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는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주님을 대리하여 행하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뽑으신 사람이다.
사제는 미사 때에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다"라고 말한다. "…이는 예
수님의 몸이다. 너희는 모두 받아 마셔라. 이는 예수님의 피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사제는 한 인간
으로 볼 때 부족함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시는 도구로
쓰시고자 뽑으신 사람이다.
사제는 하느님 이름으로 죄를 사하여 주기도 하고, 남녀를 부부로 축복하며 그
증인이 되기도 한다. 또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고 축복하는 병
자성사를 거행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대단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사제는 부족한 인간이지만,
받은 임무로 보아 그의 신원은 놀랄만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두 번이나 "제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
다."(요한 17,14.16 참조)라고 하셨다.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초월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판관기 7장에 기드온이 미디안족을 쫓아내는 내용이 있다. 기드온 군사는 3만 명
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물가에서, 개가 핥듯이 물을
핥는 자를 모두 따로 세우게 하셨다. 그 수가 300명이었는데, 그들만을 데리고 가
서 싸우게 하셨다. 만일 3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싸워 이기면 자기들 힘이 세서 이
겼다고 착각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쳐서 이긴 것은
주님의 돌보심이지 자신들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자주, 우리 세력을 키워 우리 힘으로 싸워 이기기를 원하는지 모
른다. 착각이다. 우리 세력, 우리 힘을 믿어선 안 된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이것이 승리의
길이다.
사제, 그는 주님께서 뽑아 세우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변하지 않는
긍지와 함께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평화신문[펌] '사제를 해를 마감하며 -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제'
10월 3일 몽골 가나안복지센터가 위치한 바양호쇼 10동 주민들과 어르신들,
그리고 가나안농장 인근 세르겔린 솜에 있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했습니다.
몽골 할아버지 한 분이 신부님에게 퉁명스럽게 질문합니다.
"외국사람이 왜 우리 몽골에 왔느냐?"
신부님이 대답하십니다.
"그냥 오게 되어서 왔습니다..."
잔치를 베풀고 나서 예수님 믿으라고 할까봐 걱정하던 몽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경계심이
조금은 풀어집니다.
사제는, 그리고 선교사는, 더구나 선교사로 살아온 사제는
예수님 때문에 무릎을 꿇습니다.
한 영혼 때문에 무릎을 꿇습니다.
일생을 소련 공산주의 치하에
"하느님은 없다"고 세뇌교육을 받아온 할아버지가 너무나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예수님 믿으시라고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선교사제는 그 대신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예수님 믿으시라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모욕당하고 시비 거는 것을 그냥 묵묵히 참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간 어린양처럼 반항하지 않고
바보처럼
자신을 버립니다.
남자는 무릎을 꿇지 않으나
사제는 무릎을 꿇습니다.
세상사람들 눈에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르나
부족하고 약한 사제의 모습 안에는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힘과 은총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60 환갑을 맞이하시는 이준화 노베르토 신부님,
척박한 몽골에서 선교사로 살아오신 지난 14년 세월, 그러나 아직도 차갑기만 한 몽골...
그 영성 묻어나
하느님이 신부님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 모습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제품 받을 때 땅에 엎드린 그 때 생각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장 몰래 찍었습니다.
부디 용서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