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295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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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 의안집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

의 안 집
(INSTRUMENTUM LABORIS)

2012.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

머리말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사도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믿음만이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제자로서 그들의 소명을 완수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서는, 주 예수님께 이렇게 간청하였다. 이 간청은 그들 자신의 한계를 체험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형제들을 용서할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믿음은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현존의 표징들을 드러내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뿌리째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격려해 주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2-24). 마태오 복음사가도 큰일을 이루려면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태 21,21).

주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의 믿음이 약하다고 나무라시기도 하였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여쭙자, 스승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마태 17,20)라고 대답하신다.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풍랑을 가라앉히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하시며 꾸짖으신다. 제자들은 하느님과 그분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물질적인 것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6,30; 참조: 루카 12,28).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이루시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제자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가면서 빵을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아시고, 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너희끼리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마태 16,8-9).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어 사도들이 있는 배로 건너오신 이야기가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신 다음, 베드로 사도의 외람된 청을 들어 주신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처음에 베드로 사도는 아무 어려움 없이 물 위를 걸어 예수님을 향해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14,30-31). 그러고 나서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가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께 엎드려 참다운 신앙 고백을 한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4,33).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많은 신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의 자세를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개별 교회들에는 약한 믿음 때문에 성사 생활과 신앙 실천에서 멀어지는 신자들이 많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바로 ‘믿음이 없는 세대’(aπιστοι, 마태 17,17; 13,58 참조)에 포함될 정도이다. 또한 초기에는 큰 열정을 보였지만 현대 세계의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여 지치고 두려워하는 개별 교회들이 적지 않다. 베드로 사도처럼, 인간적 능력을 뛰어넘는 도전들과 온갖 유혹과 적대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베드로에게처럼 신자들에게도 구원은 오직 주 예수님에게서만 온다. 신자들은 개인으로든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든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을 경험할 수 있다. 오직 주님만이 그들에게 손을 내미시어 신앙 여정에서 안전한 길로 이끄실 수 있다.

이처럼 복음서에 나타난 믿음에 대하여 간략히 성찰해 보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를 지내기로 결정하시어 믿음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셨다.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된다. 이 두 행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거행 중에 개최된다. 주 예수님께서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은 다시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마태 16,19 참조).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2). 우리 모두 앞에 “믿음의 문”(사도 14,27)이 다시 한 번 열릴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날에도 복음화의 목적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이다. 이 과업은 우선 개별 교회들, 곧 교구들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와 관련된다. 신자들은 가정과 공동체와 본당에 신앙의 보화가 전달되도록 마음을 쓰면서, 정기적으로 모여 전례 거행을 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고,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를 거행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증언과 선포, 예비 신자 교육, 교리 교육, 자선 활동을 통하여 이 과업을 수행한다. 복음화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일상 활동이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통상적인 이 복음화 활동은 새로운 열정으로 고무되어야 한다. 언제나 새로우시고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진리를 현대인들에게 전달하려면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아야 한다. 순교자들이 보여 준 것처럼 오직 굳건한 믿음만이 많은 중장기 사목 계획들에 활기를 주고, 기존의 조직들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또한 현대인의 요구와 현대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목적 창의력을 북돋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새로운 이 활력은 선교 활동(만민 선교)에도 새로운 자극을 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외딴 지역들만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복음이 전해진 나라들에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선교 활동은 오늘날 그 여느 때보다 시급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 힘입어, 세례 받았으나 교회와 신앙생활에서 멀어진 형제자매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대상은 그 누구보다 바로 이러한 형제자매들이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 신앙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신자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주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기쁨을 되찾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의안집」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며, 다가오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를 위한 안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서는 「의제 개요」 설문 답변들을 간추린 것으로, 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각국 주교회의들, 교황청 부서들, 수도 장상 연합회들이 답변을 보내 왔다. 주교대의원회의 주제에 관한 교회의 성찰에 동참하기를 원한 기타 단체들과 공동체들과 신자들도 답변들을 제출하였다.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사무처 평의회의 도움과 전문가들의 소중한 기여에 힘입어 전 세계에서 교회가 펼치는 복음화 활동의 많은 희망적인 측면들을 담아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의안집」은 교회가 현대의 많은 도전들과 어려움을 고려하면서도 복음화 활동을 적절히 계속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묵상 주제들도 제시하고 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시노드 교부들은 힘을 얻는다. 또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분명한 지도 아래, 기도와 경청의 분위기, 실질적이고 화기애애한 친교의 분위기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성찰할 채비가 되어 있다. 이 작업은 시노드 교부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친교를 지향하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의 대의원들은 성인들의 전구를 바라고, 특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시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청한다.

선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인류와 교회에 당신 손을 내미시고, 언제든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리고자 하신다. 선택된 이들도 하느님께서 내미신 손을 잡고, 믿음을 가지고 도움을 청하도록 초대받는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하신 예수님의 엄중한 물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러한 마음가짐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에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되풀이해서 이렇게 기도드린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우리는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가 오늘날 교회의 이러한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총을 청한다.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다”(티토 3,6). 또한 우리는 주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하고 거듭 간청드린다.

바티칸에서
2012년 5월 27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무총장 니콜라 에테로비치 대주교

 


서 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주교대의원회의 중동 특별 총회를 마치며 선포하신 대로 2012년 10월 7일부터 28일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주제로 열린다. 이 회의의 원활한 준비를 위하여 「의제 개요」(Lineamenta)가 마련되었다. 「의제 개요」에 제시된 설문에 대하여, 각국 주교회의들, 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교황청 부서들, 수도 장상 연합회에서 답변을 보내 왔다. 주교, 신부, 수도자, 평신도와 교회 운동 단체들도 개별적으로 사무처에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 준비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 성하께서 선택하신 주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온 교회에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 모든 의견과 고찰은 「의안집」 안에 간추려져 있다.

준 거

2.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는 가톨릭 교회에 특별히 중요한 때에 열린다.사실, 이번 총회가 열리는 시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선포한 「신앙의 해」의 시작과 맞물린다. 1) 따라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이 모든 기념들이 강조하는 회개와 성화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신앙을 재발견하라는 초대를 더 잘 이해하고 거듭 제안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시작하고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신앙의 해에 거듭 강조된 이 초대를 오늘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또 다시 우리에게 권유하신다. 바로 이러한 틀 안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새로운 복음화라는 주제를 논의할 것이다.

3. 그동안 발표된 그 밖의 다양한 문서들은 이 준비 단계만이 아니라 시노드 교부들의 토론을 위해서도 중요한 준거들이다. 오늘날 복음화에 대하여 논의하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직접 분명히 참고하여야 한다. 또한 바오로 6세께서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에서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과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um Ineunte)에서 복음화 주제에 관하여 언급하신 것들을 숙고하여야 한다. 이 문서들은 모두 「의제 개요」 설문에 대한 수많은 답변에서 참조 인용하고 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거는 기대

4. 오늘날 교회가 현대의 도전들 앞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복음화 소명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우리 모두 시급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많은 답변들은 강조하였다. 교회는 도전들에 맞서 흩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 모아야 한다. 많은 개별 교회들(교구들, 자치 교회들)과 각국 주교회의들과 여러 동방 가톨릭 교회 시노드들은 이미 지난 수 년 동안, 신앙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그들의 활동을 점검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설문 답변들은 다양한 교회 단체들이 추진하는 수많은 복음화 활동들을 제시하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많은 개별 교회들이 복음화와 그 쇄신에 관한 문서들을 작성하고 사목 계획들을 세워 왔다. 교구, 국가, 대륙 차원에서 복음화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 지원하는 사업들을 모색하였다. 또한 이러한 계획들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양성소도 세워졌다.

5. 복음화 활동들이 수적으로 상당히 많아졌지만 그 활동들이 모두 바람직한 결과를 낳은 것만은 아니어서, 이에 관한 긍정적 부정적 측면들이 보고된다. 따라서 이번 세계주교대의원 회의의 소집은, 가톨릭 교회 전체가 이에 대하여 경청하고 식별하고 또 무엇보다도 뜻을 같이하여 효과적인 협의와 선택을 하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새로운 힘을 북돋아주는 회의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오늘날 교회의 복음화 역량에 관하여 교회 안에서 제기되는 많은 물음들에 구체적인 응답도 제시하기를 바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복음화 활동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의견과 경험을 나누고 복음화 활동의 평가 도구와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가 되기를 고대한다.

정기 총회 주제

6.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를 소집하시며, 새 천년기가 시작된 이때에 교회의 으뜸 과업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상기시켜 주고자 하셨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35주년을 경축하는 2000년 대희년을 교회가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복음화 사명에 임하는 때로 여겼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선임 교황의 뜻을 따라 이 복음화 사명과 그 새로움을 강조하신다.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증언으로 그들을 가르치도록(마태 28,19-20 참조) 사도들은 복음화 사명을 받았다. 교회가 오랜 세기에 걸쳐 충실히 수행해 온 이 사명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 변화는 오늘날 사람들의 자아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고 결국 하느님을 믿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7. 이 모든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결과로 혼란이 야기된다. 이 혼란은 삶의 의미에 관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모두 불신하는 자세나 우리 존재의 깊은 진리로 밝혀진 것을 무조건 전적으로는 따르지 않으려는 자세로 표출된다. 신앙에서 멀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수세기 동안 복음이 면면히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던 사회와 문화에서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신앙은 점점 더 개인적인 내밀한 영역에 관련된 요소로 여겨지면서,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조차 복음 설교가 사회와 문화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 정작 그들과 그들 공동체의 신앙을 되살리는 일에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 신앙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불꽃과도 같아서 삶의 다른 모든 활동에 자양분이 되고 힘을 주는 것이다. 신앙이 약해지고 또 이에 따라 복음을 증언하는 역량이 약해질 위험은, 안타깝게도, 수세기에 걸쳐 그리스도 신앙이 문화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 온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8.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교황직을 시작하시면서부터, 이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강조하셨다. “전체 교회와 목자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광야에서부터 생명의 장으로, 성자와 나누는 친교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는 한 분께 이끌어야 합니다.” 2) 교회는 믿음의 말씀이 이 세상의 새로운 광야에서도 더 널리 울려 퍼지고 더 알아듣기 쉽도록 새로운 도구와 새로운 표현들을 모색할 의무를 절감한다. 믿음의 말씀은 하느님의 참 생명으로 우리를 새로 나게 해 주는 것이다.

9.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 전수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소집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신앙과 증언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북돋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성찰하겠다는 결정은 일관된 계획 안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신앙의 해 선포뿐만 아니라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신설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교회가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하여 용기와 힘을 얻어, 믿는 기쁨을 재발견하게 해 주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신앙 전수의 열정을 되살리는 데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이는 단순히 복음 전파를 위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고안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포하는 차원의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선교 활동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며,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자극을 줍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견고해집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새로운 복음화까지

10. 앞서 언급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최근 결정들에 표현되어 있는 교회의 복음화 활동의 쇄신에 관한 계획은 역사가 깊다. 이 계획은 바오로 6세 교황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과 사목 직무에 영감을 주었다. 또한, 이 모든 계획의 시작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이는 그 당시 세계의 강렬한 변화와 분열에 직면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혼란에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교회는 비관이나 체념이 아니라, 4) 구원의 보편 소명5)이 지닌 새로 태어나는 힘으로 대응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을 바라신다.

11. 이렇듯, 복음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인류의 빛6)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는 그 동안 죄로 가려져 있던 본연의 참된 정체성을 되찾는다.7) 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교회는 현대 세계의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화 사명을 지속하고 재현하고 실현시킬 임무가 있다. 8) 이러한 전망에서, 복음화는 공의회가 내세운 주요 요구들 가운데 하나이다. 공의회는 복음화 사명의 쇄신과 열정을 환기시켰다. 성품 사제인 주교9) 와 신부 10)는 복음화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교회의 이 근본 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11) 선교 교령은 복음화가 교회 사명의 으뜸 내용임을 분명히 밝히고, 복음화를 통하여 개별 교회들과 더 일반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음화는 그저 많은 활동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복음화는 교회의 역동성 안에서 교회가 자신의 목표, 곧 보편적 성화 소명에 응답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12)

12. 공의회에 뒤이어, 바오로 6세 교황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복음화 의무를 다시 한 번 절실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멀리 내다보셨다. 세례를 받았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따라 살지 않는 수많은 사람, 신앙을 갖고는 있지만 그 신앙의 토대가 되는 지식이 부족한 단순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 받은 교육과는 다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였다. 13)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14)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하느님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그들에게 제시하거나 다시 제시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과 언어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15)고 덧붙이셨다.

13.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복음화 의무를 그의 방대한 가르침의 핵심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삼으시어, 새로운 복음화라는 개념으로 종합하시고, 많은 말씀과 글을 통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심화시키셨다. 오늘날, 특히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에서, 이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의 당면 과제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교회가 바깥 세상과 맺는 관계와 관련되지만,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교회의 내적 쇄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를테면 복음화되는 교회에서 복음화하는 교회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전에는 그리스도교와 신앙생활이 번성하여 살아 움직이는 신앙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던 나라와 민족들이 이제는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련에 부딪혀 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세속주의와 무신론의 지속적 만연 때문에 근본적으로 변해 버렸다. 이는 특별히 이른바 제1세계 국가들과 민족들에게 관련되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경제적 번영과 소비주의가, 빈곤과 비참의 비극적인 상황이 공존함에도,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생활을 부추기고 조장한다. …… 또 한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활력에 찬 수많은 전통과 대중 신심 형태가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들에서도 그 도덕적 정신적 유산은 세속화와 유사 종교의 확산을 포함한 수많은 이유로 뒤집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오로지 새로운 복음화만이 깊고 빛나는 신앙의 성장을 보장할 수 있고 또 이러한 전통을 진정한 자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 분명코 인간 사회를 다시 그리스도화하는 일은 전 세계 도처에서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하여 긴요한 것은 이들 선진 국가나 민족들의 교회 공동체 자체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여 그리스도화하는 일이다.” 16)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새로운 복음화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가르침에 되풀이되어 나오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교황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40주년이던 2005년에 교황청에 보내는 성탄 인사에서, “불연속과 단절의 해석학”에 맞서 “개혁의 해석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개혁의 해석학’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주체인 교회의 연속성을 보존하는 쇄신의 해석학을 말한다. 교회는 시간 안에서 발전하는 주체이지만 지상의 나그네인 하느님 백성으로서 언제나 동일한 하나의 주체로 남아 있다.” 17)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며 이 해가 “공의회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돕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셨다. “요한 바오로 2세 복자의 말씀대로, 공의회 교부들이 유산으로 남긴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선출되고 나서 몇 달 뒤에 드렸던 공의회에 관한 말씀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해석학에 따라 읽고 이해한다면, 공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교회의 쇄신에 더욱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18) 따라서, 「의제 개요」 설문에 대한 일부 답변들이 지적한 대로, 앞서 인용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은 선임 교황들과 뜻을 같이한 것으로, 교회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통한 신앙 전수의 주제를 다룰 때 확실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교회는 현대 세계의 도전들을 인식하면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비롯한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에 굳게 뿌리 내려 있다.

