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6584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7/06/20
  • 조회수 : 3,157

천주교 쉼터에 손님으로 머물다


여경모 기자, 천주교 쉼터에 손님으로 머물다
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피정의 집' 체험기

2007년 06월 19일 (화) 글·사진/여경모 기자 social@idomin.com (경남일보)





삶의 무게가 버거워 그 짐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을 때. 시끄러운 속세를 하루 이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사람들에 치여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고 싶을 때….

기독교 신자라면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기도를 올릴 것이요, 천주교 신자라면 성당의 신부님에게서 영혼의 안식을 얻을 것이요, 불교 신자라면 절에 가서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부담 없이 기댈 수 있는 종교의 울타리는 없을까. 우선 '템플 스테이'가 떠오른다. 산사의 하룻밤은 마음속을 자비롭게 하기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채플 스테이'는 없을까. '채플 스테이'라는 공식명칭은 없다. 단지 '피정의 집'이란 공간을 만들어 오가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도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피정의 집을 수소문하여, 고성 대가면 골짜기에 위치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아 1박 2일간 머물렀다.

◇ 수도원 풍경

지난 16일 토요일 아침에 찾은 수도원은 고성읍에서 20여분 차를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속세와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골짜기에 위치해 개발의 뒤편에서 조용한 수도원 생활을 하던 곳이다.

이날은 수도원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근처 동네총각의 국제결혼이 거행된 이색적인 '역사적인' 날이었다. 약간의 하객이 북적이던 이 곳도 오후가 되자 평상시의 조용한 공간으로 변했다.

'손님의 집'은 1명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부터 15인실까지 다양했다. 싱크대와 세탁기까지 갖춘 이 곳은 몸만 들어와도 얼마간 살 수 있게끔 생필품이 갖추어져 있다. 식사는 손님의 집마다 취사시설이 있기 때문에 직접 해 먹어도 좋고, 식당에서 수사들의 식사시간에 맞추어 먹을 수도 있다.







이 곳 원장인 이연학 수사(이곳 공동체는 원장부터 새로 온 사제까지 모두 '수사'라고 부른다)는 "손님의 집은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열려 있습니다. 스님들도 가끔 오셔서 계시다 가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시민단체의 회의도 열리기도 하며 이주노동자들의 MT장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곳의 남성 수사는 모두 TV속에서 보던, 중세시대 수도원에서 봄직한 모자가 달린 수도복을 입고 미사와 기도를 드린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480~547년)의 가르침에 따라 노동과 기도를 업으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수도승들이기 때문이다.

오후 6시 여성 수사들의 기도에 참석했다. 이 곳은 주일 미사 때만 남녀 수사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고 그 이외는 따로 기도를 드리며 노동도 따로 행한다. 앳된 소녀의 티를 간직한 수사부터 할머니 수사까지 연령대가 다양해 보였다.

기도가 시작되고 때 묻지 않은 청량한 목소리가 예배당을 더욱 성스럽게 만든다.

8시엔 남성 수사들의 기도에 참석했다. 여성 수사들의 목소리가 소프라노라면 남성 수사들은 테너처럼 들린다. 가로등이 없는 수도원에서 하늘의 불이 꺼진 저녁에는 손전등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선 손님들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 십자가 앞에 '손님'으로 서다

17일 주일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저 멀리서 '꼬끼오' 소리가 들린다. 6시 반의 아침기도를 시작으로 식사 후 오전 10시에 수도원에서의 미사가 거행되었다. 이 날은 전날 창원에서 단체로 온 손님들로 인해 1층 자리가 모자라 2층까지 사람이 찼다. 주위 동네 분들과 어제 이 곳에서 결혼한 부부들도 보였다.






도심의 일반 성당에 비해 이 곳 수도원 주일 미사와 주일 저녁 성체강복 예절은 다성부 성가와 그레고리안 성가로 진행되어 더욱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뜻을 알아 들을 순 없었지만 그 울림만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손님들은 수도원의 일과에 원하는 만큼 참석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거행되는 기도와 미사에 참석할 수 있고, 수사들이 농사를 짓는 등의 노동을 할 때에도 참여할 수 있다. 도심과 떨어진 이 곳은 어떤 것도 강제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움직이고 머물고 싶은 만큼, 느끼고 싶은 만큼 지내다 떠날 수 있는 공간이다. 주일이라 수사 분들과 함께 노동을 해보지 못한 것이 영 아쉽다.

이 곳에서의 생활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놓는다든지 흡연을 삼가는 등 침묵과 고요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수준의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이도 환영한다. 또한 고해성사나 각종 상담과 도움도 손님 담당 수사에게 요청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인터넷이나 TV가 없다. 답답하면 근처의 등산로나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까지 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의 중요한 열네 장면을 돌에 조각으로 새긴 '십자가의 길'을 걸어보는 것이 바깥 나들이인 셈이다.

이연학 수사는 "종교는 달라도 서로의 다름이 갈등분리의 원인보다는 참된 새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보다 많은 이들이 이 곳을 찾아 참된 자아를 찾고 영혼의 안식을 찾기를 희망했다. 수도원이 외풍에도 흔들림 없기를 기도하며 밤꽃 냄새 나는 길을 따라 수도원을 나왔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은 경남 고성군 대가면 송계리 산 90-3번지에 있다. 손님 담당 수사를 만나고 싶으면 016-816-1986으로 전화하면 된다. 홈페이지 http://osb.brothers.or.kr에서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경남도내 피정의 집

◇성혈 영성의 집 = 마산시 구산면 옥계리 688-5번지. (055) 221-2999.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도원 =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 989-1번지. (055) 222-3801.
◇고성 성심의 집 = 고성군 동해면 용정리 170번지 세포마을 내. (055) 673-5463.
◇오순절 평화의 수도회 = 밀양시 삼랑진 미전리 636번지. (055) 352-4241.
◇사도 성 요한 수도회 =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307-1. (055) 384-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