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726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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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03) - 윤유일(바오로)과 지황(사바) -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이라고 하며 구원의 소식을 가져다주는 파수꾼을 기다렸다. 한국 교회 초기 역사에서 이 파수꾼(밀사)의 역할을 한 대표적인 분들이 윤유일과 지황이다.

선교사들이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에서 먼저 들어온 교리책들만을 읽고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 교회는 역동성도 있었지만 그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 가끔은 큰 실수를 범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성직자를 임의대로 임명한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이다. 교황, 주교, 신부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성직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서품되는지를 몰랐던 초기 교회 신자들은 명망이 있는 이들 10명을 뽑아 신부로 임명하여 세례, 미사, 고해성사를 거행하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성사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잘못을 감지하고 확실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파견한 사람이 윤유일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갔으나 두 번째부터는 지황을 동행하여 서울과 북경 사이를 오가며 두 교회사이의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었다. 이들이 중국교회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전하는 자체로써 교우들은 큰 기쁨이었으나, 그들이 가져온 가장 기쁜 소식은‘진짜’성직자가 파견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그 소식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중국 교회에서 파견한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한국으로 입국시킴으로써 진짜 미사와 고해성사가이 땅에서 거행되도록 하였다.

교회가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큰일을 한 분들은 그만큼 고통도 많이 받게 마련이었다. 두 분은 외국인을 끌어들인 주동자였기에 체포된 후 모진 형벌을 받았고 정식 사형절차가 아닌 방법, 즉 죽을 때까지 형벌을 가하는 방법(장사)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겨울인 동짓달에 파견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동지사(冬至使) 일행을 따라 춥고 험난한 길을 동행하던 윤유일과 지황은 1795년 6월 28일 죽음의 순간도 함께하였다. 걷고 또 걸어 서울과 북경을 오가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인지 두 분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걷지 않고 유유히 흘러 하느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도록.

*사바(Sabbas, 439~532년) 성인: ‘마르 사바’ 라는 수도원의 창설자이다. 아담이 사과를 먹어 죄
를 지었기 때문에 사바 성인은 평생 사과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01월 15일자 대전주보 : 제2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