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7836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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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09) - 하늘과 우리를 이어주는 中人 : 최창현(요한)과 최필공(토마스)

서로 먼 친척 관계인 최창현과 최필공은 중인(中人) 집안의 사람들로 한양에서 출생했다. 중인은 양반 다음 가는 신분층으로 서울의 중앙부에 거주 지역을 삼는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전통이나 교양 면에서 보면 양반 못지않았으나 높은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고 당시로서는 소소한 것으로 여겼던 의술, 역관 등의 기술직에 종사했다. 이러한 신분적 특성 때문에 조선에 천주교가 알려졌을 때 중인에 속한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들은 북경을 왕래하며 새로운 문물을 자주 접하는 이들인데다가,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는 천주교의 교리에 자연스럽
게 매력을 갖게 되었다.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최창현(요한)은 천주교회가 조선에 설립된 첫해인 1784년 겨울에 입교했다. 글을 잘 알았던 그는 한문으로 된 교회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문을 잘 모르는 교우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쉬운 말로 사람들을 직접 가르쳤으며 덕망도 뛰어나 모든 교우들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초기 교회의 총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기 집 아랫방에 비단으로된 휘장을 치고 촛불을 밝혀 전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해 정기적인 모임을 했다.

한양의 의원 집안에서 태어난 최필공(토마스)은 최창현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는 비교적 늦게 영세 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성이 대단하여 길가는 사람들에게도“하늘과 땅의 왕이신 분을 반드시 섬겨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전교도 했다. 아직 공식적인 박해가 시작되지 않은 때의 행동이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이러한 적극성 때문에 그는 양근의 권철신, 충청도의 이존창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손꼽히게 되어 박해가 시작되자 곧 체포되었다.

공교롭게도 최창현과 최필공은 한 때 마음이 나약해져 배교 의사를 밝혔으나 다시 신앙을 고백하고 형장으로 나아가 1801년 4월 8일 같은 날 함께 순교했다. 이 세상에서 中人이었던 그들은 이제 하늘과 우리 사이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는 中人으로 거듭나 진정한 중인이 되셨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3월 04일자 대전주보 : 제2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