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땅에 교회가 설립된 이후 조선에 입국하여 처음 활동한 사제는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다. 이분이 한양에서 제일 먼저 머물며 말을 배운 곳은 최인길(마티아)의 집이었다. 1795년 순교한 최인길은 중국을 왕래하며 통역을 하는 역관이었으므로 주문모 신부님 입장에서 보면 그 집은‘말이 통하는 집’이어서 편안히 머물만한 곳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최인철(이냐시오)은 최인길의 동생이므로 자기 집에서 자연스럽게 신부님을 대하고 살며 신앙을 키워갈 수 있었다.
또 다른 주인공 김현우(마태오)는 1786년 유배지에서 순교한 김범우(토마스)가 그의 이복형이고, 1801년 포도청에서 순교한 김이우(바르나바)가 그의 친형이다. 김현우 역시 역관집 아들이었으므로 비교적 쉽게 주문모 신부님과 접촉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최인철과 김현우는 여러모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같은 날 함께 순교하게 된다.
조선 교회가 이 땅에 받아들여지고 정착하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들 중에 역관과 그 집안사람들이 크게 눈에 띈다. 역관은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한 선진문물의 교류지인 중국을 왕래하는 사람들이어서 국제정세의 변화를 빨리 간파하고 수용했던 인물들이었기에 천주교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 들였다. 뿐만 아니라 심지도 굳어서 양반 신자들이 제사문제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교회를 떠나갈 때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교회의 중추
역할을 하던 이들이었다.
신분으로는 중인에 속한 역관들이 이러하다는 것은 나라에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인철과 그 주변 사람들이 처음 체포되었을 때에 임금은“대개 중인의 무리들은 양반도 아니고 상인(常人)도 아니며 둘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가장 교화하기 어려운 자들이다. 경들은 이 뜻을 알아서 각별히 조사하라”는 교지를 내릴 정도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최인철과 김현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검거되고 심문도 혹독하였다.
그래서 한 때 최인철은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난 바도 있었다. 모든 시련을 이겨낸 후 지금 그분들은 하느님 나라에 계시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께서 임하셔
서 교회가 설립될 때에 여러 지방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해도 통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늘 성령이 함께 하는 천상 교회인 하느님 나라는 아무 걸림이 없이‘말이 통하는 집’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곳에서 역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괜한 걱정도 해본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5월 06일자 대전주보 : 제21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