「의안집」의 구조

15.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성찰을 통하여 지난 수 십 년 동안 교회가 해온 일들이 발전되고 심화되기를 바란다. 복음화와 그 쇄신과 관련하여 이미 이루어진 수많은 활동들과 문서들을 보면, 많은 개별 교회들은 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일과 그 방법을 알 수 있는 자리를 기대하고 있다. 많은 답변들에 따르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의 주제를 알리고 「의제 개요」에 관하여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오늘날 새로운 복음화의 절박한 요구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나아가 친교의 분위기에서 현대의 도전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6. 많은 답변들은 교회가 새로운 복음화의 도전에 직면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문제를 숨기지 않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문화의 변화가, 교회 자신, 곧 교회 공동체들과 교회 활동들, 교회의 정체성에도 직접 관련된다는 것을 더 잘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는 식별 과정이 필요하다. 이 식별 과정은 또한 더 큰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현 상황에 응답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의안집」은 네 장으로 이루어지며, 각 장들은 이러한 성찰과 식별을 돕는 기본적인 내용과 방법들을 마련하는 데에 유용할 것이다.

17. 제1장은 복음화의 핵심을 재발견하는 데에, 곧 인류를 위한 하느님 아버지의 기쁜 소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리스도 신앙 체험에 역점을 두었다. 이 만남으로, 우리는 변화되고 한데 모이며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새 생명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이 새 생명을 이미 현재에,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교회 안에 모일 때 체험하고 있다. 새 생명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우리가 이 세상의 길로 기꺼이 나아가 우리가 받은 선물을 기쁘게 증언하고 선포하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제2장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들을 식별하는 것에 관하여 성찰하고 있다. 그런 다음,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이 확산되는 이유들을 살펴볼 뿐만 아니라, 많은 개별 교회들이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식들을 분석해 본다. 제3장은 그리스도 신앙이 전수되는 근본 자리, 수단, 주체, 활동, 곧 전례와 교리 교육과 자선 활동을 다룬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거행하며 실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신앙 전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제4장은 특히 복음 선포와 신앙 전수에 헌신하는 사목 활동 분야에 대하여 논의한다. 이는 전통적인 사목 분야들과 최근에 크게 발전된 사목 분야들이다. 최근에 부각된 사목 분야들은,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성찰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그들의 신앙생활 방식에 주는 격려와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다.

제1장
예수 그리스도,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복음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18. 그리스도 신앙은 단순히 가르침이나 지혜, 윤리 강령이나 전승이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만남을 갖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신앙 전수란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만남을 위한 조건들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모든 복음화의 목표는 이 만남, 곧 내밀하고 개인적인 동시에 공개적이고 공동체적인 이 만남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1요한 4,10 참조), 사랑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계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다.” 19)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성경 말씀대로”(1코린 15,3.4)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과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교회 자체가 이 관계의 은총으로 형성된 것이다.

19. 예수님과의 이 만남은 성부께서 당신 성령을 통하여 인류에게 주시는 위대한 선물이다.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의 작용으로 우리는 이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우리는 바로 이 만남으로 이끌리는 우리 자신을 느낀다. 이 만남은 우리를 이끌면서 또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정체성의 새로운 차원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2베드 1,4 참조). 이 만남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예수님께서 직접 강력히 촉구하신 회개(metanoia)를 불러일으킨다(마르 1,15 참조).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인 신앙은 그분과 관계를 맺고, 특히 성찬례와 하느님 말씀 안에서 그분을 기억하며,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모인 우리 서로를 형제자매로 알아보고, 우리 자신이 이 복음의 증인이자 선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만남으로, 우리는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예언자들이 예고한 대로(예레 3,6이하; 에제 36,24-36 참조) 회개의 행위들을 통하여 달라진 우리 삶을 증언할 수 있게 된다.

20. 이 제1장에서는 복음화의 이 근본적인 차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의제 개요」 설문 답변들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신학적 토대를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하고 분명하게 밝혀서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 올바른 출발점과 힘이 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이 명령에 충실한지를 가늠하는 기회로 여겨진다. 새로운 복음화는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공동체가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그 샘물을 마심으로써 복음화와 증언에 더 맞갖은 자세를 갖추는 은혜로운 기회이기도 하다(2코린 6,2 참조). 사실, 복음화와 증언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모든 것에 앞서는 삶의 자세로서, 끊임없이 정화와 회개를 거듭하는 신앙의 열매이며, 인간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우리 삶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복음 선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21.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시며 최초의 가장 위대한 복음 선포자이셨다.” 20)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예고되고 성경에 약속된 하느님의 복음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도록 파견되셨다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서 첫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을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기록된 대로”(마르 1,2)라는 성경 구절과 연결시킨다.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하시며 바로 자신의 현존으로 성경 말씀을 실현시키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마태오 복음은 성취된 예언들을 인용하고 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더 깊은 실재를 보여 주려 한 것이다(마태 1,22; 2,15.17.23; 4,14; 8,17; 12,17; 13,35; 21.4 참조). 예수님께서 잡혀 끌려가시던 때에는 이러한 말로 사건을 요약한다.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마태 26,56). 요한 복음에서, 제자들도 이 관계를 증언한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다음, 필립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요한 1,45).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당신과 성경의 관계, 그리고 이에 대한 성경의 증언에 대하여 여러 번 언급하신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5,39).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요한 5,46).

22. 복음사가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복음이 성경의 온전한 요약이고 연속이며 궁극적인 완성임을 증언하고 있다. 바로 이 연속성 때문에, 예수님의 새로움을 분명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분의 복음화 활동은 그 이전부터 시작된 역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그분의 행위와 말씀은 성경에 비추어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망과 관련하여, 루카 복음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다음과 같이 간추려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루카 24,44).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은 바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루카 24,45) 일이다. 성경이 유다인들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깊은 관계를 고려하여,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예언서와 지혜서를 새롭게 하고 완성하는 복음 선포자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23. 예수님께서 펼치신 복음화의 목적은 당신께서 성부와 성령과 맺는 긴밀한 관계 속으로 사람들을 이끄시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설교와 이적들에 담긴 궁극적인 의미, 바로 구원의 선포이다. 구원은 구체적인 치유 행위를 통하여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대한 의지로 축소될 수 없다. 구원은 자신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아버지의 자애로운 모습 안에서 이를 깨닫도록 모든 이에게 허락된 깊은 체험이다(루카 15장 참조). 그분의 말씀과 행적에 담겨 있는 계시는 예언자들의 말씀과 연관된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보낸 사람들 앞에서 행하신 이적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그 위대한 예언들에 완전히 부합하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루카 7,21.2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수많은 예언자들의 표징을 성취하고 그 표징과 밀접히 이어져 있는 당신 행위의 충만한 의미를 알려 준다(특히 이사 29,18; 35,5.6; 42,18; 26,19; 61,1 참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시는 모습은 예수님의 복음화 방식의 핵심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차별이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환대하셨다.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 그 다음으로 자캐오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처럼 부유한 사람들, 백인대장이나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 부인 같은 외국인을 환대하셨다. 또한 나타나엘 같은 의인들은 물론이고 창녀들,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는 죄인들과도 한 식탁에 앉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헤아리시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1요한 4,10.19 참조)에 대한 믿음을 되살리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선다. 그 사랑은 우리 자신의 공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밝혀 주시면서 교회가 어떻게 복음화하여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은 사랑의 모습과 소리를 통하여,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사랑을 믿는 것이다.

24. 예수님의 복음화 활동은 매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회개의 체험으로 이끈다.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믿도록 초대 받는다.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께 드리는 친밀한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돌아서고(루카 11,2; 마태 23,9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삶의 행복임을 온전히 자유롭게 깨달을 때, 하느님의 나라는 자라날 것이다(마태 7,21 참조). 복음화와 성화 소명과 회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또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언제 어디서나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과제는, 복음화와 성화 소명과 회개가 오늘날 우리 공동체들 안에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고, 그 풍요로운 상호작용을 통하여 우리 공동체의 삶이 어떻게 활력을 얻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교회

25.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받은 은총과 그 열매 덕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데 모여, 그들이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는 신앙을 지키고 키우며 더 풍성하게 이 생생한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삶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신적 생명에 동참한 다음, 그들 역시 이 복음화 활동을 지속하도록 파견되었다(마르 3,13-15 참조).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루카 9,1.6).

26.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선교 사명에는(마르 16,15 참조) 당신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면서(마태 28,20 참조)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로마 1,1)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따라서 교회의 임무는 복음 전수(traditio Evangelii), 곧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데에 있다.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코린 1,24). 이제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때에, 살아있고 힘이 있는 말씀, 말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말씀(히브 4,12; 이사 55,11 참조)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곧 사람이 되신 결정적인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야 한다. 21)

예수님처럼 교회에도 이 복음화 사명은 하느님의 활동, 바로 성령의 활동이다. 오순절에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께 배운 모든 것에서 힘을 받아 증인과 예언자가 된다(사도 1,8; 2,17 참조). 또한 사도들은 확고한 용기를 얻어,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그들을 북돋우는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자신’(parresia) 있게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어(사도 2,29 참조), 그들의 활동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다와 사마리아 전역, 땅끝까지 이르게 하신다.

27. 교회는 처음부터 실천해 온 것을 오늘날에도 계속 실천한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이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그 시의성을 상기시켜 주셨다.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열두 제자에게 하신 명령은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 교회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 복음화는 참으로 교회의 고유한 은총이고 소명이며, 교회의 가장 깊은 본성입니다. 교회는 복음화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곧, 하느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은총을 전해 주는 통로가 됨은 물론, 죄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영속시키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22)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면서 예수님의 복음화 사명을 지속하고, 그렇게 할 때에 교회가 하느님 생명을 계속 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교회는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성령의 재촉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교회 안에서 다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친교로 이끄신다. 교회가 하는 모든 활동은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이는 언제나 복음화 활동이고, 그러니 만큼 우리 하느님의 삼위일체 모습을 드러내는 활동이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내적 삶도 기록하고 있다. 기도하고,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형제애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는 일이다(사도 2,42-46 참조). 이 모든 일은, 온 교회와 세례 받은 이들의 증언이 되고 그들의 찬미와 회개를 북돋우며 복음의 설교와 선포가 될 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

복음, 모든 이를 위한 선물

28.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복음,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의 생명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은 모든 이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선물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회개하도록 모든 이를 초대하셨을 때 친히 선포하신 것이다. 이를 강조하시고자,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우선적으로 특히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당신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음을 선포하셨다(루카 4,18 참조). 거부당하고 멸시당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이라고 선언하신다. 나아가 이 소외된 이들과 어울리심으로써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리 해방을 체험할 수 있게 하신다(루카 5,30; 15,2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먹고 그들을 형제자매로, 친구로 대하시며(루카 7,34 참조), 그들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도우시고, 이렇게 하여 죄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향한 큰 자비를 드러내신다.

29. 하느님 나라가 가져다주는 해방과 구원은 인간 육체와 영혼의 모든 차원에 미친다. 예수님의 복음화 활동에는 두 행위가 따른다. 바로 치유와 용서이다. 많은 치유의 기적들은 비참한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큰 연민을 보여 준다. 하느님 나라에는 더 이상 질병도 고통도 없으며, 처음부터 그분의 사명은 사람들을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내 준다(묵시 21,4 참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치유는 영적 구원의 표징, 곧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표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행위를 통하여 사람들을 믿음과 회개로, 또 용서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초대하신다(루카 5,24 참조). 믿음이 있을 때 치유는 구원으로 이끈다(루카 18,42 참조). 하느님을 거슬러 맞서는 죄의 상징이자 악의 세력인 마귀에게 시달리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신 행위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다”(마태 12,28)는 표징이다. 곧, 모든 인간을 향한 구원의 선물인 복음이 우리를 변화의 여정으로 이끌어, 지금 우리를 새롭게 하는 하느님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30.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베드로 사도처럼 교회도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복음을 계속 충실하게 선포한다. 베드로 사도는 삶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청하는 불구자에게 그를 치유하는 복음의 선물을 주어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복음화 활동으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고 한 묵시록의 예언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는 그리스도 신앙과 교회 생활이 더 이상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낯선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안에 깊이 스며들어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인류와 그 역사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것이다. 23)

31. 복음화는 인간과 그의 세계와 역사를 바꾸는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는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의 힘으로(로마 1,16 참조)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함으로써 새로 나게 하는 것이다(로마 6,4 참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례의 새로움과 복음에 따른 삶의 새로움 속에, 곧, 성자께서 성부와 맺는 관계 속에 온전히 들어가, 성령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신앙 전수는 복음화의 목표로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이끄는 것이다(에페 2,18 참조). 이것이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새로움에 대한 체험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확신을 더욱 확고히 간직할 수 있다.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임무를 수행할 때 보여 준 그 탁월한 용기와 헌신과 대담함, 통찰력과 대의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성화 활동은 각 대륙마다 독특하고 의미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개별 교회들은 저마다 탁월한 성덕을 지닌 인물들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들의 활동, 특히 그들의 증언 덕분에 복음화 활동이 새로운 힘과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성덕의 모범은 복음화 과업을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데에도 예언적이고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 준다. 이는 그들의 저서나 기도, 가르치는 방법과 본보기, 영적 여정, 신앙 입문 과정, 교육 활동과 교육 기관 등으로 남아 있다.

32. 일부 답변들은 이러한 성덕의 모범들이 지닌 힘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경험들을 다시 현대에 맞게 전달하는 어려움도 언급한다. 이따금 이러한 성덕의 모범은 과거에 속할 뿐만 아니라 거의 과거에 매여 있어서 오늘날 더 이상 그 증언의 복음적 성격을 전달할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대하여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그리고 다양한 교회들이 하느님 복음의 전달자로서 하는 활동과 증언에서 신뢰를 보여 주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그 근본적인 원인들을 파악하도록 논의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복음화 의무

33. 모든 사람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권리가 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현대인은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요한 4,10)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모든 이가 품고 있는 구원에 대한 깊은 열망을 이끌어내야 한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4,15 참조). 모든 사람이 지닌, 복음을 들을 이 권리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설교자인 그는 복음의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였기에 복음 선포를 의무로 여긴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모든 사람은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 내놓으셨다.”(에페 5,2 참조)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모든 사람은 복음 선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 곧 그 친밀하고도 변화를 가져다주는 관계로 이끌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24)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할 누군가가 파견되어야 한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이사 52,1).

34. 이제 우리는 교회의 모든 활동이 본질적으로 복음화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복음화의 주요 목표, 곧 모든 사람이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와야 할 임무와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인 “우리가 사람들에게 단지 지식이나 능력, 기술 소양과 도구만을 전달한다면 너무 부족한 것이다.” 25) 복음화의 원동력은 모든 이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진정한 복음 선포자들은 그들이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고자 한다. “교회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복음에 어긋나는 방법이나 강제적인 행동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의 힘으로 사람들이 주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도록 힘썼다.” 26)

35. 사도들의 선교와 이를 이은 초대 교회의 선교는 모든 시대에 복음화의 기본 모델이 된다. 이는 흔히 순교를 특징으로 하는 선교로서, 그리스도교 역사의 초기뿐만 아니라 지난 세기, 심지어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순교는 증언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를 준다. 그들은 권력이나 이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향한 사랑이 지닌 온유하면서도 강한 힘을 세상에 보여 준다. 이는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대로 자기 목숨까지 온전히 바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받게 되는 사랑이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 15,20).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의무에 제약을 가하는 잘못된 신념들이 없지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선교 명령(마태 28,19 참조)을 듣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혼란이 점증하고 있다. 종교 문제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돌아서게 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만 제시하고 그들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초대하는 것만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자신의 종교에 더 충실하도록 돕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정의와 자유와 평화와 연대를 추구하는 공동체 건설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없고 교회에 공식적으로 입교하지 않아도 구원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거나 교회에 입교하도록 촉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27)

36. 비록 비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께서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베푸시는 은총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28)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참모습을 알고자 하고 오늘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그분 교회의 지체가 되는 일은, 인간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모든 사람의 행복에 대한 관심과 이타적인 사랑을 통하여 이를 충만해지게 한다. 하느님 벗들과 하나 되어 산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은총이고, 이는 생명을 주시는 성자의 살과 피로 맺은 친교에서 비롯된다. 그분께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을 얻고, 믿음이 낳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다. 교회는 모든 이가 이러한 풍요로움에 참여하여 그들도 충만한 진리와 구원의 수단을 가지고 “하느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로마 8,21) 수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성자를 주시고 성자께서는 그들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시면서 인간과 소통하시는 분이시다. 신앙을 선포하고 전수하는 교회도 이를 본받는다.

