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95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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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눈 노사제의 북한사랑 “한때 ‘함동무’로 통했죠”

푸른눈 노사제의 북한사랑 “한때 ‘함동무’로 통했죠”

천주교 대북지원 이끄는 함제도 신부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입력 : 2007.04.11 23:50 / 수정 : 2007.04.12 04:34 “북한 사람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일흔 다섯 넘어 은퇴하면 평양에 와서 영어도 가르치고, 외교관들 상대로 미사도 드리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되겠지요’라고 해요. 그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우리’ 동포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대북(對北) 활동은 한 벽안(碧眼)의 사제가 앞장서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메리놀회 한국지부장인 함제도(74·제라르드 하몬드) 신부가 주인공이다. 그는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의 고문이며, 세계 천주교의 대북지원사업을 총괄하는 국제카리타스 대북지원운영위원회 의장이다. 1997년 이후 북한을 모두 25번이나 다녀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 가톨릭신자들의 북한을 도우려는 정성(3200만 달러)은 그의 손길을 거쳐 북한에 전달되고 있다. 3월말 국제카리타스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4박5일 동안 다녀온 유흥식 한국카리타스 위원장이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평양에 카리타스 연락사무소를 두고 함 신부님을 상주사제로 임명하면 어떠냐고 북한 사람들에게 제의했다”고 밝힐 정도로 그의 대북활동은 두드러진다. 1960년 사제서품을 받고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47년째, 유창한 한국어에 ‘우리 한국’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이 노(老)사제는 이제 성직자로서 여생을 대북활동에 바치고 있다.


▲세계 천주교의 북한지원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함제도 신부. 그는“신학생들은 날 보고‘켄터기 치킨 할아버지 같다’고 한다”며 웃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1960년 한국에 왔을 때의 첫 인상은 보릿고개로 굶고, 시신도 가마니에 싸서 묻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자존심은 매우 강한 민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북한은 60년대 남한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자존심은 매우 강합니다. 마음 상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북한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어려운 것보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한다고 했다. “아름답게 대하면 아름다워진다”는 게 성직자로서 그의 소신이다.

북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신학생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신학교 동창생이었던 장익 주교(춘천교구장)로부터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게다가 분단 전 평양교구는 메리놀회가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추방된 메리놀회 선배들로부터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며 한국, 특히 북한 선교를 꿈꾸었던 것이다. “선배 신부님들은 ‘~끼니’ ‘~하라우’라며 평안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면서 북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또 70년대 청주에서 교구장으로 모셨던 정진석 추기경은 그 당시부터 북한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북한땅을 밟기까지는 37년이 걸렸다. 1995년 북한에 대홍수가 나자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지원하자”고 호소했고, 그가 나선 것. 당시만 해도 가톨릭은 북한과의 끈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개신교계 의료구호단체인 유진벨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이 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 하면서 북한과의 인연을 트고, 안면을 익혔다. “북한 사람들이 처음엔 ‘함 동무’ ‘함 동지’라고 하더니 자꾸 얼굴을 보니까 ‘신부선생’이라고 하더군요. 요새는 제가 ‘그냥 할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지요.”

그래도 여전히 벽은 있다. 북한은 유진벨재단에는 결핵요양소까지 공개하고 있지만 ‘카리타스’는 아직 평양으로만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3월말 국제카리타스의 방북 때도 당초 약속했던 원산방문이 무산됐다고 했다. 함 신부는 “사랑에는 조건이 없어야 하지만 지원에는 ‘부드러운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령, 어린이나 산모, 노인 등 어려운 사람들이 우선 돼야 하고, 종교의 자유를 늘리는 쪽의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게 함 신부의 말이다.

“ ‘정(情)’과 ‘한(恨)’이란 단어가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분단 60년 동안의 ‘한’이 앞섰지만, 통일이 되면 ‘정’때문에 금방 다시 붙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때를 위해서라도 북한 주민의 어려움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합니다.”

세계 천주교의 북한 지원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함제도 신부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청년같은 미소를 지녔다. 북한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으면 싼타클로스 쯤으로 불리울 노 사제는 남한 젊은이들이 붙여준 캔터키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즐거워한다. 은퇴하면 북한에서 영어도 가르치고 미사도 드리고 하면 좋겠다는 할아버지 신부의 북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선일보 허영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