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사제되게 하소서!
오소서 성령님,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부님들,
예수님께서 사제직을 설정하신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가르침의 종합이 있는 거룩한 날들인, 성삼일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시기 전에 당신께서 지상에서 하시던 구원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사제직을 설정하셨습니다. 사제직무를 통하여 베드로 위에 세우신 지상 교회에 봉사하도록 사제로 부르셨습니다. 성 목요일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대답하고, 사제로 서품된 우리 모든 사제들의 생일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제로 불러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신부님들께서는 그 동안 우리 대전 교구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착한 목자로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공경하옵는 경 요셉 주교님과 유학, 교포 사목, 선교, 업무, 병환 등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신부님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특별히 영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신부님들을 기억하면서 좋으신 하늘 아버지께서 위로, 희망, 지혜, 힘을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우리 교구에서 봉직하시다가 하늘 아버지 집으로 먼저 가신 신부님들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부님들,
성목요일을 준비하면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하나?” 하고 기도하면서 복음서를 뒤적였습니다. 요한복음의 “나는 참포도나무다.”(15,1-17)에서 멈춰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읽고 묵상할수록 새로운 기쁨과 함께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5절)는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가지에 붙어있을 때에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0-12절)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에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쁨에 머무르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만 합니다. 만나는 이웃을 사랑하여, 서로간의 사랑의 단계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15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른다는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사제직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내면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진다 해서 성사의 유효성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벗이 될 때에만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 사제가 된다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고 단순한 종의 무지함에서 벗어납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고 고통 받고 행동하는 것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제나 그분 제자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이며 몸이신 그리스도 전체와 친교를 이룰 때에만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교회의 활기찬 포도나무 안에서만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1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한 우리들을 뽑으시어 사제직이라는 엄청남 보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지에 붙어있으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다 하십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자주 ‘산으로’ 올라가시어 밤을 새워 홀로 기도하셨다고 전해 줍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산’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올라야 하는 내면의 봉우리, 기도의 산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만 우정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사제직무를 수행할 수 있고,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행동주의 자체는 영웅적일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와 이루는 깊은 내적 친교에서 비롯되지 않은 외적 행동은 결국에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아무 효과도 거둘 수 없습니다. 이 내적 친교를 위하여 들이는 시간은 참으로 사목 활동을 하는 시간, 진정한 사목 활동의 시간입니다. 사제는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광적인 행동주의에 빠진 세상은 흔히 그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메마른 땅을 적셔 주는 생명수가 솟아나게 하는 기도의 힘이 결핍되어 있을 때 세상의 행동과 능력은 파괴적인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신부님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주제로 개최하였던 제 12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을 발표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86항은 “사제와 성경”에 대하여 「현대의 사제 양성」 26항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말씀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 축성되고 파견된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신앙을 따를 수 있도록 불러 모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내어주신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서 더욱더 알고, 하느님의 신비 속에서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제는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아주 가까이해야 합니다. 언어학적으로 주석학적인 측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아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제는 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세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사제의 생각과 감정 속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사제 안에서 새로운 시각 즉, ‘주님의 생각’(1코린 2,16)이 싹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제의 말과 선택과 태도를 통하여 복음이 그대로 반영되고 선포되고 증거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제가 말씀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사제는 주님의 완벽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만이 진리를 구별할 줄 알게 되고 진실로 자유롭게 될 것이며 복음과 반대되는 또는 복음과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요한 8,31-32 참조). 사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하는 말들이 ‘사제 자신의 말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사제는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말씀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사제만이 말씀을 소유한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 백성과 견주어볼 때 빚을 지고 있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부족한 우리 주교들과 우리 신부님들에게 변함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 협력,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본당에 들렸다가 신부님이 계시지 않으면 성당이 비어있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제 없는 본당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구에 상대적으로 많은 신부님들이 계시고, 신학교를 통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사제직을 지망하고 있기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형제 자매님들께서 우리 신부님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신부님들의 사목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오늘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가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돈 중심, 자기중심이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 평화,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복음 말씀을 구체적인 생활에서 살아야 합니다. 삶의 원칙이 복음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논리대로 사는 삶은 우리를 성덕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삶을 살도록 만듭니다. 신앙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처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늘 아버지를 많이 닮는 자녀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또한 그런 은총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고맙습니다.
2011년 4월 21일 성유축성미사 중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 흥 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