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25232
  • 글쓴이 : 신재풍
  • 작성일 : 2009/02/10
  • 조회수 : 4,402

신방2동성당 첫영성체예식(풍세공소)

2009년도 신방2동성당 첫영성체 교리반을 열었다.

1월 6일부터 2월 4일까지 매주 화, 수, 목요일 오후 3시-5시에 초등부 3학년이상 학생 8명이
첫영성체 교리를 복음선교사의 지도를 받고,
2월 5일 남 마태오 주임신부님의 찰고를 통과 한 다음, 2월 7일(토) 오후7시 학생주일미사 시간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첫 고해성사와 첫 성체성사(첫영성체)의 은총을 받았다.
이날 세례성사를 받은 어린이 1명을 포함한 세광구역 2명, 신도구역 3명, 벽산구역 2명, 광덕구역 1명의 어린이가 겨울방학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여 첫영성체 교리를 이수하였다. 이 기간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창세기 말씀에서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창세기 1,28 참조)”라고 하신 말씀은 단지 “사람의 수적 많음”을 축복하시는 말씀이라기보다는 그 말씀 바탕에는 근본적으로 당연히 “복음적으로 진실된 사람”을 축복하시는 말씀이 들어있다.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신앙교육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축복을 받을 수 없다.

복음선교는 나 자신을 포함하고 동시에 타인에게까지 이루어지는 것인데, 한 가족 한 가문 안에서도 대물림이 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모두는 이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면에서도 우리의 삶은 아직 “복음선교지역”이며 “복음대목지역”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으로 성장하는 동안에 가정생활 안에서 매일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흥이 나게 읽으며 부모님으로부터 복음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배우는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워야할 신앙생활이, 현재 시대의 부모들이 볼 때에는 아직까지는 생소하고 신앙 깊은 이들만의 특별한 소유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칭 가난한 사람들”은 생계걱정 때문에 정신적 여유가 없고 가난한 가정형편 탓으로 돌리며 자신과 자녀들의 신앙을 모호하게 만들고, “자칭 부유한 사람들”은 현재의 부를 지키고 미래의 부를 차지하기 위한 온갖걱정 때문에 바빠서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마치 세상경제를 다 책임지고 있는 양 모든 것을 경제논리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돈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돈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 말을 기존 신앙인들에게 다시 반복하는 것이 이 “경제대란 시대의 징표이며 하느님의 메시지”이다. 오늘날 “신명(申命)”은 하느님의 복음말씀을 거듭거듭 되새기며 하느님 백성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잘못된 부분을 회개시켜 승화하는 것이다.
공동소유만을 내걸고 모든 것을 흡수해 폭력과 독재를 일삼던 공산주의가 멸망해가고, 개인소유만을 내걸고 과학, 경제, 자유방임을 교묘히 권력독점의 수단으로 만들어 세계를 자기 나라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우월주의들이 경제대란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곰이 제 재주에 넘어간 꼴이다. 물론 이 지적은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 긍적적인 사람들을 지적하는 말은 아니다.

복음적 논리로 경제난국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경제논리도 “자전과 공전”이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경제도 내 것만을 추구할 때 나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에 대대적인 멸망이 오는 것이다.
또, 노령계층과 젊은계층과 어린계층이 서로 분리 돼가는 현상이 과연 복음적으로 올바른 길인지 묻고 싶다. 젊은부부는 밤낮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노부모는 복지시설에, 어린아이는 위탁시설에 따로따로 살아가는 편의주의가 그 중대한 이유라면,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생활방편인양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누적되는 후대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삶전체”의 인간적 파멸로 다가 올 것이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 위에 “복음적 나눔”으로 승화시켜 이를 막아야 한다. 우리 인류는 이 경제대란 시점에서 복음적 경제 논리로 새로운 경제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복음선교는, 물론 교회적인 우리공동체가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하고 그들을 이해해야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과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애매모호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잘 살 때나 못 살 때나 변함없이 확고한 신앙생활을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통해서 진실로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적인 대안이 우리 대전교구에서 사목지표로 세워놓은
“소공동체가 활발한 친교의 본당 공동체”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
“청소년에게 활력을 주는 본당 공동체”
“노인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본당 공동체” 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사목단체, 영성단체, 활동단체들의 활성화에는 단체별 결속이 잘 이루어져 가고 있지만 대타적인 관계에 있어서 다른 단체와의 서로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협력하는 것이 미약하다. 속지개념에 입각해서 소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여러 다른 단체에 속하는 이들과 노인, 젊은이, 어린이들의 세대별 계층과 그리고 내향성과 외향성의 또다른 이들 등등이 모여 있는 데, 이러한 다양성의 특성 안에서 자신을 조율하고 자율성과 자발성을 심도있게 성숙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꽃피고 열매를 맺어야 할 일치성과 친교성이다. 그리고 항상 사목중심에는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 위탁자(사도들과 그 후계자)를 중심으로 열매 맺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활발하였던 사목단체, 영성단체, 활동단체 회원들이 측면이나 후면에 서서 소공동체 활성화가 앞장 설수 있도록 이를 위해 걸림돌을 제거해 주고 옆에서 함께 뛰고 뒤에서 밀어 주어야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신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