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품일 | 1920-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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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종일 | 1945-11-23 |
| 묘지 | 대전교구 성직자 묘원(하늘묘원) |
| 성품성구 |
오기선 신부의 글 중에서
최 마르코 신학생은 교장 신부님의 특허로 밤이 지새도록 미사비엘 성모 동굴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빌려 성모 마리아께 서원했다. …“원죄 없으신 성모 어머니, … 이 아들을 보십시오. … 제 병을 낫게 해 주십시오. 오늘부터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묵주의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다 죽게 된 저를 완쾌시켜 신부가 되게 해 주시면 성모님께 성당을 지어 드리겠습니다….”1937년 공주읍 한복판 언덕 위에 붉은 벽돌과 푸른 벽돌을 섞어 성전을 지은 뒤 성모님께 봉헌, ‘성모 성탄 성당’으로 삼았다.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281~282쪽.
참조) 유언에 따라 최 신부의 묘는 공주 성당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마련되었다. 이 묘는 1973년에 성당 구내로 이장되었고, 2003년 4월 9일 대전신학교 성직자 묘지로 또 한 차례 이장되었다. 6ㆍ25전쟁 중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는 그분의 묘비와 유품을 묻은 묘가 공주 중동 성당 구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