복음화와 교회 쇄신

37. 복음 선포자인 교회는 거듭거듭 자신을 복음화하면서 이 사명을 실천한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 희망을 실천하고 전달하는 공동체,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는 믿어야 할 것과 희망에 대한 이유 그리고 사랑의 새 계명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인 하느님 백성은 세속에서 살면서 때때로 우상의 유혹을 받고 있기에, 자신을 언제나 주님께 향하게 하는 ‘하느님의 위업’에 대한 선포를 듣고, 새롭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과 다시 결합하여야 한다. 요약하면, 교회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움과 활력과 힘을 지니려면 언제나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려면 교회가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먼저 교회 자신을 복음화하여야 한다는 이 주제를 강조하였다. 30) 이와 관련하여 복음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바오로 6세께서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신다.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복음 선포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해도 하느님의 자비로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될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이나 두려움 때문에, 또는 바오로 성인이 말한 것처럼 ‘복음을 부끄러워해서’, 또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31) 많은 설문 답변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특별히 이 주제에 대하여 논의해 줄 것을 제안하였다.

38. 교회는 처음부터 교회 구성원들의 죄와 같은 어려움에 대처하여야 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루카 24,13-35 참조)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어떤 죽은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루카 24,21-24 참조). 이 두 제자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여 준다. 곧, 교회가 생명을 주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는 그리스도나 선포하는 사람을, 나아가 듣는 사람도 모두 죽음 속에 가두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낚는 사도들에 관한 요한 복음사가의 이야기에도 비슷한 경험이 나온다(요한 21,1-14 참조).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제자들의 노력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야 비로소 복음화 활동의 열매인 믿음과 선포의 기쁨을 되찾는다. ‘사람 낚는 어부’(루카 5,10 참조)로 불린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 다시 한 번 확고히 자신을 의탁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믿고 성공적으로 그물을 던질 수 있게 된다.

39. 교회 초기에 그토록 조심스럽게 설명된 일들이 교회사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곤 하였다.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와의 유대가 느슨해지면, 이에 따라 신앙생활도 소홀해지고, 그 유대 자체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의 삶에 참여하는 경험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복음 선포가 무엇보다도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전수는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일이다. 따라서 신앙 전수에서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연구하거나 젊은이들 같은 특정 선포 대상을 선정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 전수는 이러한 영적 활동의 수행 주체와 관련된 것이다.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로써, 외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와 삶 전체를 포함하여 그 내부에서부터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개별 교회들은 오늘날 복음화와 교리 교육의 빈약한 결실이 특히 교회의 영성 문제인지 아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판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그저 단체가 아니라 참다운 공동체, 진정한 형제애, 살아 있는 몸이 될 수 있는 역량에 관한 문제이다.

40. 교회는 복음화의 근본적인 영적 특성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맡기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의 면모를 세상에 드러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주님의 자녀를 낳아 신앙을 전달하고 자녀를 살찌우는 사랑을 가르치는 어머니인 교회(Ecclesia Mater)로서 자신의 소명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는 하느님의 이 계시를 선포하고 증언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기 백성들을 한데 모아야 하는 자신의 책무를 이행한다. 이로써 교부들이 교회를 두고 한 말이라고 여기는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질 수 있다.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이사 54,2.3).


제2장
새로운 복음화의 시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41. 교회가 부활하신 주님께 받은 선교 사명(마르 16,15 참조)은 시간이 흐르면서 장소와 상황과 역사적 계기에 따라 늘 새로운 형태와 양식을 지녀왔다. 우리 시대에 복음 선포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교회에 맡겨진 그 임무는 처음과 동일하다. 그 사명이 바뀌지 않았기에 오늘날 더욱 우리가 사도들과 첫 제자들이 지녔던 열정과 용기를 우리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사도들이 위층 방의 문을 열고 나와 복음 선포자가 되도록 해 주신(사도 2,1-4 참조) 바로 그 성령께서 오늘날의 교회를 이끌고 계시며 교회가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새로이 선포하도록 재촉하신다.

4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가끔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전혀 새로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32) 는 점을 상기시킨다. 공의회 교부들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를 선견지명을 가지고 내다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신앙인들에게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과거에 비하여 새롭고도 어려운 지금의 상황 속에서 우리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려면 복음 선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43.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목격해 온 사회적 변화들은 먼 과거에 뿌리를 둔 복합적인 원인들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러한 변화의 긍정적 측면은 누구나 알 수 있고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이 덕분에 인류 문화가 발전하고 많은 분야에서 지식이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동체 생활의 가치와 몇 가지 근본 측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는 사람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편으로는 인류가 이러한 변화들을 통하여 부인할 수 없는 혜택을 받았고, 교회는 자신이 지닌 희망에 대해 증언하도록 더욱 큰 자극을 받았지만(1베드 3,15 참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함에 대한 감각 상실이라는 걱정스러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그리고 출생과 죽음, 가정생활, 자연 도덕률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에 대한 공통 이해 등 이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였던 원칙들에도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일종의 해방으로 반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인간 스스로 자기 본성과 운명의 유일한 주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만물의 근본이 되는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면 언제나 내적으로 황폐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내 깨닫게 되었습니다.” 33)

44. 그리스도인 생활 속에서도 겪는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서 교회는 자신이 지닌 희망을 말할 수 있도록(1베드 3,15 참조) 더욱 힘을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라는 용어는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세속화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이들에게 특히 그러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이 교회 안에서 발전되었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그 의미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처음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이어 식별의 작업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오늘날 교회를 고무시키는 힘으로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복음화’의 필요성

45. ‘새로운 복음화’란 무엇인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에게 한 첫 연설에서 이 용어를 널리 알리시고 이렇게 정의하셨다. “500년에 걸친 복음화를 기념하는 일은, 여러분이 주교로서 자기 사제들과 신자들과 함께 복음화를 사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 충만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분명 이 사명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 복음화를 위한 사명입니다. 곧 그 열정과 방식, 그 표현에서 새로운 것입니다.” 34) 그러고 나서 교황님은 유럽 교회에도 그와 비슷한 호소를 하셨다. “[1991년 유럽 주교대의원회의] 제1차 특별 총회는 ‘오늘날 유럽은 단순히 이전의 그리스도교 유산에만 호소해서는 안 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메시지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35)

46. 그 시작 단계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의 영적 선교적 소명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으려면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요청에 답하고 있다. 오늘날 급격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그들 안에서부터 생기를 북돋아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다시금 뿌리를 탄탄히 내리기 위한 힘과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그들을 내맡겨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그들이 누리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교라는 선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맛보아야 하고, 또한 그들이 지닌 가장 귀한 선물로서 이 똑같은 경험을 다른 이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47.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이러한 판단과 완전히 일치했다.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인가?”라는 이 질문에 대하여, 놀랍게도 많은 답변들이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다. 곧,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생겨난 새로운 문화적 상황들 속에서 신앙과 그 선포라는 교회의 공동체적 경험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북반부와 남반부, 서양과 동양, 곧 수천 년의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은 물론이고 복음화된 지 채 몇 백 년 되지 않은 나라들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관례적으로 ‘세계화’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여러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융합되면서, 전통과 제도들이 약화되는 과정이 시작되었고, 사회적 문화적 유대가 급격히 깨졌으며, 가치관을 나누고 인생의 의미와 진리에 대한 물음에 답할 능력 또한 잃었다. 그 결과 두드러지게 문화의 일치가 깨지고, 신앙을 충실히 따르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은 가치들에 따라 사는 문화의 역량이 상실되었다.

48. 이러한 부정적 상황이 신앙의 경험과 여러 형태의 교회 생활에 끼친 영향들이 모든 답변 안에 거의 비슷하게 서술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 공동체들의 신앙 약화, 교도권의 권위에 대한 존중 감소, 교회 소속에 대한 개인 편의적 인식, 신앙생활의 쇠퇴, 새로운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 등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거의 모든 주교회의의 답변에서 찾아볼 수 있고, 교회 전체가 이러한 문화적 풍토에 대처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49.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에게 하는 호소이며 요청이다. 이를 통하여 교회는 자신의 영적 힘을 모으고, 이 새로운 문화적 풍토 안에서 분명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맡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다. 아울러 교회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도 좋은 것을 알아보고, 자신의 신앙과 복음화의 사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는 변화된 문화적 상황에 관련되고, 또 교회가 신앙을 실천하고 전수하기 위하여 힘과 의지, 생기와 능력을 되찾을 필요가 있음을 가리킨다. 답변들은 이러한 호소가 여러 지역 교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면서도, 거기에는 우려 어린 목소리가 배어 있다. 이는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이러한 문화적 풍토가 교회 내부에도 가져온 위기의 파장과 도전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논의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의 심각성을 시의적절하고도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세속화 현상을 다루면서 그것이 그리스도교에 끼친 긍정적 36) 부정적 영향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제기하고 있는 도전들을 살펴볼 것이다.

50. 그러나 모든 징후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 많은 교회들에게 쇄신을 위한 노력은 희망의 표징이며 성령의 은사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대부분이 교회 단체와 운동들이고 일부는 신학 학회나 문화 기구들로, 이 문화 속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참으로 실천할 수 있음을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개별 교회들은 이러한 경험들을, 이에 신선함과 열정을 불어넣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을 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개별 교회는 젊은이들의 역량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젊은이들의 역량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도록 권유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경험들은 아직 시작 단계이기에 장점만이 아니라 한계도 있으므로, 이러한 경험들이 커 가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분야들

51.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새로운 복음화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오늘날 신앙을 실천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살펴보도록 교회에 재촉하였다. 이리하여 새로운 복음화는 이제 식별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의 역사 안에서 생겨난 새로운 분야들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 분야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체험하는 자리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분야들이 처음으로 기술되었고, 37) 이는 「의제 개요」에도 나와 있으며 설문 답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되고 있다. 이 분야들은 문화, 사회, 경제, 정치와 종교이다.

52.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분야가 문화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폭넓게 다루었다. 많은 답변은 세속화 추세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자리로 문화 분야를 꼽고 있다. 특히 서구 사회에 널리 퍼진 세속화는 그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회적 지적 운동들과 사건들의 산물이다. 세속화는 오늘날 우리 문화들 안에서 해방의 현실적 표징으로, 이 세상의 삶과 인류 전체의 삶을 초월과는 무관하게 생각하는 가능성의 표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도 일부 반(反)그리스도교적, 반종교적, 반성직주의적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속화는 더 이상 하느님, 종교, 그리스도교를 공공연히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형태는 띠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많은 답변들이 보여 주듯이, 세속화는 나직한 어조를 취하여, 이러한 문화적 형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하게 했다. 또한 이 문화 형태가 하느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부재하시거나 부분적으로 존재하시고, 그분의 존재 자체도 인간의 의식에 달려 있다는 사고방식을 키우게 했다.

53. 이 나직한 목소리가 세속화에 한층 매력을 실어 주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의 삶 안에도 세속화가 스며들었다. 이제 세속화는 신자들에게 외적인 위협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젖어든 내면의 적이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습관적 행동에서 삶을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외쳤던 ‘신의 죽음’은 무익하고 쾌락주의적이며 소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낳았고, 이는 실제로 삶과 책임을 지극히 피상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신앙이 그 근본 요소들마저 잃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세속화의 분위기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면서 진리의 존재를 단언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하느님에 관한 질문이 인간의 자아 성찰에서 배제되고 있다. 사람들이 종교적 욕구를 채우고자 개인주의적 영성이나 새로운 이교의 형태에 빠져, 상대주의의 풍토가 만연하기에 이르렀다.

54. 그러나 이러한 위험들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세속화에 대응하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세속(saeculum)은 신앙인들과 비신앙인들이 더불어 살고 공통된 것을, 곧 인간성을 나누는 곳이다. 바로 이 인간적 요소는 신앙의 자연스러운 출발점이기에 복음화의 탁월한 자리가 될 수 있다. 나자렛의 예수님의 온전한 인간 본성 안에 충만한 신성이 머무르고 있다(콜로 2,9 참조). 나자렛의 예수님의 인성을 통하여 인간성을 정화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속화에 물들어 살고 있지만 진정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계속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진리를 찾는 이들과의 만남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정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진리를 찾는 이들이 아직 신앙의 선물을 지니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내적 투쟁은 신앙을 실천하고 증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자극이 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참모습을 만나 뵐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답변들은 ‘이민족의 뜰’이라는 계획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55. 첫 번째 분야인 문화 다음으로 사회 분야가 있다. 대규모 이주 현상이 빚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화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문화들이 서로 만나 뒤섞인다. 삶의 기초와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삶의 의미를 알도록 해 준 유대마저 깨지고 있다. 세속화의 확산과 맞물려, 이러한 과정은 문화적으로 극심하게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하여, 종교적 전통을 포함하여 주요 전통들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이 사회 분야는 이른바 ‘세계화’라는 현상과 관련된다. 이는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세심한 식별이 요구된다. 이 현상을 순전히 경제와 생산과 연관된 불가피한 것으로만 보면, 부정적인 현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성장의 계기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인류는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함께 발전하는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키우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56. 「의제 개요」의 답변들에서 언급한 세 번째 분야는, 이주 문제와 관련되어, 우리 사회에 점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다. 많은 경우 이주 현상의 직접적 원인으로 경제 분야를 들 수 있다. 국내는 물론 국가들 사이에 야기되는 불평등에 따라 이주와 결부되어 발생되는 긴장 관계와 폭력 형태 때문이다. 개발 도상국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서 보내온 답변들은 빈부의 차이가 현격히 증가했음을 보여 주었다. 교황의 교도권은 자원의 접근과 분배에서는 물론이고 피조물에 끼친 손해로 남반부와 북반부 사이에 불균형이 커지고 있음을 계속 지적해 왔다. 오늘날 계속되는 경제 위기는 천연 자원은 물론이고 인적 자원의 사용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가난이라는 복음적 이상을 실천하도록 초대 받은 개별 교회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중 매체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문제라 하더라도, 교회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구체적인 활동을 하여야 한다.

57. 네 번째 분야는 정치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오늘날까지 이 분야에서 일어난 변화는 획기적이라 일컬을 만하다. 양 진영으로 갈라졌던 서방 세계의 분열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몰락과 함께 끝이 났다. 이는 종교 자유를 촉진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들을 재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슬람이나 아시아 같은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주체들이 국제 무대에 등장하여 완전히 새롭고 유례없는 상황을 낳았다. 이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면서도 많은 위험이 따르고 지배와 권력에 대한 새로운 유혹이 산재해 있다. 이 분야에서 많은 답변들이 여러 절박한 상황들을 강조하였다. 곧 평화를 위한 헌신, 민족들의 발전과 해방, 더 나은 국제 규약과 국가들 간의 교류,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들 사이의 상호 경청과 공존, 대화와 협력이 가능한 영역들의 모색, 인권과 민족들의 권리, 특히 소수민의 권리 옹호, 약자 보호, 창조 보존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헌신 등이다. 이 모든 것은 다양한 개별 교회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고 또 마땅히 우리 공동체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성실하게 추구되고 증진되어야 하는 주제들이다.

