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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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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17) - 주보 성녀의 삶을 따라 : “오래오래 주님 궁에서 살으오리다.”(시편 23,6) : 강경복(수산나)과 문영인(비비안나)

강경복과 문영인은 궁녀(宮女)다. 텔레비전에서 궁녀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때로는 로맨틱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궁녀는 왕권의 그늘 아래서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꽃잎과도 같은 존재들로 평생을 왕과 왕실을 위해 시중을 들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는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왕과 결혼한 사이도 아니면서‘왕의 여자’로 여겨져 평생을 홀몸으로 살아야하는 존재들이었다.

궁녀들 중에는 신자가 되는 이들이 많았다. 성경에 보면‘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이 잘 받아들여졌듯이 조선시대의 궁녀들도 화려해 보이면서도 가난한 존재들이었기에 복음을 잘 받아들였다. 강경복과 문영인은 그런 궁녀들 중 대표적인 순교자들이다.

강경복(수산나)은‘폐궁’이라고도 불리는‘양제궁’의 궁녀였다. ‘폐궁’이란 궁궐에서 쫓겨난 왕실의 친족이 거처하던 집을 일컫는 말이니 강경복은 궁녀 중에서도 제일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었던 셈이다. 궁녀들 안에서도 좋고 나쁜 자리의 철저한 구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경복은 양제궁의 주인인 송 마리아의 권유로 신자가 된 이후 주인과 함께 강완숙(골롬바)의 집으로 가서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주례하는 미사에도 참석하
고, 박해가 시작되자 주문모 신부님을 양제궁에 숨겨주기도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문영인(비비안나)은 한양에 거주하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일곱 살이 되던 1783년에 궁녀로 뽑혔다. 이른 나이에 궁에 들어갈수록 더 좋은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 궁녀의 세계였으나 문영인은 천주교를 믿음으로써 그런 기회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21살이 되던 해에 병에 걸려 잠시 궁궐에서 나와 있던 사이 천주교를 알게 된 그녀는 강완숙의 집을 드나들며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이후 다시 궁궐에 들어갔으나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발각되어 궁에서 쫓겨났고 박해가 시작되자 체포되었다.

강경복과 문영인은 궁녀의 몸으로서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때문에 둘 모두 한때 배교하였으나 다시 번복하고 순교의 길을 갔다. 문영인이 진술한 대로“첫 번째 진술에서는 비록 천주교를 배척한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건대 입으로는 배척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실제로 배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해 동안 독실히 믿어 온 신앙인데,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라고 한 것이 그들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시편 23장의 한 구절은 성무일도에서“한평생 은총과 복이 이 몸을 따르리니 오래오래 주님 궁에서 살으오리다.”라고 멋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강경복과 문영인은 자신들이 믿었던 신앙의 힘으로 지금은 주님의 궁궐에서 진정한 궁녀가 되어 오히려 그분의 시중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분은 주님이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던 분이시기 때문이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4월 29일자 대전주보 : 제2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