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14) -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윤운혜(루치아), 정광수(바르나바), 정순매(바르바라)위의 세 분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자신들의 삶이 된 분들이 또 있을까? 그 말씀은 이러하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 윤운혜(루치아)와 정광수(바르나바)는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신앙으로 맺어져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여주 시댁의 부모님이 모두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부모님의 반대로 서로 혼인문서도 주고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집생활이 시
작되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금지되었던 제사 때만 다가오면 번번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정광수의 여동생 정순매(바르바라)는 오빠 부부로부터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고, 이후 동정을 지키며 살겠다고 시집가기를 거부하였으니 신자가 아닌 부모님 둘과 신자인 셋이 분열을 일으킬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결국 정광수, 윤운혜 부부와 정순매가 부모님 곁을 떠나 한양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셋은 한양 벽동에 거주하며 집에 따로 경당(chapelle)을 마련하고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을 비밀리에 모셔 미사를 드릴 만큼 열성을 보였다. 옛날 열심한 공소 회장님들 집에서는 방 한 칸을 아예 따로 비워 교우들과 모임을 갖는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규모는 작지만 충분히‘경당’이라 불릴 만하다. 정광수 부부의 집에 있는 경당 역시 이러한 형태였을 것인데 막 태동한 조선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요즘의 어떤 성당과도 견줄 만한‘지극히 경건한 집’이었을 것이다.
셋은 같은 집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함께하였건만 결국은 잡히게 되었고 순교한 시기는 각각 달랐다. 먼저 윤운혜가 1801년 5월 14일 한양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고, 다음으로 시누이 정순매가 1801년 7월 3일에 경기도 여주에서, 마지막으로 정광수가 1802년 1월 29일에 여주에서 참수되었다. 남매는 고향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기 고향에서 참수되었으니 바로 자신들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예수님께서“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 것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밀알이 죽어야 새 생명이 탄생하듯, 자신과 이웃을 분열시키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없으면 참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 교회사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어 버린 정광수와 그 가족들은 그 분열을 마음뿐만 아니라 삶 안에서 고스란히 겪었다. 그들은 어떤 생명과 평화를 얻었을까?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4월 08일자 대전주보 : 제21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