58. 다섯 번째 분야는 과학 기술 연구 분야이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거둔 지속적인 연구 성과에 끊임없이 감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날마다 우리는 이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혜택들을 경험할 수 있고 또 점점 더 이에 의존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들이 많지만 지나친 기대와 조작의 위험도 공존한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 기술은 새로운 우상이 될 위험이 있다. 디지털화되고 세계화된 상황에서 과학은 ‘우리의 새로운 종교’가 되기 쉽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앎(gnosis)’이 부상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마법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 나가고자 기술을 일종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지식’과 ‘의미’가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새로이 생겨나는 사이비 종교들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종교적 실천들을 치유의 방식으로 악용하면서, 번영과 순간적인 만족을 약속하는 일종의 종교로 틀을 잡아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새로운 지평

59. 여섯 번째 분야는 「의제 개요」의 답변들이 한결같이 주목한 커뮤니케이션 분야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오늘날 교회에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초기에 커뮤니케이션은 산업화된 세계에만 한정되어 있었으나, 오늘날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수많은 개발 도상국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 세상 그 어디에나 미치고, 따라서 디지털과 미디어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공공 생활과 사회적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되고 있는데, 인터넷이 갈수록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60. 답변들은 일반적으로 널리 확산된 다음과 같은 통념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 신기술들이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공간을 낳았고 그러한 공간의 연결들이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디지털 신기술들에서 생겨날 수 있는 미디어 과정들은 사람들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면서 현실 자체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또한 사람들의 경험 속에 강력하게 작용하며 인간 잠재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기술들과 그로 인해 생겨난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긍정적으로 아무런 편견 없이, 그러나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현명하고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하는 자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61. 교회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 공간들에 참여하고 일찍부터 복음을 선포하는 유용한 도구로 이 수단들을 이용해 왔다. 답변들에 따르면, 인쇄물과 라디오처럼 최근에도 계속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매체들 외에도, 지역, 국가, 대륙, 세계의 여러 차원에서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해 주는 새로운 미디어들이 오늘날 교회의 복음화 직무에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신구 매체의 잠재력은 자명하기에, 새롭게 생겨난 이 사회적 공간을 그리스도교 전통의 언어와 방식에 따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복음 선포를 위하여 이 공간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더욱 잘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위기와 위험들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주의 깊게 식별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62. 사실,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확산이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정보 접근성이 더욱 커지고, 지식과 교류,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갈수록 세계적 차원의 문화를 증진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가치들을 모든 이의 자산이 되게 하고, 사고와 인간 활동을 더욱 크게 발전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력이 있어도 그 문화의 지나친 확산이 이미 야기하고 있는 위험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필요에만 지나치게 깊이, 자기중심적으로 관심을 두거나, 관계나 사회적 유대에서 감정에만 치중하고 있다. 그 결과 성찰이나 침묵과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경험들의 객관적 가치가 줄어들거나 상실되고 있다. 또 개인의 생각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윤리와 정치가 겉치레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위험들은 이른바 일시적이고 즉각적이며 허울뿐인 문화, 다시 말해 과거도 미래도 없는 사회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담대하게 이러한 ‘새로운 아레오파고’ 안으로 들어가 이를 복음에 비추어 평가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이 지켜 온 지혜와 교육의 유산을 들려줄 수 있는 도구와 방식을 찾아야 한다.

종교 분야의 변화

63. 지금까지 우리가 다룬 분야들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저마다의 신앙 감각을 표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종교를 일곱 번째 분야로 추가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신앙 감각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많은 문화들과 특히 젊은 세대가 여러 형태로 영성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속화 과정이 많은 이들에게 영적 쇠약과 마음의 공허를 초래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무수한 종교들 안에서 뜻깊은 종교적 부흥의 표징을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 또한 이러한 현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예기치 못했던, 복음화의 자원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64.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주의 깊게 이 현상을 다루고 그 복합적인 성격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는 그 긍정적인 측면들을 인정하였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요소인 종교적 요소를 회복할 기회를 주어, 수평적 관점에서만 보는 인간 개념의 한계와 부족을 극복하도록 해 준다. 이 현상은 종교적 경험을 촉진하여, 인간과 역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방식에서 그 중심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준다.

65. 그러나 많은 답변들은 이러한 종교 감각의 회복이 지닌 경솔하고 감정적인 측면에 대하여 우려를 나타냈다. 종교 감각의 회복은, 진리 탐구를 통하여 인간의 점진적이고 종합적인 성장을 가져다주기는커녕 거의 자유를 주지 못하는 경험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결과, 폭력 행위와 극히 드물긴 하지만 테러리즘도 정당화하고자 종종 종교를 악용하는 근본주의 때문에 하느님과 거룩함을 재발견하는 여정의 긍정적 측면이 약화되고 흐려졌다.

66.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답변들이 종파의 형태를 지닌 신흥 종교 집단들의 확산을 긴급한 문제로 꼽았다. 이와 관련하여, 답변들은 「의제 개요」에서 다룬 것을 되풀이 인용하고 있다. 곧 이러한 집단들이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면을 자극하고, 번영과 성공을 약속하는 종교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몇 가지 답변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이 새로운 형태의 종교적 경험에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하고, 또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 방식을 따르지 않고 그들의 공격적인 개종 방식을 모방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당부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 답변들은 이러한 종교 집단에 맞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데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종교 집단들 앞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오히려 더욱 열정을 가지고 저마다의 삶에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67.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시켜 왔고 지금 한층 강화하고 있는 주요 종교 전통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만남은, 다른 종교적 경험들에서도 나타나는 복잡한 형태와 언어를 지닌 인간의 종교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해 주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또한 이러한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인간 영혼의 종교성을 표현하는 그리스도 신앙의 방식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인류의 종교적 유산도 그리스도 신앙이 지닌 고유성으로 풍요롭게 된다.

이러한 분야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

68. 답변들은 각 분야의 상황, 곧 지금도 진행 중인 변화의 표징들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 안에서 우리의 경험이 성숙되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분야들은 식별의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만나고 부딪치면서 파악되고 정화될 필요가 있다. 잘 살펴보면, 이 분야들이 제안하는 삶의 방식과 사상과 언어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요청 받는 자기 성찰도 하게 되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생활 방식과 사목 활동이 참으로 그들의 임무와 부합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통찰력을 가지고 경직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많은 개별 교회들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이러한 식별을 효과적으로 계속 수행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69. 「의제 개요」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은, 앞서 말한 이 분야들의 도전에 교회가 적절하고도 확신에 찬 답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참으로 ‘조용한 배교’, 곧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신앙 실천을 멀리하는 것의 이유들을 살펴보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답변들은 신자들의 신앙 약화, 신앙 전수에서 개인의 참여와 경험 부족, 신자들의 지식과 직업의 교육 과정에서 영성 지도의 부족 등을 꼽았다. 또한 많은 답변들이, 세인들과 그들의 일상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교회 구조의 지나친 관료주의적 특성을 아쉬워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교회 공동체들의 활력이 감소되고 초기의 열기가 식었으며 선교 열정도 줄어들었다. 일부 답변들은 전례 거행이 형식화되고 예식들이 거의 습관적으로 반복되며 깊은 영적 체험이 부족하여,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대신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 신앙에 반대되는 증언들을 하고 있지만(소명에 대한 불충실, 추문, 현대인과 현대 세계의 문제에 대한 감각 부족), 우리는 “무법의 신비”(2테살 2,7)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곧 여인의 나머지 후손인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묵시 12,17)이 용과 벌이는 전쟁이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 인간 자유의 신비를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이 자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인간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하느님을 거스르고 그분의 교회에 등을 지면서까지 그릇되게 사용될 수도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모든 사람의 자유가 진선미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신앙의 쇄신은 앞서 언급된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장애들은 참다운 그리스도인 생활을 가로막는다. 참다운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 안에 표현된 것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이다(마르 12,33 참조).

70. 일부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면서도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이 분야들이 생겨나면서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얻은 분명한 성과도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많은 답변들은 계속되는 이주 과정의 긍정적인 영향을 주목하였다. 이주 과정을 통하여, 개별 교회들 사이에 만남과 은총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또한 이주해 온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신앙에서 힘과 활력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하면서, 선교가 더 이상 남북 또는 동서의 이동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제 지리적 경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교지는 오대륙 모두로 확산되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국가인 나라들에서조차 신앙과 전혀 접촉하지 못했거나 신앙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신앙과 동떨어진 분야와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만남과 교류, 사회적 관계들의 재건, 이 모든 과정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특별히 이러한 경험들을 풍성하게 나누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1. 경제 분야도 그 변화와 더불어,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는 가장 적절한 자리로 여겨지게 되었다. 많은 답변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울여 온 활동들을 기술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오랜 기원을 지녔고 지금도 여전히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많은 답변들에 따르면, 오늘날 심각하고 만연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지원 단체들을 더 많이 설립하고 개별 교회 안에서 자선 사업에 대한 인식을 더욱 키워 자선 활동을 늘려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선 활동이 새로운 복음화의 도구로 더욱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답변들도 많았다.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보이는 헌신과 연대, 자선 활동, 그리고 소비와 소유를 부추기는 세상에서 그들의 검소한 생활양식은 복음을 선포하고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72. 종교 분야는 교회 안에서 특별한 반향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이는 교회 일치 대화와 관련된다. 「의제 개요」 설문에 대한 답변들은 여러 상황들의 변화가 교회 일치를 위한 교류의 진전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를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다. 답변들은 또한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단호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힘들고 긴장되는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고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이 새로운 상황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진정한 일치의 필요성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 주고 있다. 이러한 일치는 단순히 예의 바른 관계나 어떤 공동 계획을 위한 협력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일치는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욱더 닮아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열망이다. 무엇보다 영적인 이 일치는 행동으로 실천하기에 앞서 기도 안에서 간청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가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에게 요구하는 회개와 쇄신이 바로 이러한 교회 일치의 차원을 담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 되어 세상에 복음 메시지의 예언적이고 변화시키는 힘을 드러내 보일 수 있도록 확신에 찬 태도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이끄심에 따라 함께 노력할 때 비로소 해 낼 수 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기도로 우리에게 사명을 남기셨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73. 종교 분야는 두 번째로 종교간 대화와 관련이 있다. 종교간 대화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종교간 대화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은 세계 주요 종교들의 확산, 특히 이슬람교의 확산을 지켜보면서, 그리스도 신앙을 세상에 드러내고 보여 주고 제안하는 새로운 형태들을 발전시키라는 격려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동양의 주요 종교들과 나누는 종교간 대화와 토론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토론으로 우리 안에는 인류의 역사와 그 여정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관한 물음들이 샘솟는다. 종교간 대화는 또한 대화의 도구들을 정교하게 만들고, 더욱 인간다운 사회를 위하여 평화를 이루어 나가고자 서로 협력하는 자리를 넓혀 가는 기회가 된다.

74. 교회가 소수인 지역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소수라는 입장은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여러 측면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현존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기회로 여겨진다. 그러나 소수라서 박해를 받는 곳이라면, 복음화의 경험은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충실하셨던 예수님의 경험과 연결된다. 박해 받는 교회들은 온 교회에 복음화와 십자가의 관계를 상기시켜준다. 이 교회들을 통하여 우리는 복음화와 십자가의 관계가 등한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교회들은 복음화가 성공이라는 양적 잣대로 측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올바로 보여 준다.

75. 우리가 요청 받는 쇄신은, 과거에 또는 지금도 여전히 숨어 살고, 소외되고 박해받으며, 인종적, 이념적, 종교적 불용을 겪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동방 가톨릭 교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들이 보여 준 신앙 증거와 인내, 강인함과 불굴의 희망, 그리고 몇 가지 사목 실천에 대한 통찰력은, 과거에는 번성하였으나 지금은 어려움을 겪으며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함께 나누어야 하는 선물이다. 소수의 처지 속에 신앙 실천이 익숙하지 않은 교회들에게,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열정에 꼭 필요한 확신을 주는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선물이 된다. 박해 때문에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 마음속으로 겪은 순교라는 헤아릴 수 없는 보화를 간직한 이들을 따스하게 맞아들이는 것도 더욱 큰 영적 선물이 될 것이다.

만민 선교, 사목, 그리고 새로운 복음화

76. 새로운 복음화에서 비롯된 식별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이고 굳어진 개념들, 곧 관례적으로 ‘오랜 그리스도교 국가들’과 ‘선교 지역’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개념들은 이제는 그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개념들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이미 지나간 상황을 가리키고 있어서, 오늘날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유용한 모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분명히 밝히셨다. “신자 사목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특수 선교 활동의 경계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으며, 또한 이 세 가지 활동 사이에 장벽을 쌓거나 각기 침범할 수 없는 별개의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 예를 들면, 새로운 복음화의 중대한 과업에 직면해 있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교회들은 자국의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다른 국가나 대륙의 비그리스도인들의 선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부로 향한 선교 활동은 외부로 향한 선교 활동의 믿을 만한 표지요 자극이며, 또 반대로 외부로 향한 선교는 내부로 향한 선교의 자극제입니다.” 38)

77.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그 차이를 보여 주면서도, 새로운 복음화가 지닌 다른 특징을 잘 이해하였다. 곧 이를 단순히 오래된 형태의 사목 활동(첫 번째 복음화, 사목)이 새로운 사목 활동 모델로 대치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교회의 근본 사명을 새롭게 다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교회가 오늘날 복음화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하여 자문하면서, 자기 성찰을 하고, 교회 공동체들이 복음화를 얼마나 이루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새로운 복음화는 모든 교회 주체들(개인, 공동체, 본당, 교구, 주교회의, 운동, 단체, 그밖의 교회 기관, 수도자와 봉헌 생활자)의 의무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이 어떠한지 그리고 복음 선포의 도구로서 자신의 역량이 어떠한지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교회 생활과 사목 활동을 살펴보아야 한다.

78. 여러 다양한 답변들을 취합해 보면, 이러한 점검은 다음의 세 가지 기본 요건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첫째는 식별 능력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 신앙을 실천할 수 있다고 확신하여, 이러한 상황 속에 투신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참으로 온전히 그리스도 신앙에 따라 살아가는 능력이다. 이러한 삶은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 안에서 변화시켜 주시는 하느님의 힘을 입증할 수 있다. 셋째는 교회와 맺는 분명하고 명백한 유대이다. 이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며 선교하는 교회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 준다. 이러한 사안들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검토하도록 제출되었다. 이 검토를 통하여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가 요구하는 회개의 길을 걸어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79. 많은 개별 교회들은 「의제 개요」를 받았을 때 이미 이러한 요건들에 기초한 사목 활동을 점검하고 재개하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일부 교회는 그들의 활동을 두고 ‘선교적 쇄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또 다른 교회들은 ‘사목적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새로운 복음화의 핵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선교 사명에 새롭게 투신하는 것이라는 데에 모두가 뜻을 같이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원하셨고 세상에 파견하셨다. 그리하여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언하고, 이 구원 활동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본당의 변화와 새로운 복음화

80. 많은 답변들이, 교회가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존재하면서 스스로 변화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젊은 교회들은 대개 큰 규모의 본당들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리적이고 교회적인 환경에 따라 ‘교회 기초 공동체’ 또는 ‘소공동체’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그 본당 내부에 활력을 주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들이 표방하는 목적은, 그 구성원들의 신앙을 더욱 잘 지탱해 주고 그들의 증언을 통하여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 특히 대도시에 분산되어 있는 사회 영역들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 생활을 장려하는 것이다. 한층 오래된 교회들은 성직자 수가 감소되고 그리스도 신앙 실천이 줄어들면서 그 운영이 더 어려워진 본당 프로그램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활동이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로 바뀌면서 원치 않는 결과들을 낳는 위험을, 다시 말해 개별 교회들이 이러한 운영의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는 위험을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답변들은 한층 공동체다운 개별 교회를 만들어 가고자 본당 쇄신 프로그램을 타 본당들과 함께 협력하는 방법으로 ‘통합 사목’의 개념을 거론하고 있다.

