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7623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2/19
  • 조회수 : 1,520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07) - 갈라지지 않은 마음 : 조용삼(베드로), 이중배(마르티노)

조선시대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하층민들이 많다. 신분의 굴레로 인해 사람대접을 제대로 못 받던 그들에게“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란 가르침과 교우들의 구체적인 실천은 그야말로 복음(기쁜 소식)이었다.

조용삼(베드로) 역시 이러한 신자들 중 하나였다. 그는 생김새도 보잘것없었던 데다가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못한 처지여서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었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아버지와 함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부살이를 하러 간 곳이 마침 교우 집이어서 입교하게 되었다. 이후 유명한 양반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다산 정약용의 형)에게 교리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가 자신의 열성을 칭찬하며 대우해 주자 신앙심이 점점 더 깊어졌다.

1801년 박해가 일어나면서 조용삼은 아버지와 함께 경기도 감영으로 잡혀갔다. 아버지가 고문에 못 이겨 배교를 하였는데도 관장이 조용삼에게“네가 배교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도 함께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 역시 배교하고 풀려났다. 이후 관가 문을 나설 때 마침 잡혀오던 이중배(마르티노)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조용삼을 크게 꾸짖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여 아버지는 집으로 가라하고 자신은 다시 관가로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였다. 이렇게 하여 둘은 감옥에서 함께 지냈고 그때까지 영세를 받지 못한 조용삼은 옥에 있는 교우들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조용삼은 배교를 취소했다는 이유로 더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누구도 꺽지 못할 한마디를 남겼다.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님을 위해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을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를 타일러 함께 순교의 길을 간 이중배 역시 마음에 새겨야 할 한마디를 남겼다. 의술이 좀 있었던 그가 감옥에서 오히려 병을 더 잘 고치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처방을 묻자, “특별한 처방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저는 다만 천주의 가르침을 따를 뿐이오. 불살라도 타지 않는 책들이 제 마음속에 있소”라고 대답하였다.

이들처럼 하느님을 향해 오롯이 서 있는 상태를 바오로 사도는“갈라지지 않은 마음”(1코린 7,34 참조)이라 했다. 갈라지지 않은 마음을 누가 무엇으로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2월 19일자 대전주보 : 제2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