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7301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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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사랑은 그렇게…

[아침마당]사랑은 그렇게…
조성광 천주교 대전교구 성소국장>
충청투데이 2007년 09월 03일 (월)  20면
몇 해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동창 모임이 있어 바삐 일을 마무리하고 택시를 탔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밀리고 신호등까지 협조를 해주지 않아 정지선에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좌석 받침대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뒤 차가 받았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제 뒤 차 운전자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그러면 제 시간에 못갈 것 같아 짜증이 밀려왔다.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운전석에서 내리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택시 기사가 내려 범퍼를 유심히 보고는 운전자를 향해 손을 잠시 들어주고 다시 운전석으로 왔다. 그 때 마침 청신호등이 켜져 택시는 이내 출발했다.

나는 속으로 매우 의아스러워 하며 물었다. "아니, 그냥 가세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럼 그냥 가지 뭐해요." 괜히 부아가 난 나는 재차 물었다. "그 차 운전자는 내리지도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잖아요. 제 머리가 받침대에 쿵하고 부딪쳤단 말예요." 태연한 기사를 보고 내가 오히려 속을 긁고 싶었다.

그 때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경우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보려고 있는 흠집, 없는 흠집 다 들먹이며 핏대를 세우던데 이 기사님은 왜 이러시지?

"범퍼에 아무 이상 없고요. 그 아주머니 초보라서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더라고요. 손님도 그렇게 충격을 받으신 것 같지 않던데요." 슬그머니 웃으며 말한 그는 내 의도가 어떤 것인지 이내 알아채고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도 얼마 전까지 세상을 참 빡빡하게 살았어요. 이 일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박봉에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대요. 그래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든 뭘 좀 얻어볼까 하고 싸우기 일쑤였는데 IMF가 와서 더 살기 힘들었어요. 월급은 나오지 않고, 집에 애들은 앙앙거리고,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세상 한탄하며 술을 한 잔 했죠. 얼큰해질 정도로 마시고 호기에 차를 몰고 집 근처까지 왔는데 멀리서 음주 단속을 하고 있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조그만 골목길로 들어가려고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찰라, 옆 차 옆구리를 받았어요. 눈앞이 캄캄해지고 '이젠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멍해지더라고요. 그 때 옆 차 운전자분이 내리시더니 제 쪽으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저씨 술 한 잔 하신 것 같은데 제가 여기서 시간을 끌면 경찰들이 올 것이고 그러면 아무래도 큰 화를 입으실 것 같으니 그냥 가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그렇게 해서 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지금 이렇게 운전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 분이 제게 베풀어준 호의 때문에 저도 이제는 조그마한 일에 화내지 않고 남에게 해 끼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도 배려하고 여유를 갖고 살아가려 하지요. 그 분은 제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아, 그 때 내가 신부라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마침 신부 복장을 하지 않았으니까 망정이지 입었더라면 얼마나 창피했을꼬. 그렇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택시 기사에게 큰 배려를 해준 분이 없었더라면 그는 물론이요, 그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분은 정말 몇 명의 인생을 구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바꾼 것이다. 아마도 내가 탄 택시를 받은 아주머니도 그 기사가 베푼 호의로 인해 계속 운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을 테고, 나중에 남에게 또 다른 호의를 베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은 서로에 대한 배려로 가득하게 될 테지.

우리의 조그만 배려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것이 사람의 생명도 살리고 삶의 방식도 바꿔주며,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번져나간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과 우리 후배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