81.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자기 본연의 선교 목적을 재발견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많은 답변들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본당 운영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기보다는 모든 이들에게 신앙을 선포하는 데 한층 전념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 신앙과 교회의 경험으로 이끄는 통로인 본당에 거는 기대가 참으로 크다. 본당은 일상의 사목 생활과 전례 거행, 성사 집행과 교리 교육, 예비 신자 교육을 위한 장소이면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전하고 증언하는 진정한 중심지, 사람들의 말과 그들의 요구를 귀담아듣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본당은 진리를 탐구하도록 가르치는 장소이면서, 신앙이 자라고 튼튼해지며,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인류와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전달되는 장소이다. 본당은 성령을 통하여 함께 모이는 기쁨만이 아니라, 저마다 받은 고유의 선교 사명을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준비하는 기쁨을 경험하는 첫 번째 공동체이다.

82. 이와 관련하여 교회가 활용할 자원들은 많다. 답변들은 한결같이 첫 번째 자원으로 세례 받은 평신도들을 꼽는다. 평신도들은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하여 자발적인 봉사를 계속해 왔다. 많은 답변들은 이렇게 평신도 성소가 꽃피운 것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실들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그 밖의 자원들을 열거하고 있다. 곧 봉헌 생활 공동체들, 다양한 교회 단체와 운동들이다. 이들은 그 열정과 활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신앙을 통하여 교회 영역들의 쇄신을 위한 힘찬 동력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신심을 북돋아 주는 많은 순례지들은 개별 교회 안에서 신앙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83.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그렇게 분명하고 희망찬 표징들과 함께, 새로운 복음화의 길이 사람들 사이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우리의 방식을 느리지만 효과적으로 재편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유사 종교나 ‘민속 종교’가 되어 버릴 위험을 피하면서도 선교하는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는 ‘가족적이고 친근한’ 교회의 모습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소수이거나 차별받는 상황에서도 교회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머물며, 바로 그 자리에서 생명을 주는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자신의 특권을 잃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단언하신 것처럼, 새로운 복음화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조직을 재편하면서 인간 사회의 그리스도교적 면모를 회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자기 아들딸들의 집안에서” 39) 계속 현존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84. 사제 부족 문제는 별도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답변이 사제 부족에 우려를 표시하였는데,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방식에 안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답변들은 이 위기를 그리스도인 혼인과 가정의 위기와 나란히 놓고 상세히 다루었다. 많은 답변들이,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하여 사제와 더불어 평신도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는 지역 교회의 구조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상당수의 답변들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토론을 통하여 미래를 위한 전망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거의 모든 답변들이 교회 전체가 성소 사목을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 성소 사목은 기도에서 시작되고, 모든 사제와 봉헌된 이들이 그들이 받은 성소의 매력을 증언하며 젊은이들에게 이를 전하는 방법을 찾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봉헌 생활 성소, 특히 여성 봉헌생활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일부 답변들은 신학교와 수련원뿐 아니라 교육 기관에서도 새로운 복음화와 관련하여 적절한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정의와 그 의미

85.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소집과 바로 뒤이은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신설로,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밝히는 과정에서 진일보를 이루게 되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에 하신 말씀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내용을 이렇게 밝히셨다. “본인도 존경하는 선임 교황님들의 이러한 우려에 깊이 공감하여, 교회 전체가 성령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 현대 세계에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특히 오래 전에 설립된 교회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 그럼에도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새로운 선교 열정, 은총의 선물을 새롭게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40) 「교회의 선교 사명」41) 과 같은 맥락에서, 신앙교리성은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정의로 더욱 분명히 하였다. “정확히 말해서, 복음화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을 향한 ‘만민 선교’(missio ad gentes)이다. 넓은 의미에서, 복음화는 통상적인 사목 활동을 가리킬 때 사용되고, ‘새 복음화’라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 이상 실천하지 않는 이들을 향한 사목 활동을 가리킨다.”42) 이 정의는 주교대의원회의 아프리카 특별 총회 후속 교황 권고 「아프리카의 사명」(Africae munus)에서 되풀이 되었다.43)

86. 따라서 우리는 이 문헌들을 통하여,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지리적 영역이,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선적으로 서방의 그리스도교 세계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복음화의 대상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바로 우리 공동체에 속한 세례 받은 이들이다. 믿음과 증언을 위협하는 새로운 실존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이 사람들이 ‘내적인 광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상황들, 삶의 자리들과 사목 활동들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사실상 하느님에 대한 물음이 사라진 이 세상에 갇힌 인간의 처지를 드러내고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사용하신 것이다. 이러한 장소와 상황들에서 하느님에 대한 물음을 다시 제기하는 용기, 그리고 오랜 전통을 지닌 많은 교회들이 높은 수준의 신앙과 그 동기를 회복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복음화의 특별한 과제이다.

87.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참조가 될 뿐이다. 달리 말해, 서방 세계는 새로운 복음화의 활동을 위한 본보기가 되는 장소이지, 그 활동의 유일한 목적지는 아니다. 이러한 정의는 새로운 복음화 과제의 깊이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복음화는 단순히 몇 가지 사목 실천 방안을 적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를 이러한 상황으로 이끈 원인들을 더욱 찬찬히 살피고 이해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새로운 복음화의 긴급한 필요성은 위의 상황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프리카에서도 복음을 ‘새로운 열정과 방법과 표현으로’ 다시 전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전개되고 있습니다. …… 새로운 복음화는 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에게 긴급한 과제입니다. 그들도 교회 구성원이 되고자 한 처음의 열망을 다시 일깨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에 이끌린 그들은 개인, 가정, 사회에서 기쁜 소식을 실천하고 새로운 열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하느님의 섭리로 복음 선포에 쓰게 된 새로운 방법들을 활용하여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44) 이 말씀은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곧 교회가 이미 새로운 복음화를 촉진하는 일에 힘써 온 대륙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들에 적용되어야 한다.

88. 새로운 복음화는 영적 쇄신에 주어진 이름이다. 이 영적 쇄신은 교회가 그 자신은 물론이고 모든 교회 공동체와 세례 받은 모든 이들에게 요구하는 회개 여정의 시작이다. 따라서 이는 어떤 정해진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길이다.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를 통하여 교회 본연의 고유한 주제를 오늘날의 세계 안으로 그리고 일상의 담론 안으로 이끌어 들이고자 한다. 교회는 자신이 오늘날에도 하느님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신앙의 선물을 통하여 변화될 수 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언제나 새롭게 선포하는 것이다. 바로 이를 통하여 인류는 하느님의 신비와 그분 사랑의 삶에 동참할 수 있고, 확고하고도 희망찬 미래로 향할 수 있다. 교회가 역사의 바로 이 순간에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도록 부름 받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고자 교회의 선교 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89. 교회 안의 그 어떤 부분도 이 계획에서 배제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우선, 많은 이들이 신앙 실천을 저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는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의 교회들이 해당된다. 또한 정도는 덜하지만, 특히 대도시와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에 있는 젊은 교회들이 그러하다. 특히 개발 도상 국가에서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거대 도시들은 현재 커다란 사회적 문화적 도전으로서, 분명히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복음화가 토착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젊은 교회들과도 관련되는 것이다. 이들의 토착화 활동은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젊은 교회들은, 문화를 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복음이 스며들어 그 지역의 문화가 복음의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하다. 그들이 펼치고 있는 사목 활동이 더욱 힘들어지고, 또 그 활동이 시작된 동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한 일이 되어 버릴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제3장
신앙의 전수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2.46-47)

90.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 주제에 나타난 대로 새로운 복음화의 목표는 신앙의 전수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교회의 삶을 하느님 계시의 체험에 완전히 연결시키는 과정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모든 것이 영구히 온전하게 보존되고 모든 세대에 전해지도록 매우 자비로이 배려하셨다.” 45)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이 유산에 충실하면서,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사도 2,42 참조). 그리하여 전해진 신앙을 고수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면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46)


91. 사도행전은 인간이 스스로 믿지 않거나 체험하지 못한 것을 전할 수 없음을 잘 보여 준다. 복음의 모범을 따르지 않는 삶이나, 복음에 기초하여 그 의미와 진리와 미래를 찾지 못한 삶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오늘날에도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어, 우리가 실천하는 신앙을 전수할 뿐 아니라 성령께서 이미 당신의 현존과 활동으로 준비시켜 주신 사람들의 응답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 주신다(사도 16,14 참조). 복음 말씀을 충실하게 선포하려면 하느님의 자녀들이 깊은 친교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사도 요한이 상기시켜 준 것처럼 뚜렷한 표징이자 선포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92. 선포와 전언은 어느 개인이나 선택받은 소수의 임무가 아니라, 신앙의 부름에 응답하는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신앙의 전수는 어느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 전체의 책무이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성령의 부르심으로 함께 모인 백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다시 확인하여,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고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신앙 전수는 교회의 본질적 활동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생활의 기본 요소인 사랑, 증언, 선포, 거행, 경청, 나눔을 드러내도록 이끈다. 복음화는 교회가 성령의 이끄심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사랑의 재촉을 받는 복음화는 모든 현세 질서에 스며들어 그것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받아들여 새롭게 한다. 교회는 공공연히 복음을 선포하고 회개로 초대한다. ‘교리 교육’과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통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귀의한 사람들이나 그분을 따르는 길로 다시 들어선 사람들을 모두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받아들이며 이끈다. 교회는 신앙 교육과 성사들,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친교의 은혜를 계속 베풀어 준다. 교회는 선교를 계속 촉진하고,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가 말과 행위로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그들을 파견한다.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에 필요한 식별 활동을 통하여 많은 공동체에서 신앙 전수의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신앙의 수위성

93.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바오로 6세께서 1967년에 내리신 그와 유사한 결정을 기억하시고 그 당시에 내세웠던 이유를 재천명하셨다. 바로 온 교회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장엄한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바오로 6세께서는 “개인적이면서도 단체적으로, 자유로우면서도 의식적으로, 내적 외적으로, 겸허하면서도 솔직한” 47) 고백이 되기를 바라셨다. 특히 참다운 신앙의 고백과 그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관련된 그 당시의 심각한 어려움을 충분히 인식하시고 그러한 결정이 교회의 깊은 내적 선교적 쇄신을 촉진하는 방법이라고 여기셨다.

94.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그러한 전망에 동의하시면서 신앙의 해가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신자들이 고백한 신앙의 핵심 요소들을 늘 새로운 방식으로 깊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리하여 과거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 신앙을 일관된 방식으로 증언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이루어주고 하느님의 교회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하는 신앙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위험은 존재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신앙을, 교회 친교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위대한 은총을 통하여 삶을 변화시키는 수단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위험도 존재한다.

95. 「의제 개요」에 대한 답변들은 그러한 위험에 대하여 언급하며 안타깝게도 많은 공동체에서 신앙의 성숙을 위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최근 수십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답변들은 이러한 교육 활동이 아직 시작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 전수에서 커다란 장애들은 어디서나 존재한다. 교회 안과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장애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신앙을 실천하거나, 자신의 신앙 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것과 같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답변들은 또한 신앙의 실천과 전수를 어렵고 위태롭게 만드는, 그리스도인 삶의 외부에서, 특히 문화에서 오는 장애들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비주의, 쾌락주의, 문화적 허무주의가 있다. 또한 구원에 대한 모든 열망을 꺼트리는, 초월에 대한 폐쇄성이 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위에 나온 평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96. 한편, 답변들에서는 신앙이 되살아나는 긍정적인 표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개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식 개혁과 교육 활동, 그리고 봉헌 생활 공동체와 교회 단체와 운동들의 모범은 신앙의 수위성을 깨닫게 해 주는 길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유익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그 구성원들이 성숙되는 것이다. 많은 개별 교회들은, 일상생활의 변화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를 다루는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하여, 사람들이 신앙을 하느님 체험이며 삶의 중심으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

교회는 자신이 실천하는 신앙을 전수한다

97. 신앙 전수의 가장 좋은 자리는 전례 생활과 기도로 길러지고 변화되는 공동체이다. 신앙과 전례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곧,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lex orandi lex credendi). “전례와 성사들이 없다면 신앙 고백은 유효하지 않다. 그러한 신앙 고백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는 은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48) “전례를 통하여, 특히 거룩한 성찬의 희생 제사에서 ‘저희의 구원이 이루어지므로’, 전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다. ……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을 파견하시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하느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사탄의 권세와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아버지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는 소식을 알리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선포하는 구원 활동을 모든 전례 생활의 중심인 희생 제사와 성사들을 통하여 수행하게 하셨다.” 49)
이러한 측면에서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전례의 심오한 본질을 삶으로 실천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전례와 기도 생활은 사람들의 평범한 모임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삼위일체 믿음을 거행하고 전달하는 공동체로 바꾸어 놓는다.
교회 생활 안에서의 성찬례와 하느님 말씀에 관하여 개최된 지난 두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들은, 성찬 신비와 하느님 말씀의 신비가 교회 생활의 중심임을 강조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시작된 전례 개혁의 수용과 발전을 충실하게 지속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틀 안에서 여러 답변들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거룩한 독서는 복음화의 자연스러운 자리로 여겨진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넓은 자리를 제공하여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을 그 무한한 원천이신 하느님께로 이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초대하시고, 질문하시고, 이끄시고, 깨우쳐 주시고, 판결해 주신다. “믿음이 들음에서 오는”(로마 10,17) 것이라면 하느님 말씀의 경청은 개별 신자와 교회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복음화와 쇄신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수단이 된다.

