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2952
  • 글쓴이 : 김석준
  • 작성일 : 201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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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순교성지 순교자 현양 문화행사"

“해미 순교성지 순교자 현양 문화행사"

해미순교성지(주임 백성수 신부)는 “순교의 향기가 피어나는 가을”이라는 주제로 10월 1일(금)부터 3일(일)까지 덕산면 대치리 한티고개 유적지와 해미읍성의 호야나무(감옥터)인근과 생매장순교성지(여숫골)일원에서 순교자 현양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해미에서 이름이 밝혀진 132명의 순교자들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들의 높은 신앙을 기리기 위해 사진전, 초·중·고생 초청 백일장 및 사생대회, 바울 풍물팀의 난타공연, 생활성가 단체인 The With의 공연 등의 문화 행사와 도보순례를 계획하게 되었으며.

 둘째 날인 2일(토)에는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십자가를 선두로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 중 시복대상자 132명의 만장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신리와 면천고을 농바위 출신 무명 순교자의 만장 등 800여명의 도보순례 순례자 중에 선발된 142명이 각각 포교와 포졸, 나장, 조선시대 평민복 등을 입고 덕산면 대치리 한티고개 유적지부터 해미읍성 호야나무(감옥터)거쳐 생매장순교성지인 해미성지까지 약 11Km를 순례했고. 오후에는 1100여명의 신자들과  당진 지구장( 이원순 신부)과 오기환신부가  함께하고 서산 지구장 배승록(F.하비에르)신부의 주례로 빗줄기가 굵어지는 가운데 미사를 봉헌 했다

 서산 지구장겸 서산 동문동 본당주임 배승록 신부는 순교자 현양미사 강론에서

“우리가 오늘 걸어온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기도 했지만,

순교자들이 걸어온 이 길은 다시는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죽음의길, 볼 수 없고 만질수 없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지 못한 순교자들에게는 이 생애에서의 마지막길, 죽음의길 이었다며 이땅의 무명 순교자들은 하느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모욕을 당하신분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못하신 분들,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가족과 명예와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바보 같은 분들이었다,며

1785년부터 백년 가까운 시간동안 10번에 걸친 크고 작은 박해를 당하며 한국 천주교회는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순교자들을 낳게 되었다. 며 19세기 한반도 땅에 뿌려진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씨앗이 더많이 더 멀리 뿌려졌고, 너무 많은 분들이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고 했다
 

 

해미성지는 조선시대 서해안 지역 방위사령부로서 성을 쌓고 국토방위를 담당했던 군사요충지였고 1651년 호서좌영이 설치되 현감이 종3품 토호부사를 겸임해 지역방위와 국사범을 처형할 수 있게 되어 1790년대부터 충청도 서북부지역에 거주하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다 처형한곳으로 특히 덕산면 대치리 한티고개를 통하여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와 처형을 당한 곳으로 교회에서는 이곳을 유적지로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