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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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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사랑의 원리

[아침마당]사랑의 원리
곽승룡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2007년 03월 19일 (월) | PDF 20면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매사에 질문을 자주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옛말에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했듯이 '무엇이 중요한가'를 질문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늘 준비하는 자이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도 막바지 최종 예상 질문지를 만들어 보고 또 그 질문에 답을 해 본다. 교사들도 수업준비를 하면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중요한 요점을 질문형식으로 마련해 그들을 도와준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질문은 모두에게 기본에 충실하고, 필요한 것과 중요한 것 그리고 본질이 무엇이며 이에 따르는 유효한 책임을 다하는 필수적인 요소를 발견하도록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으로 기초된 성실한 삶의 첫자리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바로 사랑(caritas)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이 같은 질문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주며 결국 사람을 어려움에서 구해낸다.

요즘 우리나라가 OECD국가 가운데 최고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게 연예인들이 목숨을 끊고, 우리나라 건국과 경제발전의 주역이셨던 어르신들의 자살도 매우 많다.

어떤 분은 농약을 벌써 오래 전부터 준비해 놓았단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죽음의 나라로 변했는가?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이 공경을 받는 데는 그들의 죽음이 사랑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2세기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은 영지주의(gnoticism)자들과 맞서 싸워 교회를 지켰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그들 삶의 첫자리에 사랑이 아니라 '영지'(靈知) 곧 '앎, 인식'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레네오 성인은 구원을 위해 많은 인식이 필요하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아는 것보다는 더 사랑하는 것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다. 종교인들의 기도, 단식, 고행, 금욕 역시 사랑 없이는 그 모든 것이 피곤한 형식이 될 수 있으며, 결국 우리 삶에 어떤 희망과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데 유익하지 않게 된다.

시리아 수도자 치로 테오도레토는 엄격한 수도생활을 기록한 책에서 '오직 사랑은 모든 삶을 정당화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오늘의 이 사회에서 사랑을 느끼도록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필자를 포함한 종교인이다. 종교인은 궁극적으로 앎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동양철학의 K학자는 구약을 폐기해야 하느니, 기독교의 근본 진리에 대해 옳으네 그르네 하면서 자기식의 이론을 늘어놓고 있다. 그는 한 마디로 종교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겠지만, 그 본질인 사랑을 느끼도록 살아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그리스도교 2000년의 역사에서 그런 식의 주장은 너무나 많았고, 위에 언급한 영지주의가 바로 그 가운데 한 예이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의 지성 가운데 한 분인 차동엽 신부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무지개 원리'라는 베스트 셀러를 출간했다.

차동엽 신부는 무지개 원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랑의 원리인 '힘을 다하여, 가슴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임하는 자세를 현대적인 정보와 함께 모아 현대인들에게 전인적 자기 계발 원리를 제공했다. 무지개 원리는 '힘을 다하여'는 지성 계발, '가슴을 다하여'는 감성 계발, '목숨을 다하여'는 의지 계발을 하자는 이 시대의 통렬한 충언을 담고 있다.

우리는 각자 사랑받고 사랑하는 존엄한 존재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만이 죽음을 막을 수 있으며, 우리 사회가 진정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근본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