98. 답변들에는 전례의 심오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동시에 복음 선포이자 사랑의 실천이다.
여러 답변들은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거의 사라진 고해성사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답변들은 세계청년대회와 성지 순례와 같은 특별한 때에 이 성사를 거행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러한 거행이 성사적 화해의 실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99. 「의제 개요」에 대한 답변들은 한편으로 기도라는 주제도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다음과 같은 긍정적 요소들을 강조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뿐 아니라 개인의) 시간 전례 거행의 확산, 개인 기도의 원천인 성체 조배의 재발견, 하느님 말씀 경청과 기도 단체 회원의 증가, 마리아 기도 단체, 성령 쇄신 기도 단체, 신심 기도 단체들의 자발적인 확산 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답변들은 그리스도 신앙의 거행과 대중 신심의 형태의 관계에 관하여 다양한 견해를 표명하였다. 이 관계에는, 일부 서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종교 혼합주의나 신앙의 퇴화와 같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신앙 교육

100. 교회는 그 역사의 시작부터 주님께 충실하여 성경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전례 안에서 이를 체험하며, 그 진리를 신앙 규정인 신경(信經)으로 종합하여 요약하고, 삶의 지표로 해석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이를 실천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는 서한에서 이를 되새기셨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발행에 관한 교황령을 인용하면서,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을 전수하려면 신앙을 “고백하고, 경축하며, 실천하고, 기도” 50)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교회 전통은 성경에서 취한 근본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로마 교리서』의 네 가지 주요 부분, 곧 신경, 성사, 계명, 주님의 기도를 발전시킨 신앙 전수를 위한 교육 방법을 창안하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고백하고(신경) 거행하는(성사) 한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신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방식(십계명)과 자녀다운 기도(주님의 기도)로 구체화되는 그러한 신앙(사랑을 통하여 드러나는 신앙)에 일치하는 인간의 삶이다. 이 네 부분이 오늘날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전체 구조를 이루고 있다. 51)


101.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두 가지 취지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교회에 선사하셨다. 곧 신앙의 근본 내용을 확립하고, 동시에 신앙 전수 교육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리서의 목적은 모든 신자에게 신앙을 온전히 살아갈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신앙은 진리를 제시하고 진리를 지키는 것이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선물로 주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이끈다. 이렇게 신앙의 내용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곧, 예수님을 따르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의 삶에 일치시키려는 결심과 자세가 된다. 신앙의 이렇듯 심오한 교육 구조 안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이러한 경험을 바오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사실, 우리 믿음의 행위와 우리가 동의하는 내용은 깊이 일치한다. …… 믿어야 할 내용을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 은총으로 열려 깊이 바라보는 눈을 지니고, 선포된 내용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 52)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는, 발행 20주년을 맞이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구조와 근본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교회가 최근 수십 년 동안 교리 교육의 쇄신을 위하여 기울인 커다란 노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의제 개요」에 대한 답변들은 교리 교육과 신앙 교육 프로그램의 촉진을 위한 평가와 계획 과정에 커다란 진보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자료집 출판이나 교리 교사 양성 계획들도 포함된다. 교리 교사 양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수단들을 활용할 뿐 아니라 더욱 복잡해진 그들 임무에 대한 이해도 성숙되어야 한다.

102. 답변들은 이에 관하여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교회의 여러 기구(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각국 주교회의들, 교구나 본당 센터, 본당 공동체, 교리 교사들, 신학 연구소, 사목 연구소)에서 교회의 모든 지체가 신앙을 더 잘 이해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진지한 노력을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답변들은 교회가 신앙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발행은 그러한 수단을 적극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동방 가톨릭 교회들과 각국 주교회의들에게 교회의 교리 교육 활동에 관한 일관되고 명확한 기준도 마련해 주고 있다.

103. 답변들에는 또한 오늘날 우리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기울인 모든 노력에 관한 언급도 담겨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 여전히 많은 장애가 남아 있다. 특히 그리스도 신앙에 더욱 적대적이 되어 버린 급격한 문화적 변화가 그러하다. 그리고 지식과 기술의 발전으로 신앙에 적대적인 새로운 전선들이 형성되고 있다. 끝으로 답변들은, 교리 교육이 그리스도인 신앙의 평생 교육보다는 여러 단계의 성사 준비로만 여겨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04. 인간 문화의 세속화 과정으로 보아, 교리 교육의 다양한 방법들이, 어느 정도 활력을 지닌다 하더라도, 신앙 전수에서 언제나 충만한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므로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과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다룬 교리 교육에 관한 과제를 계속 성찰해야 한다. 이는 갈릴 수 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하나인 믿음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교리 교육의 기본 원리에 따라 오늘날 신앙 전수의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53)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신앙의 핵심 요소를 충실하게 전하는 통합적인 교리 교육의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리 교육은 현대인들의 물음을 경청하고 진선미에 대한 추구를 격려하면서 그 문화 안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신앙 전수의 주체

105. 신앙 전수의 주체는 온 교회이다. 온 교회는 개별 교회들, 교구들 안에서 드러나고, 바로 그들 안에서 복음의 선포와 전달, 체험이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이 개별 교회들은 신앙 전수의 주체일 뿐 아니라 복음 선포와 신앙 전수 활동의 열매이기도 하다(사도 2,42-47 참조). 성령께서는 신자들을 공동체로 모으시어 그 안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 공동체에서 신자들은 사도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성장하고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 일생을 바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의 이 교회는 신자들의 모든 합법적 지역 집회에 존재하며, 자기 목자들과 결합되어 있는 이 회중을 신약 성경에서 교회라고 부른다. 이 회중은 성령 안에서 큰 확신으로(1테살 1,5 참조)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 지역에서 새로운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신자들이 모이고, ‘주님 몸의 살과 피를 통하여 모든 형제애가 두터워지도록’ 주님 만찬의 신비가 거행된다.”54)


106. 신앙 전수와 더 일반적으로는 복음 선포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실제 삶 속에서 공의회의 이러한 주장을 구체적으로 또 자주 모범적으로 실현해 왔다. 답변들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띠게 늘어나 성령의 참다운 은사인 공동체 생활을 드러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신앙 전수와 관련된 사목 활동으로, 교회는 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 상황 안으로 들어가 그 일상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 풍요로운 활동과 서로 다른 직무들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그 다양한 여러 주체들(사제, 부모, 수도자, 교리 교사 등)이 주교와 일치를 이루며 각자의 고유한 과제와 책임에 따라 참여하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07. 앞에서 언급한 대로 복음 선포와 신앙의 전수는 본당 공동체와 관련된 변화에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 답변들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인 본당이 새로운 복음화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본당은 단순히 종교적인 예배를 거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가정들이 모이고 성경 읽기 모임을 촉진하며 평신도 참여를 활성화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본당에서 사람들은 참다운 성사 거행을 통하여 진정한 교회 체험을 하게 된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은 폭넓은 교회 현실과 사목 활동의 기준과 좌표가 되는 본당의 소명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108.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의 필수적인 역할에 더하여, 많은 개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을 전수하고 그리스도인 생활을 가르칠 과제가 있다. 답변들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리 교사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답변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은사를 인식하고 있다. 특히 지난 세기들에 복음화된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신앙에서 우러나 복음 선포에 독특하고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일부 답변들이 강조하듯이,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교리 교사들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회는 그들의 노력을 더욱 격려할 필요가 있다. 교리 교사는 직접적인 증인이며 소중한 복음 선포자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힘을 보여 준다. 교회는 교리 교사들의 책무에 대하여 더 깊이 성찰하여 그들에게 좀 더 안정된 생활 조건과 교육 기회를 마련해 주고 그들의 봉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는 이미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성찰을 받아들여, 교리 교사가 교회 안에서 안정적이고 확고한 위치에서 봉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신앙을 선포하고 전수하는 활동을 새롭게 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교리 교사들을 위한 그러한 뜻 깊은 결정은 온 교회에 요청된 새로운 복음화의 수행에 강력한 지지와 도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109. 여러 답변들은 교리 교육에 헌신하는 부제들과 많은 여성들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답변들에는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우려 섞인 견해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사제수가 감소하여 한 사제가 여러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에게 교리 교육을 맡기는 관행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제의 정체성에 따른 생활 방식과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이해하는 데에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성찰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답변들은 바란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복음화와 신앙 전수 분야에서 사제 직무의 고유성을 보존하면서도, 그러한 변화에 대한 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논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현재 그들 안에서 활동하는 사제, 부제, 교리 교사의 직무에 새로운 선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복음화의 모범적인 자리인 가정

110. 답변들은 신앙 전수의 주체들 가운데 가정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한편으로, 혼인과 가정에 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가정을 신앙 증언의 모범적인 자리로 만들어 주는 커다란 선물이다. 가정이 그리스도인 경험의 핵심 가치를 실천하는 예언자적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창세 1,27 참조) 남자와 여자의 존엄성과 상호 보완성, 생명에 대한 개방성, 나눔과 친교, 가장 약한 이들에 대한 헌신, 교육적 보살핌, 일치의 근거가 되는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에 대한 굳센 믿음 등이 그러한 가치들이다. 많은 개별 교회는 특히 가정의 선교 소명과 신앙 증언의 관점에서 가정 사목을 강조하고 여기에 힘을 쏟고 있다.

111.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인간 생명의 시작부터 자녀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을 가르치고 전수할 가정의 책임도 인식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교회와 가정 사이에 깊은 유대가 생겨난다. 교회는 가정에 도움을 주고자 하고 또 가정에서 도움을 받고자 한다. 때로 가정은 바쁜 생활, 직업의 불안정, 더욱 힘들어지는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과 피로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어려움을 인식한 가정은 공동체의 지지, 환대, 복음의 경청과 선포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가정은 그들의 교육 임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신앙 전수에서 가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공통된 목표이다.

112. 답변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을 포함한 많은 가정이 당면한 어려움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전해 주고 있다. 가정들은 특히 자녀의 신앙 교육에서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들을 겪을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러 답변들에는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한 가정 모임의 구성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는 지역 가정 모임들이나 교회 운동 단체나 경험과 연계된 가정 모임들이 있다. 이러한 모임들을 통하여 많은 부부들이 당면한 문제를 좀 더 잘 극복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더욱 분명히 증언하게 되었다.

113. 많은 답변들에 따르면 이러한 가정 모임은 신앙 선포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맺은 열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답변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 준다. 덧없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강인함을 보여 주고, 신앙을 한결같이 함께 경축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고 날마다 소박한 방식으로 복음을 증언하고자 작은 힘이라도 아낌없이 보태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화의 소명

114. 답변들은 봉헌 생활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할 은사로 본다. 신앙 전수와 복음 선포에 관하여 답변들은, 저명한 수도회들과 여러 형태의 봉헌 생활회, 특히 탁발 수도회와 사도직 생활 단체와 재속회는 내적 어려움을 겪고 생활 방식을 쇄신하는 때에도 예언자이면서 복음 선포자인 그들의 은사를 통하여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현존은, 비록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교회가 수행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선교 사명에서 많은 영적 열매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많은 지역 교회는 이러한 예언자적 복음 증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많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힘의 원천이다.

많은 답변들에는 봉헌 생활이 새로운 복음화에 중요한 기여를 계속할 것을 바라고 있다. 특히,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과 영적 물질적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을 위한 교육, 보건, 사목 활동에서 기여할 것을 바란다.

이와 관련하여, 답변들은 또한 특히 봉쇄 수도회의 관상 생활이 새로운 복음화 활동에 가져다주는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공헌도 인정하고 있다. 역사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관상에 전념하는 수도 생활은 복음화 활동과 확고한 유대를 맺어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다. 관상 생활은 복음의 본질, 신앙의 수위성, 전례 거행을 생생히 보존하는 교회 생활의 한 축으로서, 그러한 일들을 침묵의 의미로 빛내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활동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115. 교회를 위한 하느님 섭리의 또 다른 선물로, 지난 수 십 년 동안, 때로는 자발적으로 또 성령에 충만하여 무엇보다 복음 선포에 헌신하는 단체들과 운동들이 활발하게 생겨났다. 이러한 단체와 운동에서, 여러 답변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개인이 자신의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삶의 핵심 요소들을 발견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새로운 복음화 일꾼들’의 자질과 관련된다. 여기에는 자신이 선택한 삶과 가치를 충실히 실천하고 그 근거를 내세울 수 있는 능력,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없이 공공연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려는 의지, 기도와 형제적 나눔을 통한 친교의 계기를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 가난한 이들과 억눌린 이들을 향한 자발적인 최우선의 사랑, 젊은 세대의 교육을 위한 열정이 있다.

116. 답변들은 은사를 새로운 복음화의 중요한 자원으로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는, 그러한 자원들을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의 활동을 선교하는 교회의 생활에 통합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은사의 다양한 측면에 대하여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은 교구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교구의 선교 노력에서, 은사와 제도의 관계, 곧 은사라는 선물과 교계라는 선물의 관계를 논의하도록 요청받는다. 55) 이렇게 하여, 일부 답변들이 우려를 표명한 장애, 곧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은사들을 온전히 통합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러 답변들이 요구하는 대로, 성령에게서 받은 이러한 은사들의 ‘공통 본질’이라는 문제를 논의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전망 안에서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그 은사들을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56) 이러한 성찰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들이 지닌 힘을 더욱 적극적으로 적절하게 평가하고 활용하는 효과적인 사목 수단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117. 복음화의 이러한 새로운 경험과 방식에 관하여 답변들은 또한 가톨릭 액션(Actio Catholica)처럼 그리스도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생겨난, 복음화를 위한 커다란 운동, 단체, 연합회도 언급하고 있다. 이들 활동의 특성은, 그러한 유형의 경험들에 활기를 불어넣는 철저한 복음 정신에서,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예언자적 소명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매력과 그 삶의 특징인 기쁨에서 흔히 성소의 은총이 생겨난다. 여러 답변들은 일부 오래된 형태의 봉헌 생활과 이러한 새로운 운동들이 서로 은사를 나누기 시작했다고 전해 준다.

우리 신앙의 이유를 설명한다

118.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 하는 신앙의 선포와 전수의 임무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날 필요가 있다. 여러 답변들은 오늘날 교회의 가장 긴급한 과제가, 모든 신자가 세례 때 받은 자신의 신원을 다시 일깨워 각자 복음의 참된 증인이 되고 자신의 신앙의 이유에 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신자는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고 57)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참여하는 덕분에 58) 교회의 이 임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평신도들은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에서 불가지론자들과 비신자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이 당면하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하여 그리스도 신앙이 어떻게 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도록 요청받는다. 이는 오직 복음과 삶의 단절을 극복하고 가정, 직장,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삶의 일치를 이룩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59) 그러한 삶의 일치는 복음에서 영감과 힘을 얻어 충만히 실현된다.

119.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세례 신원에서 나오는 이 임무에 대한 소명감을 느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고유한 성소에 따라 그러한 임무에 응답하는 데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신앙을 택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쉽지 않고, 세상이 비록 직접 방해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아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개인은 복음의 담대한 증인이 되라는 재촉을 더욱 강하게 받고 있다. 이 행동 방식은 베드로 사도께서 우리가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고(1베드 3,15 참조)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신앙 증언의 새 시대를 열고, 우리 안에서 불타는 신앙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말씀(logos)의 새로운 형태로 응답(apo-logia)할 수 있는 길들을 가리켜 주신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자신을 쇄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희망과 구원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 줄 기회를 마련해 준다. 여기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1베드 3,16) 응답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 이러한 일치가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 새로움, 이 모든 것에서 오는 온유한 힘으로 살아가라는 초대이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 뵙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가라는 초대이다.

120. 이러한 방식은 생각과 행위, 개인적 행동과 공개적 증언, 우리 공동체의 내적 삶과 선교 열정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이로써 교육에 대한 관심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 일상의 상황들과 일터에서 적극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역량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 희망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선물을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도들의 설교에 나타난 것처럼 열정과 신뢰와 담대함(parresia)의 특징을 지녀야 한다(사도 4,31; 9,27-28 참조). 우리 신앙의 논리에 근거한 이러한 방식을 세상이 전체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서 찾아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대중적인 복음 선포와 병행하여, 직접 만나서 전달하는 방법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합니다. …… 기쁜 소식을 대중에게 선포하여야 할 절박한 요구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선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직접적 선포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전해 듣고 개개인의 마음은 감동을 받습니다.” 60)


121. 이러한 관점에서 신앙의 해가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주님을 향하여 참되고 새롭게 돌아서도록 우리를 초대한 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은혜로운 기회이다. 이를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세례 받은 모든 이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가지를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2). 그리하여 세상과 인간의 삶은 부활의 근본적인 새로움에 맞갖은 새로운 생명의 은총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기꺼이 성령께 내맡길 때, 그의 생각, 감정, 정신, 행동은 서서히 정화되고 변화된다. 그러나 이 여정은 이 세상에서는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은 이제 인식과 행동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 한 인간의 생활의 모든 측면을 바꾸고(에페 4,20-29 참조) 새로운 열매를 맺게 한다.

