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본당(주임신부 이원순 마티아)이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이하여 1950년 6.25동란 중 순교하신 공마리오 신부님 추모비 제막식을 2009년 9월 26일(토) 오후 12시 30분에 당진성당 대건관 앞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라자로) 주교님 집전으로 거행하였습니다.
공마리오 신부님은 1948년 당진본당 제 4대 주임으로 부임하시다가 1950년 8월 체포되시어 동년 9월 23-26일 형무소 인근에서 피살되셨습니다. 그동안 교우들의 기억에서 잊어지셨었지만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이하여 먼 타국땅에서 주님을 증거하다 순교하신 공마리오 신부님을 기억하여 추모비를 제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막식 후에 새롭게 리모델링한 성심관에서 본당 설립 70주년 축하연을 진행하였습니다.
코르데스(Cordesse 공 마리오) 신부
1909년 9월 5일 프랑스 파리 출생
1935년 6월 29일 사제품
1938년 10월 23일 한국 입국
1948년 8월 22일 당진 본당 주임
1950년 8월 15일 구룡리 공소에서 체포
1950년 8월 22일 대전형무소로 이송
1950년 9월 23~26일 형무소 인근에서 피살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돋아나고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라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돋아나리라.”
(시편 92,13~14)
공 마리오 신부님은 1948년 8월 당진 본당 4대 주임으로 오셨다. 교우들과 정이 들기도 전에 1950년에 6ㆍ25전쟁이 일어나고 성당이 인민군 측에 징발되자 구룡리 공소로 몸을 피하셨다. 8월 15일 자신을 잡으러 인민군들이 오자 교우들이 다칠세라 자진 출두하여 체포되시어 당진 성당에 구금되셨다. 전쟁이 나면 함께 순교할 것을 약속한 합덕 본당 페랭(백 비리버) 신부님과 함께 8월 22일 대전형무소로 이송되어 9월 23~26일 사이의 어느 날 그곳에서 피살되셨다.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그분의 무덤도, 그분을 기념하는 비석 하나도 없었기에 공 신부님은 잊혀졌다. 머나먼 프랑스에서 우리를 찾아오셨으나 우리는 그분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였다. 무심한 세월 속에 신부님이 피살되신지 59년이 되는 오늘에야 기억하고 추모한다.
2009년 9월 26일
본당 설립 70주년의 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