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세례명을 어떻게 정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보통 유아 세례를 받을 경우 생일에 가까운 성인(성녀)의 이름을 선택하거나, 어른이 되어서 영세하는 경우에는 본받고 싶은 성인이나 유명한 성인을 선호한다. 어떤 신자들은 세례명이 예쁜 성녀의 이름을 택해 예쁜 별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초기 조선 교회의 신자들은 세례명에 참으로 큰 의미를 두었다. 단순히 세례를 받으며 부여받는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이름, 즉‘본명’(本名)으로 여기며 그 이름을 사용하였고, 그 성인(성녀)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심아기의 주보 성녀 바르바라와 윤점혜의 주보성녀 아가타는 모두 동정으로 살다가 순교하신 분들이다. 바르바라는 자신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것을 안 아버지로부터 참수를 당한 성녀이고, 아가타는 어려서부터 일생을 하느님께 동정으로 봉헌하기로 결심하며 살던 중 청혼을 거절당한한 고관에 의해 순교한 성녀였다. 심아기와 윤점혜는 모두 이런 성녀들의 삶을 따라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결심하였으나 그것은 조선의 여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다.
동정 생활이란 몸과 마음 모두를 오롯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인데 하느님 믿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조선 왕국에서 나라의 풍습까지 거슬러가며 여자의 몸으로 혼자 살아가려면 남다른 인내가 필요하였다. 윤점혜의 경우 혼기가 차자 어머니가 마련해 둔 혼수 옷감으로 남장을 지어입고 사촌 오빠의 집으로 도망가서 오랫동안 숨어 살았다. 집안에서는 그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집으로 돌아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동정 생활을 계속하였고, 나중에는 한양에 있는 강완숙(골롬바)의 집으로 가서 동정의 뜻을 같이한 여자 신자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더 나아가 그녀는“나도 아가타 성녀처럼 순교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주보 성녀의 삶이 자신의 삶이 되기를 바랐다.
이후 그들은 실제로 자기 주보 성녀들처럼 되었다. 심아기(바르바라)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순교할 때까지 동정의 삶을 살았고, 윤점혜(아가타)는 자신이 바랐던 대로 아가타 성녀가 갔던 순교의 길을 따랐다.
우리는 세례명을 갖고 살아가는 신자들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 지어주었든, 스스로 선택했든 그 이름은 이제 자신의 것이다. 한 번쯤 자기 이름의 성인(성녀)들이 어떤 분들인지 숙고해볼 일이다. 혹여 따라갈 수 있다면 따라도 가보고.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4월 22일자 대전주보 : 제2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