신앙의 열매

122. 신앙생활로 가능해진 이러한 변화가 교회 안에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이 열매들은 복음의 생생한 힘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우리 시대의 도전에 맞서는 가운데에 뚜렷이 나타난다. 이에 관하여 답변들에는 다음과 같은 열매들이 언급되었다. 사랑과 나눔의 참된 표징이며 생명에 열린 희망인 가정, 참된 교회 일치 정신을 지닌 공동체, 사회 정의와 연대의 활동을 지지하는 용기, 사제직이나 봉헌 생활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기쁨이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로 자신의 신앙을 전수하면서 교회를 이끄시고 역사를 바꾸시는 성령의 힘을 드러낸다.

123. 신앙이 사랑 안에서 드러나는 만큼 신앙이 없는 사랑은 자선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과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많은 답변들은, 외롭거나 소외되거나 배척당하는 이들에게서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기에 그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바쳐 증언한 여러 그리스도인들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신앙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바로 신앙이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삶의 여정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웃이 되실 때마다 그분을 돕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124. 우리는 신앙에 힘입어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2베드 3,13) 기다리며 세상에서 완수하여야 할 우리의 직무를 충만한 희망을 가지고 바라본다. 이 복음화 임무를 위하여 우리는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아야 한다.” 61) 많은 답변들은, 세례 받은 모든 이가 교회의 사회 교리를 통하여 복음화의 구체적인 과업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의 참다운 선을 추구하고 개개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촉진하면서, 특히 평신도들은 사회 정치 활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세례 받은 모든 이가 세상에서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에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형제애, 연대, 지원 활동으로 보여 주는 사랑은 말보다 더 강한 효과가 있다.

125. 교회 일치를 위한 새로운 노력은 예수님의 복음과 현존을 통하여 변화된 교회의 또 다른 열매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이 신앙을 거스르는 증거임을 강조하고 있다. “분명코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 명백히 어긋나며,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 할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62) 이러한 분열의 극복이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따르는 필수 조건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일치시켜 주는 것은 분열시키는 것보다 더욱 강하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충실히 증언하고 일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개별 교회들은 분명히 교회 일치가 새로운 복음화에서 기대되는 열매들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하였다. 이 두 활동은 모두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교회라는 가시적인 몸 안에서 친교를 촉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26. 사람들을 진리로 이끄는 것도 많은 답변들이 새로운 복음화에 기대하는 열매들 가운데 하나이다. 현대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는 진리로 내세워지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일종의 불용이 나타난다. 현대적 개념에서 자유란 진리에서 벗어난 절대적 자율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대주의가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 안에서 살아가는 데 유일한 사고방식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답변들은, 바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진리의 이름으로(요한 8,32 참조)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개인들이 온갖 폭력과 권리 억압에 맞서 진리와 평화와 모든 인간의 존엄성 수호로 사람들을 이끌 줄 알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127. 이러한 여정의 시금석은 확실히 종교간 대화이다. 종교간 대화는 필연적으로 모든 종교 체험에 내재하는 가치인 진리의 주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구는 진리에 열려 있을 때 참으로 자유로워진다. 이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의 끌어당기는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63)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성에 알맞은 방법으로 곧, 자유로운 연구, 교육과 훈련, 커뮤니케이션과 대화로써 탐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서로 진리 탐구를 돕고자 이미 발견하였거나 발견하였다고 여기는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깨달은 진리는 인격적인 동의로써 굳게 따라야 한다.” 64)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복음화와 신앙의 전수라는 주제를 진리와 자유의 두 원칙의 관점에서 다루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5)


128. 끝으로, 새로운 복음화의 열매를 식별하는 데에는, 이 선포의 직무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린 병들고 위축된 의식의 표지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변절과 추문을 고발하는 용기도 포함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증언하고 구원의 지속적인 필요성을 계속 밝히면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오로 성인의 말씀대로 우리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힘을 알게 된다(2코린 12,9; 로마 7,14 이하 참조). 회개의 표시인 참회를 하면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가 정화되고 회복된다. 이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이다”(로마 5,5). 이러한 태도는 신앙의 전수와 복음 선포의 열매이다. 이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인과 그 공동체가 쇄신되고 세상에 그리스도 신앙을 증언한다.

제4장
사목 활동의 활성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129.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세례를 주라는 명령은, 교회 역사의 다양한 시기에 걸쳐 사목 활동의 근원이 되어 왔다. 이 사목 활동들은 인간의 문화 안에서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할 필요성과 신앙을 전수하려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66)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분명하게 표현된 법칙이다. “교회는 그 역사의 시초부터 여러 민족들의 언어와 개념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법을 익혔으며 또한 철학자들의 예지로 그 메시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의 이해력과 지성인들의 요구에 가능한 한 복음을 적응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계시된 말씀의 그러한 적응 선포는 언제나 모든 복음화의 법칙을 고수하여야 한다. …… 하느님의 백성 전체, 특히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의 소임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현대의 다양한 말을 경청하고 식별하고 해석하며 이를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계시 진리가 언제나 더 깊이 받아들여지고 더 잘 이해되고 더욱 적절히 제시될 수 있다.” 67)


130. 교회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도전이 되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 속에서 신앙 전수의 형태를 점점 더 분명하게 이해하면서, 전반적으로 교회의 사목 활동을 성찰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신앙 입문과 신앙 교육,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선포와 관련된다. 사실상 “교회는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치의 표징으로서 가시적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 사회 생활의 발전으로 교회도 역시 부요해질 수 있고 또 부요해지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구조에 무엇이 부족하여서가 아니라, 그 구조를 더 깊이 깨닫고 더 잘 표현하고 현대에 더 쉽게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68) 「현대의 복음 선교」69) 에 나오는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복음과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구체적인 인간 생활의 지속적 상호 작용을 고려하지 않는 복음화는 완전할 수 없다.’ …… 정의와 평화와 발전을 위한 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은 복음화의 일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전체에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가르침은 복음화의 핵심 요소가 되어 교회의 사회 교리의 선교적 측면의 기초가 됩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신앙을 선포하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신앙 교육의 필수적인 배경이며 도구입니다.” 70) 이는 새로운 복음화에서 심화하여야 할 주제들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특별히 “화해, 정의와 평화에 대한 교회의 봉사”와 관련된다.71)
 

복음화 과정인 그리스도교 입문

131. 그리스도교가 장차 세상에서, 특히 서방에서 지니게 될 모습과 그리스도교 신앙이 오늘날 문화와 대화를 나누는 역량은, 교회가 세례 관행에 대하여 현재 진행 중인 검토를 앞으로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의제 개요」는 언급하였다. 이에 대한 답변들을 보면, 교회는 이러한 검토를 열심히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어느 정도 확신에 도달하였지만, 다른 몇몇 문제들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에 앞으로 계속 심도 있게 다루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132. 첫 번째 확신은 그리스도교 생활에 입문하는 관행적 형태, 흔히 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베풀어지는 유아 세례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 답변들이 이러한 보고를 하였다. 이는 실태 조사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젊은 교회들은 유아 세례를 그 지역의 그리스도교 토착화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 주는 표지로 여겼다. 한편 다른 교회들은 세례 받은 부모들이 다양한 이유로, 특히 자녀가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이유로, 자녀의 세례를 미루는 데 대한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133. 두 번째 확신은 어른과 청소년들 사이에 세례를 요청하는 이들이 오늘날 꾸준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그 숫자는 유아 세례보다 훨씬 적을지라도 그러한 상황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례성사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선물로 여겨진다. 세례 준비 과정, 세례 전 수련식 그리고 세례성사의 거행은 예비 신자들과 공동체 모두의 신앙을 풍요롭게 해 주는 시간들이다.

134. 또한 「어른 입교 예식」72) 의 예비 신자 교육 기간의 구조는 어린이의 신앙 입문 방법을 쇄신하는 데도 좋은 수단임이 분명해 보인다. 최근 수 십 년 동안, 모든 개별 교회는 이러한 신앙 입문과 신앙 교육에 더욱 증언적이고 교회적인 성격을 부여하고자 노력해 왔다. 세례성사의 더욱 의식적인 거행은 세례 받은 이들이 이후 그리스도인 생활에 더 잘 참여하도록 돕는다. 그리스도교 입문 여정의 더 나은 방식을 위하여 성사들(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을 하나로 연결하거나 부모와 대부모를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상 많은 개별 교회들이 신앙 실천을 새롭게 하고 전례와 삶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특정한 유형의 ‘세례 후 교리 교육 과정’을 제도화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73)
 

135. 많은 답변에서는 새로운 복음화를,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노력들과 새로운 시도들을 더욱 공고히 하라는 요청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비 신자들과 그들 가족의 신앙, 그리고 그들을 도우며 이끄는 공동체의 신앙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세례 사목은 새로운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분야들 가운데 하나이다.

136. 답변들에서 그리스도교 입문 여정과 관련해서 두 가지 점이 언급되었다. 다양한 경험들과 다양성 안에서의 조화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초등학생 때에 준비 과정을 가진 뒤 첫영성체를 한다. 이어서 신비 교육도 경험한다. 한편, 견진성사의 시기는 매우 다양하여 서로 인접한 교구끼리도 다른 시기에 거행된다고 한다.

성찬례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관행들의 차이는 교의 체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목적 특성을 지닌다고 밝힌 사실을 바탕으로, 74) 관련된 이들은 이를 재검토하려는 의향을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현 상황을, 유지할 만한 풍요로움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동방 교회들의 그리스도교 입문 관행들이 지닌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보이므로 서로 다른 관행들을 재검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37. 이와 관련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요청되는 작업은 방대하다. 이는 단지 다양한 관행이 지나치게 분산되는 것을 막고자 이에 방향을 제시하는 일만이 아니다. 또한 좀더 깊은 의미에서, 성찬례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요청한 것을 실현하는 일과도 관련된다. 곧 “현재 그리스도교 입문 방법의 효율성을 점검함으로써, 신자들이 우리 공동체에서 받은 양성을 통하여 성숙해 가고 그들 삶이 참된 성찬의 모습을 지닐 수 있게 하고, 그리하여 그들 안에 지닌 희망의 이유를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1베드 3,15 참조).” 75) 성체성사에서 정점을 이루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의 연속성을 신학적 관점에서 더 잘 이해하고, 그 깊어진 이해를 사목적 실천으로 옮기는 모델들에 대하여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 선포의 필요성

138.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본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 안에서 더 선교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답변들은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다. 복음을 선포할 때, 우리 공동체들이 오늘날 사람들의 의문과 행복에 대한 갈망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그들의 관심을 모을 줄 알아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담론의 많은 형태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우리 기구들은 담대함을 가질 필요가 있고 ‘호교론적’ 태도도 지녀야 한다. 또한 자신의 신앙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형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는 분명히 절실한 사목 과제이다.

139. 바로 이러한 상황이 「의제 개요」에서 말한 첫 선포의 기회를 제공한다. 첫 선포는 우리 신앙의 근본 내용에 대한 분명한 제안의 수단, 곧 선포의 수단으로 이해된다. 복음의 첫 선포는 우선적으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그리고 실제로 종교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다. 이러한 선포는 회개를 요청하며, 신앙 선포와 신앙 입문의 또 다른 형식들에 통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형식들은 이미 지닌 신앙을 이끌고 성숙시키지만, 첫 선포는 회개가 바로 그 목적이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140. 선포의 여러 형식들을 구분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며, 또한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낼 필요도 없다. 이는 하나의 같은 사목 활동이 기울이는 이중의 관심과 관련된다. 첫 선포의 수단은,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신앙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이도록 이끈다. 첫 선포의 과제는 공동체와 세례 받은 이들이 계속해서 충실하게 그들이 고백하는 신앙을 선포하고 공공연히 증언하도록 그들의 신앙을 되살리거나 북돋우는 것이다.

141. 그러므로 첫 선포에는, 그리스도 신앙을 사회 안에서 선포하도록 해 주는 형식과 장소, 계획, 행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 대해 답변들은 첫 선포의 일반적인 형식들이 부족하지 않다고 응답하였다. 많은 주교회의에서 전국적 차원의 교회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청년 대회 같은 국제 행사들이 전 세계 차원에서 첫 선포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교황님의 사도 순방과 개별 교회의 아들딸에 대한 시복 시성 또한 같은 관점으로 이해되었다.

142. 반대로, 많은 답변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웃에게 그리고 일터에서 이루어지는 첫 선포가 부족함을 우려하였다. 이를 위하여 이 시급한 선교 활동에 대한 본당 공동체들의 인식을 높이고자 더욱 노력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답변들에 기초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더 깊은 숙고와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답변들은 첫 선포가 이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상생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목 활동들에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활동들에는 강론과 설교, 고해성사, 대중 신심이 있다.

143. 설교와 관련하여, 주일 강론과 다른 특별한 경우의 설교들(대중 선교, 9일 기도, 그리고 장례, 세례, 혼인, 축일 때의 강론)이 첫 선포를 위한 매우 탁월한 도구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에서 요청하였듯이, 강론을 정성들여 준비해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 그 강론이 반드시 지녀야 하는 그리스도론적 특성, 회중이 귀 기울이고 회개하도록 이끄는 언어의 사용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76)
 

144. 고해성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모습을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데에 그 본연의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참회하는 개인과 이 성사를 거행하는 공동체 모두의 회개와 성장이 이루어진다. 이 성사가 죄의 의미를 깨우쳐 주면서 복음화를 증진하려면,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예식 규정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고해성사 예식은 성경의 한 구절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에 비추어, 자신의 양심을 성찰하고, 자신이 하느님의 뜻과 복음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식별할 수 있다. 77) 이렇게 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잘 알려진 여정이 되풀이될 것이다. 곧, 말씀 선포에서 출발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로 이끄는 여정이다(사도 2,14-47 참조).

145. 마지막으로, 거룩한 장소들, 순례지들에서 참회와 영성의 여정을 걸으며 특히 성모님을 비롯하여 성인들을 공경하는 대중 신심은 첫 선포를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길로 더욱 드러나고 있다. 순례와 신심 행사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며 곧바로 중대한 실존적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러한 물음에 삶의 회개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함께하는 신앙 체험은 세상과 삶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다. 이러한 회개의 자리에 그리스도인 기도의 풍요로움이 잘 간직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복음화에 맡겨진 과제이다.

