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2837
- 글쓴이 : 정윤식
- 작성일 : 2006/08/03
- 조회수 : 5,625
2006년 성모승천메시지
‘순교자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기리며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늘에 들어 올림 받으심을 기념하는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이 믿음은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교의에 근거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어머니 안나의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전혀 죄에 물들지 않았으므로, 죄의 결과인 죽음의 세계에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초기교회부터 전승으로 내려왔던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1854년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고, ‘성모승천’에 대한 교리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공식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성모승천’에 대한 교의가 선포된 시기에 유럽은 이미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아픔을 겪었습니다. 사람이 대량으로 학살되었고,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의 힘과 파괴력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모두 실감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서로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은 600만이 넘는 유다인을 학살하는데 참여하거나, 방조 내지는 침묵하였습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은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의 존엄성을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인류에게 더 이상 희망과 미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의 폐허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삶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을 공포하였습니다. 곧 성모승천의 의미는 우리에게, 인간은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과 그분께 다시 돌아갈 존재임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2. 또한 오늘은 일제의 억압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을 맞이한 날입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 이전에, 많은 한국인들이 징병 혹은 징용으로 타향에 끌려가 죽었음을 기억합니다. 일본 특수부대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어간 남성들과 정신대의 비극을 겪은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수백만의 생명이 무참하게 죽었으며, 아직도 전쟁의 상처와 이산의 아픔은 우리를 괴롭히고, 세대와 지역을 가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념과 체제는 달라도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웃을 모른 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사건과 이산가족 상봉의 중단은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합니다. 오늘 광복절은 여전히 미완성의 축제로 머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인간생명을 경시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현상은 형태만 달리할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편리와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경향도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암울한 시기에 한국교회는 세상에 어떤 선포를 해야 할까요?
3. 성모 마리아와 이 땅의 순교자들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루카 복음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성모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부른 찬미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이 구절은 권력, 무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 힘을 쓰는 이 세상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들어 높이시는 분임을 알려줍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신앙을 지니고 평생을 사신 분이 성모 마리아 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우리와 함께 사실 수 있도록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1코린 10,31) 사신 순교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순교자들의 모후’라 고백합니다.
또한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순교하신지 160주년이 되고, 한국 천주교 최대의 박해로 대략 만여 명의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 1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병인박해에서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 24분만이 성인품에 올라있고 대부분은 무명 순교자로 남아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분들 모두를 이미 성인으로 받아주셨겠지만, 우리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시성되지 못한 분들과 사적지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이분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당연한 몫입니다. 그 일환으로 오는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에 솔뫼성지에서 우리 교구 ‘순교자 현양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순교자들의 후예답게 살지 못하고,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와 자료를 제대로 보관하고 발굴하지 못한 우리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순교자분들이 함께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 순교자 현양대회를 위해 소중히 모셔진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교구의 모든 본당과 공동체를 순회하게 될 것입니다. 정성과 기도로 맞아주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는 은총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4. 인간은 하느님께 돌아갈 존재이므로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를 때 참된 행복과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성모승천의 의미를 떠올려 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만을 위해 사신 ‘무혈의 순교자’이셨습니다. 이런 성모 마리아를 본받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유혈의 순교자’이셨습니다. 그들은 병인박해에 순교하신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 말씀처럼 “예수님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임”을 알았기에 목숨까지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순교자를 모신 복된 신앙의 후손들 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곳입니다. 비록 지금은 피를 흘려 순교할 상황이 아니지만 순교자들과 같은 신앙으로 이 땅을 새롭게 복음화 할 사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에 관한 서적을 읽고 성지순례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처럼 일상에서 하느님을 제일 윗자리에 모시고,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위해 깨어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며, 순교자 현양대회를 준비해 가는 가운데 하느님께 나아가는 작은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이 되는 은총을 청합시다.
예수님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2006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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