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7835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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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08) -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강완숙(골롬바)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오랜 방황 끝에 주님을 알고 나서 한 말씀이다. 이 말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강완숙(골룸바)이 마음 속에 떠오른다. 하느님 아버지를 알기까지 두 분의 삶이 꼭 그 성인을 빼어 닮았기 때문이다.

정약종은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른 학자 중 한분이었으나 벼슬길에는 관심 없었다. 진리에 목말랐던 그는 학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도교에도 심취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다다르려 했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참된 길이 아니라 하며 비난도 하였으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4, 5년 후에 받아들이고 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망설임 없는 길을 갔다.

강완숙 역시 마찬가지였다. 삶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 때 불교에 몰두하여 속세를 떠나 출가할 결심도 했으나 만족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후 결혼을 하여 평범하게 사는 듯하였지만 당시 내포지방에 널리 퍼졌던 천주교를 알게 되면서 삶이 바뀌었다. 그녀는“천주교”라는 이름을 듣고서는‘천주라면 하늘과 땅의 주인일텐데, 종교의 이름이 정확하니 그 교리는 참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책들을 청하여 보고서는 가뭄 끝에 비처럼 받아들였다.

두 분은 늘 갈망하다가 늦게야 깨달은 소중한 진리를 나누어 주기 위해 애썼다. 정약종은 서민들이 알아듣기 쉽도록『주교요지』라는 한글 교리책을 직접 지어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신분의 구분 없이 대함으로써 몸으로도 가르쳐 주었다. 강완숙은 조선시대의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여자의 몸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디든지 갔으며, 탄탄한 지식과 언행으로 남자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동
정으로 살 뜻을 둔 처녀들을 모아 사실상의 수도생활을 하며 일꾼들을 양성했다.

두 분은 죽음의 순간까지 거침이 없었다. 정약종은“하늘을 바라보고 죽고 싶다.”며 얼굴을 땅으로 향하도록 하는 관례를 거슬러 칼을 받았고, 강완숙은 사형수의 웃옷을 벗기는 관행을 거슬러“옷을 입고 죽기를 청합니다.”라고 당당히 요구함으로써 정숙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겁내지 마라,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분들을 통해 깨닫는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2월 26일자 대전주보 : 제2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