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이야기해도 감사드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전교구 원로사제인 유봉운(88) 신부의 사제서품 60주년 회경축을 맞아 5월 27일 10시30분 노은동성당(주임=이정업 신부)에서 유 신부의 회경축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제수품 60주년을 맞는 유봉운 야고보 신부에게 진심어린 사도적 강복을 보내며 주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님과 총대리 김종수 주교님을 비롯해 광주대교구의 윤공희 대주교님과 최창무 대주교님, 대전교구 경갑룡 주교님, 제주교구 김창렬 주교님,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한 이날 행사는 교황강복장 전달식과 축사, 답사, 축하연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참석자들은 한평생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제직에 헌신한 노사제의 노고에 감사하고 영육간의 건강을 기원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님은 축사를 통해 신부님의 사제수품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유신부님께서는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우리 대전교구 최고의 원로사제이시고 교구사제로서는 처음으로 사제서품 60주년을 맞이했으며 대전교구의 살아있는 증인이시다."라며, “신부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든든하고 힘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더욱이 유 주교님은 흐르는 눈물을 삼키시면서 축사를 전했고,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윤공희(前광주교구장) 대주교님은 축하인사를 통해 “유 신부님은 사제로서 늘 재치있고 유머가 많아 늘 명랑하게 사목하셨다.”라며 “사제의 해를 맞아 지내는 회경축 미사는 사제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있고 더욱더 건강하셔서 목자로서 삶을 나누시길 바란다”고 인사하셨다.
교구 사제단의 원로사목자이며, 유 신부가 신학교를 추천한 윤영균 신부는 축사에서 “그동안 사제로서 60년의 세월 안에 희노애락이 없었겠는가? 애끊는 삶속에서 남몰래 주님께 외치며 만사를 주님께 맡기셨기에 오늘 우리 교구가 이처럼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며, “신부님의 회경축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축하드린다.”고 전했다.
유봉운 신부는 답사를 통해 “사람은 말로 다스리고 하느님은 침묵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과 무한한 은총 안에서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흠숭과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면서 “참석해주신 한 분 한 분의 주교님과 사제단을 비롯해 수도자, 신자들의 정성어린 기도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이 가능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유봉운 야고보 신부는 1922년생으로 아버지 고 유요서와 어머니 고 김경례 사이에 태어났다. 1938년부터 동성 상업고등학교와 가톨릭대학 예과, 신학부, 연구원 등을 거치며 1950년 4월 1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고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님으로 부터 부제품을 받았고, 이어 한국전쟁 발발로 대구로 피난 후 1950년 10월 28일 대구 계산동 성당에서 당시 대구교구장인 고 최덕홍 요한 주교님에게 사제서품을 받고 사제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1950년 11월부터 서천·당진성당을 시작으로 육군 제2 훈련소 미군사 고문 등을 거쳤으며, 대전교구 관리국장과 대전성모병원장을 거쳐 1993년 1월 10일 조치원성당을 마지막으로 교구 원로사목자의 길을 가게된다.
유봉운 신부 약력
1950년 4월 15일 부제품
1950년 10월 28일 사제서품
1950. 11. 03 - 1951. 11. 16 서산 및 당진천주교회 주임신부
1951. 11. 17 - 1952. 03. 31 논산 천주교회 보좌신부
1952. 04. 01 - 1952. 09. 06 육군 제2훈련소 미군사 고문 군종
1952. 09. 07 - 1953. 09. 07 대흥동 천주교회 보좌신부
1953. 09. 08 - 1958. 04. 07 장항 및 대천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8. 04. 08 - 1960. 03. 09 부산교구 부산진, 김해, 양산, 구포본당 겸임
1960. 03. 10 - 1960. 05. 10 성환 천주교회 주임신부
1960. 05. 11 - 1965. 01. 07 미 제71병기단 군종
1964. 12. 20 - 1965. 05. 30 한국 군종신부단 부단장
1965. 05. 31 - 1969. 04. 09 대전교구 관리국장
1969. 04. 10 - 1970. 02. 16 천안 천주교회 주임신부
1970. 02. 17 - 1971. 10. 30 대전교구 관리국장 겸 대전성모병원장
1971. 10. 31 - 1972. 12. 06 예산 천주교회 주임신부
1972. 12. 07 - 1977. 02. 06 부여 천주교회 주임신부
1977. 02. 07 - 1982. 09. 16 괴정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82. 09. 17 - 1985. 03. 03 온양 천주교회 주임신부
1985. 03. 04 - 1992. 03. 05 대전 성모병원 병원장
1992. 03. 06 - 1992. 12. 29 조치원 천주교회 주임신부
1993. 01. 10 은퇴미사(조치원 천주교회)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님의 축하전문
"착한 목자의 삶으로 일생을! 사제수품 60주년을 축하드리며..."
공경하옵는 유봉운 야고보 신부님의 사제수품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유 신부님께서는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우리 대전교구의 최고의 원로사제이십니다. 제 기억으로는 대전교구 사제들 중에서 처음으로 사제수품 60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대전교구의 살아있는 증인이십니다.
신부님께서는 1922년 일제 치하에서 공주 사랑골의 순교자 가문에서 출생하셔서 어린시절을 일본사람들 밑에서 보내셨습니다. 일제말기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사제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일본 식민지, 조국의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 전쟁을 겪으시는 우리민족의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함께 하셨습니다. 신학생으로 해방의 기쁨과 1948년 대전교구 설정을 지켜보셨으며, 6,25의 동족끼리 싸우는 아픔 중에 서품을 받으시는 등 우리민족의 아픔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지난 1993년에 은퇴하실 때까지 43년 동안 착한목자로 대전교구의 다양한 임지에서 교회의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착한 목자로 봉사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유봉운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아주 미남이시고, 유머가 많으신 매우 멋진 신부님이십니다. 언제나 옆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듣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정말 주위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우리 대전교구 302명의 사제들 중에서 최고의 원로이십니다.
부족한 제가 주교 임명을 받은 그 다음 날에 경 주교님께 인사를 드린 후에 대전교구의 최고의 원로사제이신 신부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신부님을 찾아뵈었을 때에 저를 보시자마자 제 손을 꼭 잡으셨고, 매우 반가운 일이라고 기뻐하시면서 막 주교로 임명받은 저에게 최고의 사랑과 존경을 표하셨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에게, 우리 대전교구에 경사가 났고, 우리교구 사제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도와드릴 것이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저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깍듯한 사랑으로 대해주셨고, 늘 앞으로 나아가라고 용기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신 모습을 뵙다가 지난 성 목요일에 찾아뵈었을 때는 힘이 없어서 쉽게 피곤해 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교구의 원로 사목자로 저희 후배 사제들을 지켜주시고, 용기주시고, 따뜻하게 품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부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든든하고 힘을 받습니다. 신부님, 대전교구에서 봉사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dpn뉴스 양상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