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29742
  • 글쓴이 : 김석준
  • 작성일 : 2009/11/05
  • 조회수 : 3,920

“순교자 박마르코 박마지아 유해 봉송 및 이장”- 신평본당

대전교구 신평성당 “순교자 박 마르코 박 마지아 유해 봉송 및 이장”

2009년 11월 3일(화) 오전 10시 30분 신평성당(주임 정필국 신부)에서는 한정리(원머리)에서 1989년 4월 신평성당 경내로 이장되어 성당에 모셔져 있던 2기의 순교자 묘를 다시 한정리(원머리) 묘역으로 이장하는 ‘순교자 박 마르코 박 마지아 유해 봉송 및 이장식’을 거행됐다.

정필국 신부는 묘역 이장식 인사말에서 “순교자 유해를 본래의 자리로 이장 하는 것은 원머리의 성지개발의 첫 걸음이다”라며 “피 흘려 하느님을 증거했던 순교자들을 빼놓고 오늘을 말할 수 없고 순교자의 후손으로써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후손된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자” 고 말했다.

이날 당진지구장 이원순 신부, 교구 사무처장 곽명호 신부, 전 솔뫼성지 관장 윤인규 신부, 대전성모병원장 박재만 신부, 솔뫼성지 관장 이용호 신부, 내포교회사 연구소장 김정환 신부 등과 신자 300여명이 함께 한 가운데 가마를 이용해 신평 성당부터 한정리(원머리) 구 묘역까지 봉송 후 두분 순교자의 유해를 안장했으며 순교자 후손인 박종훈 안토니오(대전 성모병원 원목차장) 신부도 봉송에 참여했다

원머리(현 신평면 한정리)에는 1850년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그곳에서 출생한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 와 박태진 마지아는 4촌 형제간이었다. 박 마르코는 모친의 뜻에 따라 착실히 수계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68년(무진년) 포교에게 체포되어 수원 감옥에 갇혀 15일후 순교하였는데 수원으로 잡혀갈 때 부모님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며 “ 천주의 뜻대로 천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 영혼을 구하는 일이니 너무 염려 하지 마십시오.”하며 위로하였다고 한다. 순교 후 외교인의 도움으로 시신을 찾아 원머리 박씨 집안의 땅에 안장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기사 : 가톨릭 신문 김석준 위촉기자
일부 수정 : 대전교구 홍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