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천주교성지로 만드는 나경환 신부 | ||||||||||
| 아름다운 화성은 천주교의 순교의 피가 젖은 성지! "화성이 성지로 알려지면 전세계 참배객과 관광객 몰릴 것" |
||||||||||
| 2007-07-04 11:21:59 | ||||||||||
나 신부는 특이한 이력답게 현재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의 주임신부이며, 가톨릭 수원교구 미술관련 업무와 화성성역화 작업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대왕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고 비운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아버지의 능을 양주 땅 배봉산(현 서울시립대 자리)에서 현재의 화성시 융릉으로 천봉하고 용주사를 세워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본래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을 팔달산 기슭 화성 안으로 이주를 시키고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인 화성을 건설했다. 한양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강화유수부, 동쪽으로는 광주유수부, 북쪽으로는 개성유수부가 있었으나 남쪽이 부실하여 화성유수부를 완성한다. 화성의 중심에 있는 북수동 성당 마당에 정조대왕께서 좋아하시던 버드나무 잎을 상징하는 화성 성곽모양을 본떠서 둘레 30 : 1 축소형(약 191미터) 로사리오 길을 만들어 봉돈 모양의 59개의 돌을 배치하였다.
천주교가 중국을 통하여 우리나라로 들어온 시기는 1783년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간 이승훈에 의해서다. 어떤 사회, 어떤 시기이던 간에 문화적인 동질감이 없다면 문화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데 유교를 숭상하던 시기에 유일신을 모시는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많은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이곳 수원도 예외가 아니다. 겉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화성에도 천주교인들의 순교지로 돌변한 것은 정조대왕이 49세로 갑자기 승하한 1800년 이후부터이다. 권력의 암투와 맞물려 다산 정약용(요한)(1762~1836)이 설계한 화성에는 한양 남부와 경기도 일대에서 체포, 압송된 천주교 신자들이 수원화성의 4대문 안으로 끌려왔고 수원화성 곳곳에서 취조와 문초, 고문을 당하고 처형을 당하였다.
나 신부는 “수원 화성에는 이용빈 순교자 등 기록된 것만도 78명이며 순교지로 밝혀진 곳만도 현재까지 11군데이며 2군데의 증거지가 있다. 중영, 행궁, 형옥, 이아, 남암문, 동남각루, 팔달문밖 장터, 장안문밖 장터,사형터(화서문과 화령전 사이), 종로사거리, 동장대다. 무명의 약 2000여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순교를 했다”고 전했다. 아마도 드러내어 알릴 수 없었던 시기에 다산 정약용(요한)은 기록에는 남기지 않았지만 설계할 때부터 은밀하게 천주 신앙을 깊이 새기고 실천한 분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2군데 증거지인 화홍문, 방화수류정에는 십자가 모양의 천주신앙으로 설계, 시공된 은밀한 흔적과 건축물의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나 신부는 "화홍문(華虹門 아름다울 화, 무지개 홍)은 구약의 하느님과 인간의 약속을, 수문7개는 신약의 계약의 표지인 7대 성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지붕의 석가레와 보를 십자가 모양으로 은밀하게 만들어 천주신앙을 증거하고 있다" 고 설명한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에는 다산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擧重機)를 만들고 밖에는 돌로 성을 쌓고 안쪽에는 흙으로 성을 쌓았으며 돌과 흙과 벽돌을 이용하여 10년에 걸쳐 만들기로 계획한 것을 2년 9개월(1794년1월~1796년 9월) 만에 축성을 완료한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 아마도 이는 국왕에서부터 백성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총화단결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대역사일 것이다. 화성은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조대왕의 애국애민정신과 부모에 대한 효(孝)를 몸소 실행한 화성은 200년후 1997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또한 화성의 성곽과 건축물에 대한 기록과 설계도, 자재, 인원동원, 경비집행 등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도 지난 1일 세계문화유산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화성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와 성지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본 기자는 화성에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감한다. 이른 새벽에 화성의 팔달산을 오르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을 먹은 후 화성 성곽 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여 국내의 여러 곳을 가보았지만 화성만큼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고, 도시중심에 위치하여서 365일 24시간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접근이 쉬운 곳은 보지 못했다. 현재 화성은 연간 1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화성이 가톨릭의 순교성지로 널리 알려지면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관광객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온이 더워지면서 낮에 성곽을 걷기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야간에 화성의 성곽 길 약 5.7㎞를 걸으면 황홀한 아름다움과 역사문화의 숨결을 느낀다. 국내·외 관광객은 화성의 성곽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보고 체험하게 되면 한국의 역사문화에 찬사를 보낼 것이라 생각된다. 여름밤에 "화성愛 달빛기행"이라는 역사문화탐방 행사를 경기데일리안이 기획하여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화성행궁 신풍루에서 시작하여 저녁 10시까지(약3시간 소요)까지 화성 바로알기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전문 역사문화해설사가 동행하며 해설과 설명을 하여서 역사문화인식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는 계승하고 지키는 자의 것이며, 알고보면 더욱 가치가 있다. 수원성지 바로가기 suwons.com 다음 기회에 나경환 신부님이 들려주는 "천주교 순교성지로서의 화성"을 연재할 계획이다.
|
||||||||||
| 데일리안 [박익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