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7333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7/09/07
  • 조회수 : 3,274

다산 정약용과 천주학(서학)

화성을 설계한 다산 정약용과 서학 천주교 ◇ 화성을 천주교 순교성지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북수동 성당 나경환 신부님 “슬프다 이 나라 사람들이여, 주머니 속에 갇힌 듯 궁벽하구나. ---성현(聖賢)은 만리(萬里) 밖 먼데 있으니 그 누가 이 몽매함 헤쳐 줄건가. 고개 들어 사방을 둘러 보아도 또렷한 정신 가진 자 보기 드무네. 남의 것 모방에만 급급해 하니 언제 나의 것 정성으로 연마하리오(정약용, 여유당전서1-1).” 다산 정약용은 당시(當時) 현실안주의 폐쇄적이며 모방적인 학문풍토와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다산의 사회개혁의식과 주체의식 그리고 민족구원의 사명의식을 느낄 수 있다. 다산은 이미 청년시대부터 당시의 현실풍토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고, 근본유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학문에 목말라하였다. ◇ 천주실의 다산은 사변에 흐른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먼 옛날 공맹(孔孟)의 근본유학의 정신을 되살리려 경전연구에 힘쓰는 한편, 서구사회에서 들어온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칠극(七克)>등의 서학서(천주학)을 탐독하고 당대의 서학대가 광암 이벽을 만나 신앙토론을 벌이는 한편, 친형 정약종, 매부 이승훈 등과 함께 서학강학회와 종교집회에 참여하여 1784년에는 성현(성자)에 앞서 길을 닦은 선구자처럼 되고자 세례자 요한이라는 교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다산정약용은 천주신앙 안에서 대자연 속의 진리를 탐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구약성경의 모세와도 같은 구도자의 사명감으로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출하고자 한다. 특히 다산은 당대의 유학자들이 입으로는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도 공맹의 정신을 따르기는커녕 단지 ‘학문을 위한 학문,’ ‘논쟁을 위한 논쟁’의 탁상공론에 빠져 공맹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음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가난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학문태도를 걷어치우고 한가지라도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될 수 있는 학문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경세치용(經世致用),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實學)을 주창한다. 다산은 서양사상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거중기, 농기구 들을 비롯해서 300여 가지가 넘는 백성들의 실생활에 접목된 기구들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서학자로 연루된 유배생활 중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500여 가지가 넘는 저서를 남겼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으로서의 흔들림이 없는 굳은 신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로움에 유혹되지 않고 위세에 굽히지 않는 것이 법을 지키는 길이다.”(목민심서 奉公 6조) 오늘날 정치인들과 행정관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1789년에 사도세자의 묘를 배봉산에서 한강을 거쳐 수원 화산으로 이장할 때 다산이 수훈을 세워 정조대왕의 신임을 받게 되고 마침내 계획신도시 수원화성의 축성책임이 다산에게 맡겨지게 된다. 화성을 쌓으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1794년 1월 착공하여 2년 9개월만인 1796년 9월에 수원화성이 완공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다산은 무거운 돌을 운반할 수 있는 기중기(혹은 거중기)를 개발하고, 근대 민주 경제원리에 입각하여 수원화성을 설계하였다. 화성의 외벽을 자연스럽게 돌로 쌓아올리고 내벽을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흙을 돋우고 매워 야생화와 풀들이 자라게 하는 외축내탁형으로 축성하여 하느님과 대자연과 인간과의 조화와 화합, 그리고 상생의 대향연을 연주하였다. ◇ 화성의 성곽 따라서 성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이나 중압감, 불안감을 주지 않고 편안함과 아름다움, 신뢰감을 준다. 이와 같은 화성설계와 축성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우주만물을 조성하고 다스리는 대군대부(大君大夫)이신 천주를 흠숭하고 그분의 뜻을 받든 효성(孝誠)과 대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 백성에 대한 섬김과 사랑이었다. 천주의 뜻을 실천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온 생애를 바치며 “너희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다산은 애주애인(愛主愛人)의 정신으로서 천주를 섬기고 가장 힘없고 무지몽매한 백성의 인권을 돌보았으며 하루빨리 성현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으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잘살게 되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