특히, 마리아 공경을 위하여 새로운 복음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 “거룩한 공의회는 이러한 가톨릭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치며, 동시에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공경, 특히 전례적 공경을 적극 촉진하고, 여러 세기의 흐름에서 교도권이 권장하여 온 성모 신심의 실천과 관습을 중시하며, 지나간 시대에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성상 공경에 관하여 결정한 것들을 경건하게 지키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에게 권고한다. …… 진정한 신심은 쓸모없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허황한 맹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신자들은 명심하여야 한다. 참된 신앙으로 우리는 천주 성모의 탁월함을 인정할 수 있고, 또 우리 어머니에 대한 자녀다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덕행을 본받을 수 있다.” 78)


146. 답변들에서는 복음의 첫 선포의 수단으로 세계주교대의원회에서 논의할 만한 다른 관행들에 대해서도 열거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대중 선교를 언급한다. 이는 과거에는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일깨우는 방식으로 본당에서 정기적으로 조직되곤 하였다. 많은 답변들은 그와 같은 수단을 오늘날 시대에 맞게 되살릴 것을 요구하였다. 현재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안에 널리 퍼져 있는 관행인,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선포하는 공동체의 관행 안에 대중 선교를 통합시키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혼인성사를 준비하는 모든 사목 활동도 첫 선포의 매우 탁월한 기회로 여겨진다. 이 사목 활동들은 그저 이 특별한 성사를 준비하는 것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점점 더 그리스도교 신앙을 되살리고 성장시키는 참되고 적절한 여정이 되고 있다. 끝으로 답변들은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관심과 돌봄을 첫 선포의 활동에 포함시키도록 요구한다.

신앙 전수, 인간 교육

147. 「의제 개요」는 신앙 입문과 교육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언급하였다. 복음화는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하는 교육과 별개로 이루어질 수 없다. 곧, 복음화는 교육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밝혔듯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인간의 신비가 그 참 빛을 찾는다. 79) 이와 관련하여 교회는 전통적인 교육 자원, 곧 성찰과 연구, 기관, 사람들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봉헌된 이든 아니든 여러 다른 수도회나 단체에 소속된 이들이며, 학계와 교육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148. 각 나라의 사회와 지리와 가톨릭 역사에서 비롯되는 커다란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교회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지금도 교육 분야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각 개별 교회에는 가톨릭 학교들과 대학교들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답변들은 그동안 추진된 교육 사업들과 많은 지역들에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는 그 성과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 이루어진 과거와 현재의 발전은 교회가 교육에 쏟은 노력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149. 오늘날 이러한 교육 임무는, 모든 종류의 교육 활동이 점점 더 어렵고 불확실해 보이는 문화적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를 두고 “교육의 위기” 80) 라고 지적하셨다. 이 표현에서 교황님은 미래 세대에 올바른 삶과 행동의 기본 가치들을 전수해 주어야 하는 특별한 긴급성을 드러내셨다. 여러 곳에서 참 교육과 참 교육자들에 대한 요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부모들, 안타깝게도 악화된 학교 상황을 경험하는 교사들, 함께 사는 삶의 기초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는 사회가 모두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다.

150. 이러한 맥락에서, 신앙 교육을 하고 복음을 따르고 증언하도록 가르치는 교회의 노력은, 사회가 교육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기여하는 가치도 지닌다.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답변들은 교회는 줄 것이 많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교회가 인간과 인간 교육을 우선시하고, 진리에 열린 참 교육을 제공하려는 의지에 따라, 세상 안에서 펼쳐 온 교육 이념이 있다. 이는 하느님과의 만남과 신앙 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51. 더 나아가 몇몇 답변들에서는 교회의 교육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교회는 오늘날 교육을 둘러싼 도전들의 근본 문제를 밝혀내고 거기에 대처하는 인간학적 형이상학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교육의 위기’의 근원은 실제로 개인주의의 특성을 지닌 인간학과 이중적 상대주의의 영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현실을 순전히 조작 가능한 물질로 축소시켜 버리고, 그리스도 계시를 초자연적 특성이 전혀 없는 단순한 역사적 과정으로 환원시켜 버린다.

152.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이 근원들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신다. “제 생각에 하나의 중요한 근원은 인간 자유에 대한 그릇된 개념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외부의 강제 없이 자기 혼자 힘으로만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성장을 도울 수는 있어도 이 성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교육 위기의 또 다른 근원은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곧 더 간단명료하게 말해서, 인간 여정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다음의 두 가지 원천을 배제한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천은 인간 본성이고 두 번째 원천은 계시일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창조하신 인간 본성의 참된 개념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창조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참된 가치들을 보여 주십니다. 이렇게 하여 계시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방향을 알려 주시는 창조의 이야기가 계시로 해석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81)
 

신앙과 지식

153. 신앙과 교육 사이의 관계는 신앙과 지식 사이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의제 개요」에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사용하신 “인간 생태학”82) 이라는 표현을 들어 이 관계를 설명하였다. 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기의 결과들을 지적하시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그와 같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올바른 인간 생태학의 발전에서 찾으셨다. 올바른 인간 생태학이란 세상을 이해하고 학문의 발전을 이룩하는 방식이다. 진리에 대한 개방성과 하느님과의 근원적 관계를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요구를 고려하는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54. 그리스도 신앙은 지성이 존재와 그 역사를 지탱하는 심오한 균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신앙의 작용은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성과 마찬가지로 지식과 탐구를 갈망하며, 이성이 인간과 세상의 선익을 향하도록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근본적인 인간 경험의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게 해 준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오래 전부터 추진해 온 임무, 곧 비판적으로 숙고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임무이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답변들은, 몇몇 사람들의 직관과 카리스마의 열매이자 개별 교회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의 열매로서, 기관들, 연구소들, 대학들을 열거하고 있다. 개별 교회들은 이러한 비판적인 성찰을 자신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아 왔다.

155. 그러나 일부 답변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곧 다양한 문화 안에서 연구와 지식 발전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이성은 연구 분야, 특히 과학 기술과 경제 분야에서 오늘날 힘과 권위를 지닌 대화 상대를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은 교회에는 도전이고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영역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156. 교회 전통의 연속성 안에서, 또한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신앙과 이성」과 뜻을 같이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신앙과 이성의 상호보완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신앙은 이성의 지평을 넓히고, 이성은 신앙이 무분별하게 표류하거나 종교를 악용할 위험으로부터 신앙을 지켜 준다. 교회의 많은 대학들과 고등 교육 기관들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교회는 교육의 지적 차원에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면서, 여러 학자들과 대화를 증진하고자 대학교 사목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분야에서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특별한 임무를 맡고 있다. 곧, 그들의 활동과 특히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이성과 신앙이 하느님께 이끄는 두 날개임을 증언하여야 한다. 83) 또한 그리스도 신앙과 학문은, 올바르게 이해되기만 한다면, 서로를 풍요롭게 하여 인류의 선익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증언하여야 한다. 학문적 진보를 결정짓는 유일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학문적 기술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주체이어야 한다.

157. 신앙과 지식의 관계에 관한 이 장에서는, 여러 답변들이 신앙 전수를 위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한 예술과 아름다움의 주제도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호소를 뒷받침해 주는 이유들은, 동방 가톨릭 교회들처럼 굳건한 전통을 지닌 교회들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교회들은 신앙과 아름다움의 매우 긴밀한 관계를 지켜 왔다. 이러한 전통에서 신앙과 아름다움(美)의 관계는 단순히 미학적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신앙을 증언하기 위한, 그리고 참으로 인간 존재 전체에 ‘온전한’ 도움이 되는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이해된다.

아름다움에서 얻은 이러한 앎은, 전례 안에서처럼, 가시적인 모습을 취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본연의 역할은, 인간이 하느님께 부름 받은 보편적 친교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지식은 새롭게 하느님의 지혜에 결합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지혜는 피조물을 바라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시각으로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피조물 안에 깃들어 있다.

아름다움이 지닌 이 본연의 역할을 그리스도교 안에서 지켜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교회는 안다. 그리스도인에게 아름다움은 파스카 신비 안에, 그리스도의 빛나는 모습 안에 있다.

모든 복음화 사목의 기초

158. 「의제 개요」는 사목 활동에 대한 분석을 다룬 이 장을 바오로 6세의 깊은 통찰과 더불어 마무리하였다. 곧, 복음화를 위하여 교회는 자신의 사목 방안을 쇄신할 뿐 아니라 증언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화는 조직이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영적인 문제이다.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행동과 삶을 통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주 예수님에 대한 충실성을 삶으로 증언함으로써, 또한 청빈과 무욕, 현세 권력에 맞서 자유를 증언하고, 한마디로 성덕을 증언함으로써 세상을 복음화할 수 있습니다.” 84) 많은 개별 교회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본분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삶과 모범으로 복음화할 줄 아는 증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별 교회들은 새로운 복음화의 핵심 요소가 궁극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화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나누었다. 자기 자신이 복음화되었고, 또 계속해서 복음화되고 있는 사람만이,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친교를 통하여 영적으로 쇄신되는 사람만이 복음화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야 한다. 85)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선포와 자유 사이에 관계를 맺어 주기에 모든 복음화 활동의 바탕이 된다. “우리 행동과 말과 존재 방식을 통하여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통교하실 때에 우리는 그 증인이 됩니다. 증언은 하느님 사랑의 진리가 역사 속에서 사람들에게 다가와 이 근본적인 새로움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도록 권유하는 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증언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 자유에 내어 맡기시는 위험을 무릅쓰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86)
 

성소의 중요성

159. 이러한 전망에서,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오늘날 교회에서 성소 문제의 중요성에 관한 주제를 분명하게 다루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선교 사명과 복음화 사명을 더 잘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복음화의 여러 분야에서 더 믿을 만한 증인들이 되려면, 그 시대의 언어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고, 이로써 그들에게 활기를 북돋우는 희망의 이유들을 교회 안에서부터 선포하여야 한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작업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과정이, 이미 신앙 선포와 전수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열정과 헌신을 새롭게 북돋우고 더욱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가정과 가정의 역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더욱 특별히,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사제 직무와 봉헌 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분명하고도 확실한 성소 사목의 임무를 다시금 북돋워 주어 새로운 사제 성소의 결실을 교회에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160. 이와 관련하여 많은 답변들에서 그리스도인 체험 약화의 가장 분명한 징표들 가운데 하나로 성소 감소를 꼽았다. 이는 사제 직무와 봉헌 생활로 성별되도록 부름 받은 이들이 감소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것과 관련된다. 또한 혼인과 같이 삶의 중대한 결정들에 대하여 불성실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답변들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새로운 복음화와 밀접히 관련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하여 위기를 확인하고 기존의 성소 사목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더욱 깊은 의미에서 삶 자체를 성소로 보는 문화를 증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61. 신앙 전수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르시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각하게 해 주는 교육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베네딕토 16세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점점 더 깊게 하라는 신앙의 내재적인 요청을 강조하면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또한 이 말씀이 우리 각자를 개인적으로 부르시면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삶 자체가 성소임을 보여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결정적인 선택들을 통하여 성덕에 이르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선택들로서 우리의 삶은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고,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과제와 직무를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세례 받은 이들로서 또한 다양한 생활 신분에 따라 살도록 부름 받은 이들로서 말씀과의 관계를 심화하도록 초대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87) 새로운 복음화의 효과를 나타내는 징표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 자체가 성소임을 재발견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따르는 개인 성소의 증가일 것이다.

결 론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을 것이다”(사도 1,8)

16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어 하느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 이 생명으로 이 세상의 모습이 변화되고,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묵시 21,5 참조). 그분의 계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선포자요 증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삶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하게 해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처럼 설교와 증언을 통하여 복음 말씀이 퍼져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사도 6,7 참조).

163. 역사적으로, 첫 번째 복음화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은 오순절에 시작되었다(사도 1,14; 2,1-3 참조). 대천사가 말한 대로 “은총이 가득하신”(루카 1,28) 마리아께서는 사도들의 복음화 여정에 함께하시고,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모든 여정에도 함께하신다.

164. 새로운 복음화는 “새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히브 13,8)이시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음화는 시대의 표징과 오늘날 모든 개인과 민족의 요구, 새로운 분야들에 적절하게 응답하는 것이다. 이 분야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를 보여 준다. 따라서 새로운 복음화는 복음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를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곧,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 안에 있는 “새 인간”(에페 4,24)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의 준비와 거행이 교회를 위하여 새로운 다락방이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새로운 복음화의 별” 88) 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와 함께 기도 안에서 하나 되어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165.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우리 안에 처음의 열정을 되살리고, 오순절에 뒤이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열정이 넘쳐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하고 외쳤던 바오로의 불타는 신념을 우리 안에 되살려야 합니다. 이러한 열정은 교회 안에 새로운 선교 의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선교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둘 수 없고,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선교의 책임이 있습니다.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그분을 자기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으며, 그분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새로운 사도적 활동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단체가 기울이는 매일의 노력으로 실천될 것입니다.” 89)
 

예수 그리스도,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쁜 소식

166. 오늘날 사람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원칙을 갈망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믿음이 넘치는 눈으로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교회로서 우리는 이러한 원칙, 희망의 원천을 지니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는 돌아가셨다 부활하시고 당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러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희망을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하거나’, 우리 자신과 우리 동시대 사람들을 위하여 그 희망을 생생한 말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이를 우리의 사목 활동과 교회 생활의 토대로 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사목 활동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우리에게는 분명한 과업이 있다. 곧, 새로운 복음화이다. 이는 우리에게 기쁨과 자유를 가져다주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새롭게 선포하는 것이다. 이 과업을 통하여 우리가 갈망하는 희망이 자라게 된다. 곧, 복음화의 타고난 사명을 지닌 교회가 성찰을 통하여 복음 선포를 위한 힘의 깊은 원천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1테살 2,2). 새로운 복음화는, 종종 논쟁과 투쟁의 형태를 띠면서까지 신앙을 증언하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새로운 복음화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해 준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만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고 진정하고 영원한 사랑을 보장받는다.

복음화하는 기쁨

167. 새로운 복음화는 구원을 갈망하는 이 세상에 희망의 말씀(Logos)을 전하면서 우리 신앙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희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하는 교회이며,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의 모습을 취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은 우리 모두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를 알든 모르든,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은 이 선포를 들어야 한다.

168.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외로움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상황들에서 비롯되어 우리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기쁨과 희망의 상실이 새로운 복음화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이다. 흔히 이러한 기쁨과 희망의 상실은 우리 그리스도 공동체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모든 두려움에 맞서 기쁨과 생명을 주는 치료약으로도 제시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상황들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우리 신앙을 북돋우라는 명령이 된다. “현재의 역사 안에서 이 시대의 표징을 바라보도록, 신앙은 세상에서 우리가 모두 부활하신 주님 현존의 살아있는 표징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특히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정신을 비추는 사람들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참 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에 마음과 정신을 열도록 할 수 있습니다.” 90)


169. 그러므로 새로운 복음화에 열정을 가지고 과감히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시편 126(125),6 참조) 위안을 주는 복음화의 감미로운 기쁨을 언제나 지녀야 한다. 삶의 의미와 진리에 대한 위대한 물음들에 답을 찾고 있는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들을 만나는 경이로운 기쁨을 새롭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복음의 증인들은 소박하고 신뢰할 만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 신앙의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복음화가 봉헌된 우리 삶의 큰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불안 속에서, 때로는 희망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현대 세계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낙심하고 낙담하며 성급하고 불안해 하는 선포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기쁨을 먼저 받아들여 열성으로 빛나는 삶을 살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세상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자 기꺼이 목숨마저 바치려는 복음의 봉사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91)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마태 14,27 참조)과 천사(마태 28,5 참조)의 이 말씀은 신앙을 선포하는 이들에게 힘과 열정을 주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탱해 준다. 이는 또한 복음 선포자들의 말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는 새로운 복음화의 말이다. 교회는 성령에 힘입어, 모든 이가 믿음을 가지도록,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하느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여야 한다.

<원문 Synodus Episcoporum, XIII Coetus Generalis Ordinarius: Instrumentum Laboris ― “Nova Evangelizatio ad Christianam Fidem Tradendam”, 2012.6.19., 독일어, 라틴어, 스페인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