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679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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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어려울 땐 하늘을 보라
[아침마당]어려울 땐 하늘을 보라
조성광 천주교 대전교구 성소국장
2007년 07월 09일 (월) 전자신문 | 20면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나는 얼마 전 지리산 자락에서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맑은 하늘에 초승달과 어울린 수많은 별들이 곧 쏟아질듯 반짝거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본 별들이었고 세상의 먼지와 때로 물든 내 머리가 갑자기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득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들을 바라보며 되뇌는 시구는 나의 마음에 여유로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아래만 쳐다보고 살아간다. 학생들은 조그만 책상과 의자에 자꾸 커가는 몸뚱이를 억지로 고정시키고, 수많은 수학 공식과 남의 나라 단어를 외우느라 고개를 들 새가 없다. 어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얽어매어 놓은 좁은 사회 안에서 바쁜 일과 속에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축 쳐진 어깨와 반쯤 숙여진 고개를 하고 다닌다. 내가 군대에 입대할 때 한 신부님께서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어려울 때는 하늘을 봐~" 하늘을 보며 가슴을 펴고 큰 숨을 쉬며 살고 싶다.
요즘과 같은 장마철이었나 보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을 걷던 한 학생이 좁은 처마 밑에 비를 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발은 더욱 거세졌고 좁은 처마 밑은 비를 피해 뛰어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젠 한 사람도 더 들어올 공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한 뚱뚱한 아줌마가 비를 피할 곳을 찾다 그곳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공간이 없는데도 그 아줌마는 커다란 엉덩이를 무기로 비집고 들어왔고, 마음 약한 학생은 그대로 처마 밑에서 튕겨져 나왔다.
황당한 얼굴로 비를 맞으며 서 있는 학생에게 처마 밑의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젊은이 너무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게. 세상은 다 그런 거야." 사람들은 전혀 자기와 상관없다는 듯 먼 산만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때 비를 맞으며 서 있던 학생이 갑자기 빗줄기 사이로 뛰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학생의 손에는 비닐우산이 한 아름 들려 있었고, 그것을 처마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우산을 받은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총총히 사라졌다. 학생은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세상은 다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너무도 쉽게 '세상은 다 그런 거야',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말을 한다. 신문 지상에는 온갖 부정과 부패, 끔찍한 사건과 사고, 생태계 파괴와 학원 폭력 등 거짓말과 거짓윤리가 판을 친다. 학생들은 이런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그렇게 물들어 간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아직도 다하지 않은 청춘이 있다. 오늘 별을 다 헤지는 못하지만 내일이 있고 맑은 하늘을 바라볼 많은 시간이 있다. 우리 학생들의 세계에서는 친구와의 우정이 있고 믿음이 있고 순수한 마음과 진실이 지배한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믿지 않는 친구들이 거짓말로 속이고 허황된 꿈을 꾸며 달콤한 말로 유혹하더라도 당당히 우리가 배운 진실과 사랑으로 맞서며 굳건히 서야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세상이 많이 험악해지고 거짓말과 폭력이 판을 치더라도 그렇지 않은 많은 부분이 있음을, 거짓이 아닌 참이 있고 불의가 아닌 정의가 있고 불신이 아닌 믿음과 신뢰의 세상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어둠에 물들어 가더라도 신앙인으로서 빛이 되어 살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