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3832
  • 글쓴이 : 김동수
  • 작성일 : 2017/12/22
  • 조회수 : 3,439

[신합덕성당] 황무실성지 매스트르신부님 선종160주기 추모

신합덕본당(주임 김문수 야고보)에서는 12월20일(수) 황무실에서 사목을 하시다가 1857년 12월20일 선종하신 매스트르 신부님 160주기를 맞이하여 추모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10시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황무실성지로 이동하여 신부님께서 묻였던 장소를 돌아보고 기도하며 어려운 여건속에서 사목활동을 하시다가 피로가 누적되어 병고로 돌아가신 매스트르 신부님을 기억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 매스트르(Maistre 이요셉) 신부님

1. 생애(1808출생, 1857선종)

-1808년 프랑스 출생으로 1832년 사제로 서품되었고 1839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0. 1. 15. 베르뇌 신부와 함께 마카오에 도착, 유학하러 온 조선 및 중국신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2. 입국시도

1차(1842.2.15.) 조선선교사로 임명받아 프랑스 함대 에리곤호 승선하여 오송에 도착. 원정 연기로 입국취소

2차(1842.10) 김대건 신부와 합류하여 요동 태장하 해안에 도착. 입국불가로 1844.1 소팔가자로 귀환

3차(1846.1말) 최양업과 함께 훈춘을 거쳐 함경도 국경으로 입국시도. 만주관헌에 체포된후 석방. 소팔가자 귀환

4차(1846.12말) 변문입국시도중 김대건 신부 순교소식 접함. 입국포기후 홍콩에서 입국기회를 기다림

5차(1847.7) 최양업 부제와 함께 라피에르 함장의 군함으로 고군산도에서 입국시도중 난파. 상해로 귀환.

6차(1849년초) 중국배로 백령도를 통해 입국시도 실패

7차(1849.12.3.) 11월 요동으로 이동하여 조선입국시도. 최양업 신부만 입국.

8차(1851년초) 조선에서 교우들을 파견하여 메스트르 신부의 입국을 도왔으나 이 역시 실패

9차(1852.7) 1847년에 난파한 프랑스 군함의 잔해철거 구실로 예수회 엘로 신부의 도움을 받아 서해안에 상륙.

3. 활동

1853.2.3.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선종후 임시 조선 포교지의 장상직 수행. 중국에 있을 때 부주교로 임명됨.

1855 제천 배론에 신학교 설립

1856.3 4대 베르뇌 조선대목구장 임명으로 메스트르 신부는 충청도 지역으로 전임되어 전교활동을 펼침

1857.12.20. 계속되는 성사집행과 전교활동으로 인한 과로로 쓰러져 회복하지 못한채 충남 덕산의 황무실에서

선종하였다. 그 후 유해는 1863.9 황무실에서 선종한 랑드르(홍) 신부의 묘와 함께 구합덕본당 경내로 이장.

현재는 대전신학교 성직자묘지에 이장되었다.

4. 업적

-성영회(聖嬰會) 창설로 전교하는 가운데 죽음의 위험에 있는 고아들에 대한 구제사업으로 한국최초의 고아보호 운동이었다. 당시 박해시기의 사업전개는 큰 어려움이었다. 죽어가는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어 영혼을 구제하고 독실한 여교우에게 맡겨 돌보게 하였다. 자라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직업 알선까지 도모하였다. 이에 대한 감화로 입교자가 증가하였고 메스트르 신부의 선종 이후에도 고아 구제사업은 계속되어 고아원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