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5년 ‘일본 가톨릭 평화 주간’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 기념 평화 메시지’를 발표하였습니다.
‘일본 가톨릭 평화 주간’(8월 6-15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1년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하셔서 하신 ‘평화에 대한 호소’에 부응하여 이듬해 일본 주교회의가 제정한 것으로, 신자들에게 이 기간 동안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평화의 결의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 기념 평화 메시지
「비폭력을 바탕으로 평화로 나아가는 길」
~이제야말로 예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
일본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에게,
들어가는 말
종전 6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는 일본 가톨릭 평화 주간1)을 맞아 일본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일본 주교회의는 종전 50주년이 되던 해에 ‘평화를 향한 결의’라는 메시지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메시지에서 일본 가톨릭 교회가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존엄한 생명을 보호하고 하느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해야 할 예언자적 역할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전쟁으로 고통 받은 많은 사람들과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였습니다.”2) 또한 우리들의 회심의 증거로서 평화를 실현하고자 헌신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지금, 평화를 위한 우리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세계는 아직도 갖가지 형태의 폭력의 사슬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언자로서 우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임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인간 존엄
평화의 전제는 먼저 ‘인간 존엄’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간 존엄은 인간 사회의 창조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누구도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보편적인 권리라고 믿습니다. ‘인간 존엄’이 전제될 때에만 개인의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며, 다른 문화를 지닌 세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세계인권선언문,3) 일본 헌법4)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인간 존엄’이 모든 사람들에게 타당한 보편적 공동선이기 때문에 “세계 모든 민족은 공포와 빈곤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갖는다.”5)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과 이루는 화해와 연대
올 봄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한 반일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긴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역사 인식,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논란 등을 둘러싼 일본의 최근 정황을 들 수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히로시마 방문 때에 하신 ‘평화에 대한 호소’6)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미래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일본인들은 과거의 무력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우리 안에 공통된 역사 인식을 가질 것을 요청 받고 있습니다. 이는 이런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군국주의 정권의 압력 아래, 당시의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한 신사 참배를 본의 아니게 ‘의례’7)로 인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과거의 일이라고 묻어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때와 같은 위기가 눈앞에 닥쳐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개정 논의를 둘러싸고 정교 분리의 원칙을 완화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의례’로 용인하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정교 분리(헌법 제20조 3항)는,8)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체제가 종교를 이용하여 전쟁을 추진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원칙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일본인들에게 정교 분리 원칙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명입니다.
일본이 동아시아인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과 더불어 평화를 추구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이 문제에서 확고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입니다.
부의 공정한 분배와 환경 보호
현재, 국가간 경제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닙니다. 빈곤은 생활고뿐만 아니라 이민과 그에 따른 가족의 이산, 인신매매, 마약 거래, 장기 매매와 같은 문제들을 낳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현대 세계의 인권과 삶의 세계화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시면서, “이는 단지 여유 있는 것에서 주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 발전 체제 안에 진입하지 못한, 제외되거나 주변화된 모든 이들을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문제이다. 이것은 세계가 풍부하게 생산하는 잉여물에서 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다스리는, 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청한다.”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많은 분쟁과 폭력은 자원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으며, 지구 환경 보전이 평화 구축을 향해 다루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공평하게 나누며, 지속가능하게 관리하여야 합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 탕감도 분쟁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정부와 기업, 단체, 일반 시민의 연대 없이는 빈곤 퇴치와 자연 환경 보호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비폭력에서 연대로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동시 다발 테러’와 뒤이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공격은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깊은 골을 냈습니다. 이러한 무력 공격들은 수많은 민간인들을 희생시키며 폭력의 악순환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종교인들과 시민들은 보복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고 대화를 바탕으로 화해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는 선으로 악을 극복할 때에만 얻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10)은 무력의 사용이 아니라, 비폭력과 대화를 통한 평화의 건설입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방법이 보여주듯, 이러한 방법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이러한 비폭력 정신은 국제 분쟁의 해결책으로 전쟁과 무력의 사용을 포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 제9조에서 볼 수 있습니다.11) 지난 60년 동안 우리가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거나 우리 중 누구도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자부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에서 비폭력 정신을 전파하고 실천하며, 공동의 문제에서 세계 사람들과 새로운 연대를 구축하며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합시다.
