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 어린이 도우러 달려온 ‘화가 신부님’
佛서 30년간 활동 김인중 신부, 개인전 열어 수익금으로 자선사업
21일부터 조선일보 미술관서 전시
김수혜기자 goodluck@chosun.com
입력 : 2007.03.16 00:04
‘빛의 사제’로 불리는 화가 김인중(金寅中·67) 신부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타났다. “작고한 프랑스인 신부님으로부터 30년 전에 물려받은 옷입니다. 밑에 입은 사제복(사진속 복장)은 아직 새것이에요. 10년쯤 입었거든요.” 작품전을 열기 위해 고국에 온 김인중 신부는 프랑스 파리의 성 도미니크 수도원 다락방에서 30년 넘게 유화를 그려오고 있다. 청색, 녹색, 보라색, 노란색…. 여백이 많은 흰 캔버스에 원색이 물결치는 김 신부의 유화를 보면 그가 왜 ‘빛의 사제’라고 불리는지 금방 이해된다.
그는 수도원 계율에 따라, 작품 활동을 해서 번 돈은 모두 수도원에 헌납하거나, 자선사업에 써 왔다. 이번에도 전시회의 판매 수익은 이웃을 돕는 데 쓸 계획이다. 평생 프랑스와 한국에서 70회쯤 개인전을 열고 그림 수백 점을 팔았지만, 사제복 4벌, 책 100여 권, 물감과 화구가 전 재산이다.

▲재불(在佛) 사제 화가 김인중 신부가 근작 60점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오는 21일부터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 신부는“판매 수익으로 굶주린 아이들을 돕겠다”고 했다. /허영한기자 younghan@chosun.com
그는 부여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랐다. 8남매의 맏이였다. 중학교 갈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서울대 미대에 다닐 땐 ‘버스 차장이 거지인 줄 알고 차에 안 태워 주고, 굶는 끼니가 때우는 끼니보다 월등히’ 많았다. ‘청년 김인중’은 대학 졸업 후 중고생들이 다니는 소(小) 신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다 신앙에 눈떴다. 1969년 사제가 될 결심을 하고 스위스 유학길에 올랐고, 유학간 지 1년 만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 몰래 미술사 대학원을 관두고 신학교에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이 자꾸 선보라고 편지를 보내시는데 내 마음이 참….”
1975년 김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고 잠시 귀국했다. 세 누이가 부엌에서 어머니 회갑연에 쓸 음식을 만드는 사이, 김 신부의 부친은 다섯 아들을 안방에 불러 앉혔다. 맏아들이 신부가 된 줄도 모르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결혼하거라”고 했다. 김 신부가 침을 꿀꺽 삼키고 “이미 사제가 된 몸”이라고 고백했다.
“아버지가 아무 말씀을 못하시데요. 그 창백한 얼굴, 물 끼얹은 듯한 방안의 적막이 잊혀지지 않아요. 한참 만에 아버지가 ‘좋은 길에 들어섰는데 어쩌겠느냐’ 하셨어요. 어머니도 결국은 이해하셨죠. 회갑 날,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제가 미사를 집전했어요.”
가난이 지긋지긋했다면서 왜 사제가 됐을까. 김 신부는 “가진 게 없으니 편해요” 했다. 정말 만족한 얼굴로. “난, 지금 가진 것도 털어버리고 싶어요. 식도락도 관심 없고…. 야구랑 배구 좋아하니까 그런 운동 구경이나 한번 가면 좋겠네요.” 그는 느리고 소탈한 말투로 “그림 그리는 건 신에게 감사드리는 행위”라고 했다. “뭐가 감사하냐”는 우문(愚問)에는, “뭐가 감사하냐니? 아, 모든 것이 감사하지! 허허!” 했다.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여는 ‘김인중전’에는 근작 60점을 건다. 그는 “이번 전시회 수익금으로는 굶주린 아이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했다. (02)724-6322