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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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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나눠주는 사랑, 키우는 사랑

[아침마당]나눠주는 사랑, 키우는 사랑


조성광 천주교 대전교구 성소국장




2007년 10월 08일 (월) 전자신문 | 20면 충청투데이


몇 년 전 '축제'라는 영화가 상영됐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한 동화작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해프닝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안에서 가족들의 내력도 밝혀지고, 또 우리들이 흔히 보아왔던 초상집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들이 전개된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지은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에서 작가의 딸 은지의 시선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잠시 그 일부분을 소개해 본다.


일곱 살 은지는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 의문은 할머니는 아빠 엄마보다 나이도 많고 집안의 가장 어른이신데 왜 키가 작은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아빠의 대답은 이렇다. "할머니는 원래 아빠 엄마보다 키가 크셨는데, 어른이 되시고부터는 그 나이를 엄마 아빠한테 나눠주시느라 작아지신 것이란다. 지금 아빠 엄마가 다 컸는데도 계속 작아지시는 것은 이번에는 은지에게 나이를 나눠주시기 때문이란다."


은지는 여덟 살이 되어 할머니와 키가 같아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이상한 행동만 하신다. 은지의 두 번째 의문점이 생겼다. '왜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만 하시고 점점 어린 아이가 되어 가실까?' 아빠가 대답해 준다. "그것은 할머니가 은지에게 나이를 나눠주실 때 그 나이에 담긴 지혜도 함께 나눠주시기 때문이지. 나이를 나눠주시는 만큼씩 할머니는 옛날로 되돌아가시고 어린애처럼 되어 가시는 것이란다.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은 키만 크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처럼 밝은 지혜도 쌓아가는 일이란다. 할머니는 은지에게 나이와 지혜를 나눠 주시며 즐거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계신단다."


세월이 지나 은지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할머니는 치매가 더 심해져 이젠 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빠 엄마는 변함없이 정성껏 할머니를 돌보신다. 은지는 세 번째 의문점을 갖게 된다. "아빠, 할머니가 나이를 모두 나눠 주시고 나면 어떻게 돼요?". "갓난쟁이 작은 아기가 되지. 그리고 더 조그마해지시면 할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된단다." 은지는 할머니의 나이를 더 이상 나눠 먹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할머니는 이제 엄마 뱃속에 든 아기처럼 두 손과 다리를 오므린 채 며칠 씩 긴 잠에 빠져 계신다. 지금의 할머니와 영영 헤어지는 것이 싫어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는 은지에게 아빠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지혜가 쌓이게 되고, 그 지혜가 가득 차면 마음속에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넘치고 싶은 사랑이 된단다. 할머니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신 좋은 일들은 다 그 사랑 때문이란다."


얼마 전 우리는 한가위 명절을 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뿌리를 찾아 고향을 다녀왔다. 부모 친척들을 만나고 고향에서 성묘를 하며 우리 조상들이 나눠준 나이와 지혜와 키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후손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선조들에게 감사하고, 우리도 그분들의 사랑 때문에 쌓여진 나이와 키와 지혜를 후손과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


크리스천 신앙은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정의된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그래서 그 사랑으로 인해 외아들을 희생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신앙은 시작되고, 그분의 사랑을 우리 역시 간직하고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참신앙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 삽입된 동화의 내용은 이러한 '내리사랑'을 다시금 기억하게 한다.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면 결국 이르게 되는 그분은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지혜를 아낌없이 내어주셨고, 이젠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없이 눈길을 보내신다.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갈 후손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나는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지부터 우선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