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827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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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13) - 참다운 효(孝)와 우정 : 최필제(베드로)와 정인혁(타데오)

우리는 미사 때“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하며 가슴을 치는데 거기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실어 가슴을 치는가? 우리 교회 역사상 최필제(베드로)는 가장 큰 무게로 가슴을 친 분일 것이다. 큰길가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그는 어느 날 몇몇 교우들과 함께 모여 통회의 기도를 바치며 가슴을 치던 중 체포되었다. 노름을 단속하러 다니던 포졸들이 최필제의 집에서 나는 가슴 치는 소리를 우연히 듣고는 투전하는 소리로 착각하여 급습하였던 것이다.

본래 진실하고 성품이 후덕하여 뭇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던 최필제는 잡힌 후에도 신실한 행적을 보였다. 옥에 갇혀 있는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밖으로 나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해달라고 관장에게 청하였다. 조선은 효(孝)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던 나라였기에 그 청이 받아들여졌고, 최필제는 옥 밖으로 나가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당시의 풍습으로는 아버지가 옥에 갇힐 일이 생기면 아들이 대신 옥살이를 하는 것도 허용이 되던 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때 포졸들이 그 기회를 이용하여 도망가라고 넌지시 귀띔해 주었지만 최필제는 장례를 마치고 다시 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도 효도를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한 번 알아 모신 대부(大父)를 결코 버릴 수 없으니 하느님 아버지께도 효(孝)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시대 교우들의 한결같은 신앙이었으니 말이다.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에“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겐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라고 하며 하느님 공경을 제일 윗자리에 놓은 것은 빈말이 아닌 참다운 효를 행하겠다는 당시 교우들의 신앙고백이었다.

이후 최필제는 자신이 인도하여 입교시킨 정인혁(타데오)과 같은 날(1801년 5월 14일)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였다. 둘 다 한양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분들이었으니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친구(敎友)로 발전하였고 급기야“벗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요한 15,12) 우정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였다. 지금은 하느님 나라에서 동업을 하고 계시려나?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4월 01일자 대전주보 : 제21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