맺는 말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평화에 대한 호소’를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국가 수반들과 정치 경제 지도자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정의를 통한 평화를 다짐합시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은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추구되거나 인정될 수 없다고 결단을 내립시다. 무장해제와 모든 핵무기 추방을 위하여 끊임없이 일할 것을 모든 인류에게 약속합시다. 폭력과 증오에서 신뢰와 배려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교황 성하의 ‘평화에 대한 호소’를 확고히 되풀이하며, 함께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비폭력 위에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평화의 사도로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시고 예언자로서 역할을 하신 선종하신 교황 성하의 바람에 따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함께 마음을 모아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2005년 일본 가톨릭 평화 주간에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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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히로시마를 방문하셔서 하신 ‘평화에 대한 호소’에 부응하여 그 다음 해 ‘일본 가톨릭 평화 주간’(8월 6-15일)을 제정하고, 신자들에게 특히 이 기간 동안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평화의 결의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청하였다.
2) ‘평화를 향한 결의: 종전 50주년을 맞아’ 1995.2.25 참조.
3)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이며,” 세계인권선언 전문, 국제연합 인권고등판무관실.http://www.unhchr.ch/udhr/lang/eng.htm
4) “국민은 모든 인간 기본권을 누리는 데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본 헌법으로 국민에게 보장된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들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영원히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서 부여된다.” 일본 헌법 제11조.
5) 일본 헌법 전문 참조.
6) 1981.2.2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9개 언어로 전세계에 평화를 호소하셨다.
7) 참조(1) “학생, 생도, 아동의 단체가 신사에 경례하는 것은 종교적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을 명확히 할 것을 바란다.” 駐日 교황청 사절과 도쿄 대교구장이 문부대신 하토야마 이치로에게 보낸 1932년 9월 2일 청원서(「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51쪽, 일본 가톨릭중앙협의회 복음선교연구실 편, 1999년)
참조 (2) “신사 참배는 교육상의 이유가 기본이며, 학생, 생도, 아동의 단체에 요구되는 경례는, 애국심과 충성을 나타내는 것이다”(문부성 회답 1932.9.30. 「雜宗」 140호) 참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51쪽, 일본 가톨릭중앙협의회 복음선교연구실 편 1999년)
참조 (3) “일본 제국의 주교들은 다음 사항을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정부가 국가 신도의 신사로 관리하고 있는 신사에서 통상적으로 하고 있는 의례는,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선언한 것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대로) 국가 당국자에 의해 단순한 애국심의 징표로, 즉 황실이나 은인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보인다. … 따라서, 이들 의식이 단적인 사회적 의미밖에 없는 것이 되었으므로, 가톨릭 신자가 그 의식에 참가해 다른 국민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허용된다.” 「사도좌 관보」(AAS), 1936(번역 참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134쪽 일본가톨릭중앙협의회 복음선교연구실 편 1999년)
8) 일본 헌법 제20조.
§1. 모든 사람은 종교의 자유를 누린다. 어떤 종교 단체도 국가로부터 어떠한 특권도 받을 수 없으며 어떠한 정치 권위도 행사할 수 없다.
§2. 어느 누구도, 종교 행위, 행사, 의식, 관습에 참여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3. 국가와 국가 기관들은 종교 교육이나 어떠한 종교 활동도 삼가야 한다.
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Centesimus Annus) 58항, 1991.
10) 2005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05.1.1.
11) 일본 헌법 제9조.
§1.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하게 추구하며, 국권을 발동한 전쟁과 무력행사와 위협을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삼는 것을 영원히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과 그 이외의 전력을 유지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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