유는 감히 자신들의 힘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교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이다.

둘은 공주에서 체포되어 각자의 고향과 청주, 서울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심문을 받는데 이때마다 하느님을 배반하라고 강요하는 관리들에게 김광옥이 신앙을 고백한 말들은 듣는 자체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더 이상 나에게 재차 묻지 마십시오. 충실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실한 아내는 두 남편에게 몸을 맡기지 않습니다.”

“사또, 관장께서는 임금님의 명을 어기시겠습니까? 임금님을 부인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만번이라도 아닙니다. 저는 저의 대왕이시며 저의 아버지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고향에서 처형하라는 사형판결을 받았으므로 서울부터 고향으로 함께 이송되었다. 하지만 고향이 속한 관청이 서로 달라 예산과 대흥으로 갈라지는 길에 오게 되자“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는 말로 서로 격려하며 헤어졌다. 둘은 다음날 같은 시간에 예산과 대흥의 장터에서 서로의 약속을 지켰다. 이제는 두‘의좋은 교우’를 아무도 갈라놓지 못하리라.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5월 27일자 대전주보 : 제2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