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주목의 천주교 순교자들 | |||||||||||||||||||||
| -홍성군 홍성읍, 홍주읍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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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고장 홍성이 천주교 순교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홍주읍성을 비롯하여 주변에는 다섯 곳에 천주교 순교 현장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홍주읍성 안에 위치한 동헌(현재의 안회당 서남쪽 부근), 홍주진영(현재 한국통신 건물 자리), 옥터(옛 법원과 검찰청 자리), 저자거리(군청 앞 주차장 부근), 북문교 주변 참수터 추정지 등이다. 당시에 홍주목 관할 하에 거주하던 천주교 순교자들은 모두 이곳 홍주읍성으로 체포되어 와서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3-4개월에서 8-9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처형되었다. 홍주 관아로 끌려온 순교자들이 처음으로 문초와 형벌을 받은 장소는 홍주 진영(즉 충청도 前營)의 동헌(즉 景士堂) 앞과 목사의 동헌(즉 近民堂) 앞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전영장의 동헌인 경사당은 지금의 동문(즉 朝陽門) 서쪽에 위치한 한국통신 건물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이곳에 있던 영장의 동헌 앞으로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홍주 옥터(옛 검찰청과 법원 자리)는 최대의 순교 터이다. 교회 순교록에 나오는 127명 중에서 교수형 100명, 옥사 13명 등 113명이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나타난다. 홍주의 저자거리(지금의 홍성군청 앞)는 순교자들이 관아로 끌려갈 때, 혹은 처형되기 전에 조리돌림을 당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치명일기』, 『병인치명사적』,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등 교회 순교록(殉敎錄) 등의 기록을 보면, 당시의 순교자 명단과 순교상황 등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박해 초기(1792-1869)에 8명, 중기(1812-1839)에 4명, 병인박해(1866-1870년대 초) 때에
교수형은 구멍이 있는 큰 돌이나 옥벽에 뚫은 구멍, 혹은 널판 구멍에 줄을 넣고 순교자의 목을 얽어맨 다음 옥졸들이 반대편에서 줄을 당기는 방법으로 행해졌다. 홍주목 첫번째 순교자의 순교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략- 목사는 그 동안 공주에 있는 충청 감사에게 사실을 보고하였고, 1792년 말에는 감사로부터 원시장을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목사 앞에서 있은 세 번째 문초 때에는 어마어마한 형벌 도구들이 준비되었으며, 이 굳은 증거자에게 겁을 주려는 속셈에서 그 주변에 수많은 포졸들까지 세워 놓았다. 목사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말하였다. “네 목숨을 구해 주려는 마음에서, 그리고 네 마음을 좋은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썼다. 그러나 네가 아무 말도 듣지 아니하고 죽기를 고집스럽게 원하므로 나는 감사에게 보고를 하였다. 그랬더니 너를 쳐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배교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것을 알라.” “그것은 제가 가장 열절하게 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리들은 그의 결박을 옥죄면서 무서운 고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문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지만, 원시장은 이를 용감하게 견디었다. 이제 그의 몸은 하도 으스러져서 수족조차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고문이 끝났을 때는 옥졸들이 그를 둘러 업고서야 겨우 감옥으로 데려갈 수 있었고, 손으로 음식을 입에 넣어 주었지만 이조차 삼키지를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침내 홍주 목사는 인근 수령들을 불러다 그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마지막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혈육의 정에 호소해 보기로 하였다. 그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 앞으로 끌려나가 자녀들 이야기를 전해들은 원시장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자녀들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이 크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친히 저를 부르시는데, 어찌 그분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와 수령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들은 형리들을 시켜 사형수에게 관례로 주는 음식을 주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죽임으로써 이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였다. 형리들은 전보다 더 미친 듯이 매질을 시작하였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포졸과 형리들이 기진맥진하여 서로 말하였다. “이놈의 죄인은 매를 맞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어떻게 끝장을 내면 좋겠소.” 원시장은 어렴풋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매를 맞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여기에 오셔서 저를 직접 굳세게 해 주십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더 세게 매질을 하도록 하였다. “저놈은 틀림없이 귀신을 부리는 놈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목사는 매질로만은 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를 결박한 뒤 물을 부은 다음 추운 밤중에 내 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내 원시장의 몸은 굵은 밧줄에 묶여졌고, 온 몸에는 물이 뿌려졌다. 밤이 되자 그가 덮어쓴 물은 얼음으로 변하여 온 몸이 얼음 투성이가 되었다. -중략-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은 닭이 두 번째로 홰를 칠 무렵이었으니, 때는 임자년(1792년) 12월 17일(양력 1793년 1월 28일)로, 그의 나이 61세였다. 충청도 땅에서 탄생한 첫 번째 순교자의 모습은 바로 이러하였다. (위 글은 천주교 홍성본당 홈페이지 내용을 참고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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