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5-16일까지 대전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교구 청소년 축제인
가 개최되는 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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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리성지는 황무실, 오추리, 구만리, 덕산, 고덕, 양촌, 응정리(성동리), 상궁리, 거더리, 세거리/강개, 옥금재, 소들(점원리), 금티(봉산면) 등지와 관련된 교회사적을 담고 있는 성지이다.
2. 조선교구 4대 교구장 장베르뇌 주교는 조선 교회을 8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그 중 충청도 홍주지방을 ‘성모성탄’ 공동체로 지명하여 1857년에 조선교구 부주교로 성성된 다블뤼 주교에게 맡겼다. 당시 홍주 지역의 교회 공동체는 황무실이 중심지였다.
3. 하지만 황무실은 박해 발발시 퇴로 확보가 어렵고 농지가 적은 산간지역이라 교우들이 식량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삽교천이 홍수로 수계가 변하여 거더리(島村)나 배나드리(島里), 합덕 섬마을(島里)과 옥금리, 신암 하평리, 우강 내경과 신촌리와 같이 갯벌이 높아져 농지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촌락도 형성될 수 있는 지역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4. 그래서 덕산, 해미, 면천, 운산 등 산간에 은신하여 있던 교우들이 박해가 뜸해지자 삽교천을 이용하여 피신하기도 쉽고 개간하여 농지를 만들어 농사도 지을 수 있는 삽교천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5. 신리(新里)는 그 중 한 마을로 위에 열거한 마을들에 비해 아주 큰 홍수가 아니면 피해가 적은 마을이었다.
6. 안 다블뤼 주교님께서 언제부터 신리와 거더리를 오가시며 거주하셨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신리에 인접한 거더리는 마을에서 배를 타고 바로 삽교천 본류로 통하여 아산만과 서해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는 적지였다. 하지만 홍수로 일년에 한 두 차례 침수가 되어 출판사업이나 순교자 자료 정리 및 본관을 하기에는 적지가 아니라 홍수에 비교적 안전한 신리에 출판소를 세우고 문서를 보관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7. 신리 성지는 손자선 토마스 성인(?-1966)의 본가인데 안 주교님의 출판사업과 주교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놓은 집이다. 이 집에서 1861년부터 한수 이남(한강 이남)에서 사목하는 신부님들을 만나며 사목을 펼치시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발하자 거더리로 가셔서 삽교천을 통하여 피신하려하였지만 배를 띄울 수 없자 피신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만일 당신이 피신하면 당신과 인근에 숨어 있는 불란서 신부님들을 한양 포졸들이 체포하기 위해 교우들을 잡아 고문하고 협박하여 배교를 시킬 것이 걱정되어 거더리 손치호 니콜라오 회장 집에 머물다 위앵, 오메트르 신부님과 황석두 루가 회장님과 함께 체포되어 한양으로 갔다 갈매못으로 내려가 장주기 요셉 회장님과 함께 다섯 분이 같은 날에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