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777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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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한말 일제시대 선교회의 한국 진출과 천주교' 심포지엄

"한국교회사연구소/'한말 일제시대 선교회의 한국 진출과 천주교' 심포지엄 "

외국 선교회, 초기 한국교회의 반석


한국교회 발전에 헌신해온 선교회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20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대강당에서 '한말ㆍ일제시대 선교회의 한국 진출과 천주교'라는 주제로 2007년도 심포지엄을 열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졌던 선교회들의 업적을 살펴보고, 이들이 한국교회사에서 지니는 의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염수정(서울대교구 총대리, 연구소 재단이사장) 주교는 기조 강연에서 한말ㆍ일제시대 한국교회 사목을 도맡다시피 한 선교회들의 헌신적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 4개 선교회 활동을 선교회별로 발표한 발제자들은 "선교회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선교 활동과 본당 설립, 교육과 사회 사업 등을 통해 한국교회 기초를 다지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조 강연(염수정 주교, 한국교회사연구소 재단이사장)
  염 주교는 한말에 이어 일제시대에도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 시기 한국에 진출한 선교회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파리외방전교회가 단독으로 맡았던 조선 선교를 파리외방전교회에 이어 진출한 진출한 베네딕도회(1909년)ㆍ메리놀 외방전교회(1923년)ㆍ골롬반 외방선교회(1933년)와 나눠 맡음으로써 한국교회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파리외방전교회가 서울ㆍ경기ㆍ충청도ㆍ대구ㆍ경상도 지역을 △베네딕도회가 함경도 지역을 △메리놀회가 평안도 지역을 △골롬반회가 전라남도ㆍ제주도ㆍ강원도 지역을 각각 맡아 사목하는 등 일제시대 한국교회 사목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외국 선교회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염 주교의 설명.
  염 주교는 "이들 활동에 아쉬움과 한계점도 있지만 200여 년 한국 교회사에서 한국교회를 떠받친 하나의 축이었던 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간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리외방전교회와 조선대목구의 분할(조현범 박사, 한국교회사연구소)  조선대목구는 1911년 6월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할됐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조선대목구가 관할하던 전교지 일부 지역이 분리돼 대구대목구로 신설된 것이며, 이에 따라 조선대목구는 서울대목구로 개칭된 것이었다.
  조 박사는 "이는 단 한 명의 주교가 조선 전역을 관할하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이후 새롭게 진출한 선교회들에게 조선 전교지의 일부를 분할할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분할의 의의를 찾았다.
  조 박사는 "양 대목구로 나뉜 조선교회는 애초 기대와 달리 저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아쉬움을 남겼다"면서 "하지만 1920년까지 방인 사제 수가 두 배로 늘어난 것은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거둔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밝혔다.  

 ▨선교 베네딕도회의 한국 진출과 선교 활동(선지훈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선 신부는 1909년에서 1949년까지 한국과 만주에서 활동했던 베네딕도 회원들의 선교 방법과 특성을 수도 생활과 교육 활동, 그리고 전례 활동이라는 세가지 영역으로 나눠 고찰했다.  
  선 신부는 "방인 후진 양성을 위한 베네딕도회의 활동은 수도자 양성과 직업학교와 소신학교, 그리고 대신학교를 통해 현실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와 같은 수도원적이고 베네딕도회적인 교육은 주민들을 발전시키는 데도 기여했다"고 말했다.

 선 신부는 이어 "베네딕도회의 장엄한 전례는 선교 활동에서 큰 역할을 했다"며 "베네딕도회의 한국어 미사와 그레고리안 성가 미사 등은 오늘날 한국교회 전례 발전에 초석을 마련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30년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선교 활동(김수태 교수, 충남대)
  김 교수는 "1930년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선교 활동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평신도 쇄신 운동'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당시 메리놀 외방전교회에서 관할한 평양교구가 3년 가까이 전개한 가톨릭운동을 한국교회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했다.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자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두 번째로 주목해야할 사실로 문서 선교 활성화를 꼽았다. 평양교구는 정기 간행물 출판을 통한 문서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집중 추진했는데, 이는 문서 선교를 통해 평신도를 쇄신시키는 한편 한국인들에게 천주교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아울러 신사 참배를 거부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장이었음을 주지시켰다. 김 교수는 메리놀회와 달리 뮈텔(파리외방전교회) 주교가 서울교구에서 신사 참배를 허용한 것은 각 교구가 속한 전교회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풀이했다.  

 ▨머나먼 동쪽을 찾아온 선교사들-1945년 해방까지 광주교구의 골롬반 수도회(옥현진 신부, 광주가톨릭대)
  옥 신부는 당시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들었다. 즉 파리외방전교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가 대체로 조선 민중의 소리보다는 기득권 세력인 일본 군부의 소리를 듣고 그들 입장에서 선교를 해왔다는 비판이 받았는데 반해 광주에 들어와 활동하던 골롬반 선교사들은 민중과 함께 고난당하고 박해받으며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옥 신부는 "대다수가 아일랜드와 미국 출신인 골롬반 선교사들은 활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의 독립을 굳게 믿고 신자들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는 데 노력했다"면서 "골롬반 선교사들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대적 적응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 염수정 주교가 20일 한국교회사연구소 2007 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평화신문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