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6297
  • 글쓴이 : 양희선
  • 작성일 : 2019/09/26
  • 조회수 : 3,258

[노은동 성당] 프라도사제회 첫서원미사

9월 23일(월) 노은동성당(주임 : 이의철 가밀로)에서 교구장 주교님 주례로 프라도사제회 첫서원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이날 노은동 보좌신부님인 최승범 베드로 신부님과 여러 신부님들이 서약을 했습니다.

 

다음 글은 노은동 신자가 쓴 글입니다. 

-------------------------------------------------------------------------------------------------------

프라도 사제회, 그리고 첫 서원.


1856년 리옹 성탄 밤 구유 앞에서 묵상하던 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결과로 공업화가 한창이었고 그 중심에 리옹이 있었습니다. 농촌을 떠난 많은 농민들이 리옹의 변두리에 와서 공장에서 비참한 조건으로 일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일미사참여 조차 사치로 여기는 열악한 조건에서 자녀들까지 방치해야만 하는 생활을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그들의 삶을 가슴아파하던 그 신부님은 함께 가난해지고 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첫영성체 교리를 열심히 가르치시던 그 신부님은 안타깝게도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장소마저 마땅치 안았고, 그래서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길 건너에 보이는 그 당시 젊은이들이 수없이 드나들던 클럽, ‘암소들의 댄스홀’과 같은 2층짜리 건물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그 댄스홀 앞을 지날 때마다 주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느님, 제게 이 집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당신께 영혼들을 드리겠습니다.”

간절한 그의 기도가 하느님께 닿기라도 한 걸까? 한 조력자가 그 댄스홀을 봉헌했습니다.

이후 신부님은 그 집을 ‘프라도(prado:스페인어로 ’풀밭‘)의 집’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었습니다. 그 신부님의 이름은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입니다.

그리고 그 집을 시작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화를 실천하는 ‘프라도 사제회’가 탄생했습니다. 물론 그 댄스홀은 프라도 사제회의 총 본부가 되었지요.

 

프라도 사제회는 ‘수도회’로 오해하기 쉽지만, 1860년에 교황창립 재속 사제회로 교구 사제들의 공동체이며,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라는 믿음아래 ‘구유’에 계시는 그분처럼 가난하고 ‘십자가’에 달린 그분처럼 못박히며 ‘감실’에 계신 그분처럼 먹히는 사제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3일 ‘가난한 사제단’으로 불리는 프라도 사제회에 최승범 베드로 신부님이 첫 서원을 했습니다. 용모 수려하고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젊은 우리 최 베드로 보좌신부님의 첫 서원이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움에 절로 고개 숙여 기도합니다.

 

베드로 신부님, ‘세상살이’가 주는 가벼운 푸념은 떨쳐버리고, 기꺼이 살아가게 하는 주님의 사제로서 그 의무가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늘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